아름다운사회

떠나가는 것은 떠나가는 것

떠나가는 것은 떠나가는 것

by 권영상 작가 2017.01.05

자고 일어나 창밖을 내다본다. 일출이 임박한 시간이다. 베란다 조롱에 사는 십자매들이 둥지에서 나와 조빗조빗 아침을 깨운다. 늘 이 시각이면 십자매는 잠을 털고 나와 물을 마시고, 모이통을 뒤진다.
새들은 아침 빛에 민감하다. 숲에서 잠을 잔 새들이라면 움트는 빛을 찾아 하늘을 난다. 햇빛은 생명을 충전하는 에너지다. 인근 산에서 잠을 잔 새들이 아파트 마당 안으로 찾아 들어와 소란하게 운다. 출근을 서두르는 이들이 하나둘 눈에 띈다. 마당에서 싸락싸락 비질 소리가 들린다.
십자매를 분양 받아온 지는 열흘이 채 안 됐다. 그 이전 이 조롱 안엔 호금조 한 쌍이 살았다. 온몸을 파스텔로 색칠해 놓은 듯 예쁜 명금류가 호금조다. 말 그대로 노래를 잘하는 작고 귀여운 새다. 우리 집에 온 지 3년은 되었다. 대개의 명금류가 발성이 짧다면 호금조는 길고 우아하다. 우리는 그런 그들을 사랑했다. 그럴 만도 했다.
그런 호금조에게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알을 부화시킬 줄은 알지만 부화한 새끼들을 키울 줄 모른다는 점이다. 그게 안타까워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게 십자매다. 십자매는 남의 새끼도 잘 길러낼 줄 아는 일종의 보모새다. 결국 십자매 한 쌍을 분양받아 호금조 조롱에 넣어주었다. 우리는 이 젊고 부지런한 십자매 부부에게 기대를 걸었다.
“멋진 일이 곧 벌어질 것 같아.”
딸아이는 아주 기분 좋아 했다. 사실 이 일의 막후엔 딸아이가 있었다. 적극 이 일을 반대한 사람은 나였지만 멋진 일이 벌어질 거라는 말은 싫지 않았다. 호금조가 파스텔 톤의 예쁜 꿈을 가지고 그 꿈에 맞는 알을 디자인해 낳으면 성실한 십자매는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부지런히 새끼들을 키워낼 것이다.
정말 멋있는 일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려니 조롱 안의 이 네모 공간이란 것이 단지 생존만의 공간이 아닌 꿈이 이루어지는 공동체의 공간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들이 이루어낼 이후 몇 개월 뒤의 미래를 그렸다.
그러나 그 꿈은 며칠을 넘기지 못했다. 이유도 없이 호금조 한 쌍이 차례로 갔다. 작은 걸 얻으려다 큰 걸 잃은 셈이었다. 그들이 간 이 빈자리는 이제 십자매 차지가 되었다. 그런 사정 때문인지 그들이 암만 활기차게 놀아도 좋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더 어찌할 것인가. 마음 아프긴 하지만 떠나간 호금조를 빨리 잊는 길밖에 없었다. 떠나간 새는 떠나간 새다. 그가 아무리 우리의 사랑을 받았다 해도 그는 우리 곁을 떠나갔다. 떠나간 호금조에 대한 미련 때문에 지금 내 곁에 와 있는 십자매를 외면할 수는 없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지금 내 곁에 와 있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십자매는 또 십자매의 방식으로 이 조롱 안의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창밖을 내다보니 후연하던 아침 빛이 점점 빠른 속도로 환해지고 있다. 성실하기로 소문난 이 십자매들도 물려받은 조롱을 어떻게 가꿀 것인지 지금 그 생각에 여념이 없을지 모른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최선을 다하도록 도와주는 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