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가시나무 열매와 크리스마스
호랑가시나무 열매와 크리스마스
by 강판권 교수 2016.12.26
크리스마스는 사랑이다. 그러나 사랑은 언제나 고통을 동반한다. 사랑은 겉으로 화려하지만 그 과정은 언제나 험난하기 때문이다. 연말의 크리스마스도 휘황찬란한 불빛 때문에 사랑으로 가득한 것처럼 보이지만, 힘든 겨울을 견뎌야 하는 사람들은 더욱 고통스럽다. 나는 늘 연말이면 화려한 크리스마스의 불빛이 힘든 사람들을 가려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어려운 이웃을 돕자는 군세군의 종소리도 해마다 힘을 잃어가기 때문이다.
연말이면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달고 있는 ‘사랑의 열매’는 감탕나뭇과 호랑가시나무의 열매다. 잎이 호랑이 발톱을 닮아서 붙여진 나무 이름이지만, 열매는 세상의 모든 고통을 잊게 하는 사랑의 상징이다. 호랑가시나무의 열매를 사랑의 열매로 여기는 이유는 예수가 가시 면류관을 쓰고 피를 흘리면서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고 있을 때 피를 닦아 준 ‘로빈’이라는 새가 그 열매를 가장 좋아했기 때문이다. 호랑가시나무의 붉은 열매는 예수의 피를 의미한다.
인류가 지금과 같은 문명을 향유할 수 있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 덕분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희생의 주인공은 잊힌다. 그러나 호랑가시나무의 붉은 열매는 망각을 기억으로 되돌리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붉은 열매를 선사하는 호랑가시나무는 인류의 역사에서 아주 소중한 존재다. 그러나 사랑의 열매를 선사하는 호랑가시나무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나는 호랑가시나무를 생각할 때마다 이성복 시인의 ‘호랑가시나무의 기억’이라는 시를 떠올린다. 그러나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이성복 시인의 ‘호랑가시나무의 기억’에는 나무에 대한 특성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도 내가 이 나무를 생각할 때마다 그분의 시를 떠올리는 것은 상징 때문이다. 호랑이와 사랑의 열매는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호랑이가 ‘산신’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정말 잘 어울린다. 호랑가시나무의 잎은 호랑이 발톱처럼 정말 날카롭다. 사악한 마음을 먹고 나무를 해치려는 순간 날카로운 잎이 바로 달려들 것만 같다. 그래서 호랑가시나무의 열매에도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힘이 있다.
사랑은 호랑가시나무의 붉은 열매를 만나기 전까지의 삶을 모두 이해하는 과정과 같다. 사랑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열매를 가슴에 단다고 해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아니다. 붉은 열매는 두꺼운 잎 사이에서 하얀색으로 피는 꽃, 붉게 익기 전의 푸른색의 열매를 만난 뒤에야 볼 수 있다. 이처럼 사랑은 긴 시간의 고통을 겪은 뒤에야 열매를 맺는다. 그러나 사랑의 열매도 영원하지 않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새들이 쪼아 먹거나 땅에 떨어진다. 그러나 나무의 열매가 땅에 떨어졌다고 해서 가슴 아파할 필요는 없다. 사랑의 열매는 영원하지 않지만 다음 해에 호랑가시나무가 열매를 다시 만드는 것처럼 사랑도 언제나 계속되기 때문이다. 사랑이 계속되는 것은 그것이 곧 삶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올해만큼 힘든 해는 드물 것이라 말할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우리가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 것은 삶 자체가 사랑이기 때문이다.
연말이면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달고 있는 ‘사랑의 열매’는 감탕나뭇과 호랑가시나무의 열매다. 잎이 호랑이 발톱을 닮아서 붙여진 나무 이름이지만, 열매는 세상의 모든 고통을 잊게 하는 사랑의 상징이다. 호랑가시나무의 열매를 사랑의 열매로 여기는 이유는 예수가 가시 면류관을 쓰고 피를 흘리면서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고 있을 때 피를 닦아 준 ‘로빈’이라는 새가 그 열매를 가장 좋아했기 때문이다. 호랑가시나무의 붉은 열매는 예수의 피를 의미한다.
인류가 지금과 같은 문명을 향유할 수 있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 덕분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희생의 주인공은 잊힌다. 그러나 호랑가시나무의 붉은 열매는 망각을 기억으로 되돌리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붉은 열매를 선사하는 호랑가시나무는 인류의 역사에서 아주 소중한 존재다. 그러나 사랑의 열매를 선사하는 호랑가시나무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나는 호랑가시나무를 생각할 때마다 이성복 시인의 ‘호랑가시나무의 기억’이라는 시를 떠올린다. 그러나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이성복 시인의 ‘호랑가시나무의 기억’에는 나무에 대한 특성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도 내가 이 나무를 생각할 때마다 그분의 시를 떠올리는 것은 상징 때문이다. 호랑이와 사랑의 열매는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호랑이가 ‘산신’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정말 잘 어울린다. 호랑가시나무의 잎은 호랑이 발톱처럼 정말 날카롭다. 사악한 마음을 먹고 나무를 해치려는 순간 날카로운 잎이 바로 달려들 것만 같다. 그래서 호랑가시나무의 열매에도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힘이 있다.
사랑은 호랑가시나무의 붉은 열매를 만나기 전까지의 삶을 모두 이해하는 과정과 같다. 사랑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열매를 가슴에 단다고 해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아니다. 붉은 열매는 두꺼운 잎 사이에서 하얀색으로 피는 꽃, 붉게 익기 전의 푸른색의 열매를 만난 뒤에야 볼 수 있다. 이처럼 사랑은 긴 시간의 고통을 겪은 뒤에야 열매를 맺는다. 그러나 사랑의 열매도 영원하지 않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새들이 쪼아 먹거나 땅에 떨어진다. 그러나 나무의 열매가 땅에 떨어졌다고 해서 가슴 아파할 필요는 없다. 사랑의 열매는 영원하지 않지만 다음 해에 호랑가시나무가 열매를 다시 만드는 것처럼 사랑도 언제나 계속되기 때문이다. 사랑이 계속되는 것은 그것이 곧 삶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올해만큼 힘든 해는 드물 것이라 말할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우리가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 것은 삶 자체가 사랑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