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사다리
희망의 사다리
by 이규섭 시인 2016.12.23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고별 연설’은 아픈 기억을 상기시킨다. 지난 12일 유엔총회장에서 “나는 유엔의 어린이(a Child of the UN)”라면서 자신이 6·25전쟁 이후 유엔 지원으로 주린 배를 채우고, 유엔이 지원한 책을 통해 학습했다고 소개했다. “내게 유엔의 힘은 결코 추상적이거나 학문적이지 않은 내 삶의 이야기”라는 대목에 공감한다.
그와 동시대를 살아오면서 겪은 경험이 생생하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원조 분유를 나눠줬다. 분말 우유를 그대로 먹으면 목이 매이고 입과 코언저리에 하얗게 묻었다. 배급된 밀가루에 우윳가루를 넣어 빵을 만들어 먹었다. 딱딱하게 굳은 분유를 끓여 먹고 배탈이 난 아이들도 있었다.
구호품으로 들어온 밀가루 포대에는 별 네 개가 그려진 사진 아래 악수하는 그림이 기억에 선명하다. 한글로 ‘미국 국민이 기증한 밀로 제분된 밀가루’ ‘팔거나 다른 물건과 바꾸지 말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광목천으로 된 포대를 빨고 삶아 속옷을 만들어 입기도 했다.
충북 음성 산골 마을에서 태어난 반 총장은 지난 10년간 국제 평화, 개발 협력, 인권 개선 등 유엔의 3대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 사무총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대선 출마를 공식화한 적은 없지만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잠룡이다. 시쳇말로 국제적으로 발판을 굳힌 ‘개천에서 용 난’ 사례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성공 신화도 ‘개천에서 용 난’ 경우다. 지금은 북한 땅인 강원도 통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를 중퇴했다. 소 떼를 몰고 방북한 뚝심도 있고 대권에 도전한 배짱도 두둑하다. 해방 전후 공간에 태어났거나 6·25 전후 세대들은 대부분 헐벗고 굶주리며 힘겹게 살면서도 스스로의 노력으로 ‘계층 이동 사다리’를 타고 성공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저성장이 장기화하고 소득 격차가 갈수록 커지면서 ‘개천에서 용 났다’라는 말은 사라지면서 ‘수저 계급론’이 득세한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한국의 사회 동향 2016년’ 보고서를 보면 ‘흙수저’니 ‘헬조선’이니 하는 자조적 표현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해 자녀 세대의 계층 상향 이동 가능성에 대해 10명 중 5명이 비관적인 젓으로 드러났다. 특히 한창 일하고 결혼하고 출산해야 할 연령대인 30대는 10명 중 6명이 “내 자식은 계층 상승이 어려울 것”이라고 응답했다. 10년 전 10명 중 3명에서 곱절로 늘었다. 여간 심각한 사회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삶이 팍팍해도 자식들만은 잘 살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부모들의 한결같은 마음이다. 내 자식의 계층 상승이 어려울 것이라고 대답하는 심정은 오죽할까.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체념에 빠져 신분 상승의 사다리는 더욱 높아져 휘청거린다. 희망이 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와 마찬가지다. 끊어지거나 휘청거리는 계층 이동 사다리를 희망의 사다리로 대체해야 한다. 청년 고용부터 해결하는 것이 답이다. 일자리가 늘어야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낳아 교육시키며 내 집도 마련할 것이 아닌가.
그와 동시대를 살아오면서 겪은 경험이 생생하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원조 분유를 나눠줬다. 분말 우유를 그대로 먹으면 목이 매이고 입과 코언저리에 하얗게 묻었다. 배급된 밀가루에 우윳가루를 넣어 빵을 만들어 먹었다. 딱딱하게 굳은 분유를 끓여 먹고 배탈이 난 아이들도 있었다.
구호품으로 들어온 밀가루 포대에는 별 네 개가 그려진 사진 아래 악수하는 그림이 기억에 선명하다. 한글로 ‘미국 국민이 기증한 밀로 제분된 밀가루’ ‘팔거나 다른 물건과 바꾸지 말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광목천으로 된 포대를 빨고 삶아 속옷을 만들어 입기도 했다.
충북 음성 산골 마을에서 태어난 반 총장은 지난 10년간 국제 평화, 개발 협력, 인권 개선 등 유엔의 3대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 사무총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대선 출마를 공식화한 적은 없지만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잠룡이다. 시쳇말로 국제적으로 발판을 굳힌 ‘개천에서 용 난’ 사례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성공 신화도 ‘개천에서 용 난’ 경우다. 지금은 북한 땅인 강원도 통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를 중퇴했다. 소 떼를 몰고 방북한 뚝심도 있고 대권에 도전한 배짱도 두둑하다. 해방 전후 공간에 태어났거나 6·25 전후 세대들은 대부분 헐벗고 굶주리며 힘겹게 살면서도 스스로의 노력으로 ‘계층 이동 사다리’를 타고 성공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저성장이 장기화하고 소득 격차가 갈수록 커지면서 ‘개천에서 용 났다’라는 말은 사라지면서 ‘수저 계급론’이 득세한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한국의 사회 동향 2016년’ 보고서를 보면 ‘흙수저’니 ‘헬조선’이니 하는 자조적 표현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해 자녀 세대의 계층 상향 이동 가능성에 대해 10명 중 5명이 비관적인 젓으로 드러났다. 특히 한창 일하고 결혼하고 출산해야 할 연령대인 30대는 10명 중 6명이 “내 자식은 계층 상승이 어려울 것”이라고 응답했다. 10년 전 10명 중 3명에서 곱절로 늘었다. 여간 심각한 사회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삶이 팍팍해도 자식들만은 잘 살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부모들의 한결같은 마음이다. 내 자식의 계층 상승이 어려울 것이라고 대답하는 심정은 오죽할까.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체념에 빠져 신분 상승의 사다리는 더욱 높아져 휘청거린다. 희망이 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와 마찬가지다. 끊어지거나 휘청거리는 계층 이동 사다리를 희망의 사다리로 대체해야 한다. 청년 고용부터 해결하는 것이 답이다. 일자리가 늘어야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낳아 교육시키며 내 집도 마련할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