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 빗댄 건배사
시국 빗댄 건배사
by 이규섭 시인 2016.12.16
건배사도 시류를 탄다. 최순실 게이트와 대통령 탄핵을 풍자한 건배사가 유행이다. 12월 접어들며 송년 모임을 세 번 가졌다. 첫 주 소그룹 모임에서 후배가 “병신년은 가라”고 건배하여 흠칫했다. 평소 정치색을 잘 드러내지 않았기에 놀랐다. 물론 “격동의 병신년(丙申年)이여 빨리 가라”는 의미로 대통령을 빗댄 풍자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날 저녁 제1야당 원내대표단 소속의원들은 여의도 모처에서 가진 축하 술자리에서 건배사로 “위하야(下野)”를 외쳤다는 보도가 나왔다. 가장 대중적인 건배사 “위하여”를 패러디한 것이지만 성급한 축배다. 그날 저녁 참석한 송년 모임에는 언론계 원로와 전·현직 국회의원도 동석했다. 취재현장을 누비던 추억담과 함께 시국 관련 소회를 털어놓았다. 내년에 아흔 살이 된다는 선배는 “나이 든 사람들이 말이 많고 길어지는 것은 머리에 든 잡동사니 정보는 많고 표현은 어눌해지기 때문이니 이해해 달라”고 해 박수를 받았다. 건배사는 “건강을 위하여”가 많았다.
세 번째 송년 모임은 ‘퇴기(퇴직 기자)’들과 현역 후배 기자들과 어울린 자리다 보니 건배사가 다양해졌다. 국정농단 사태의 장본인 최순실 씨와 조카 장시호 씨의 이름으로 삼행시를 짓는 건배사가 등장했다. 최순실은 ‘최대한 마시자, 순순히 마시자, 실려 갈 때까지 마시자’로 장시호는 ‘장소 불문, 시간 불문, 호탕하게 마시자’로 이어졌다. 선창자가 “청와대에서”를 외치면 좌중이 “방 빼라”로 화답하는 ‘촛불집회형 건배사’도 나왔다. 건배사가 지나치게 시류를 반영하면 화기애애해야 할 송년회가 시국 토론장으로 별질 될 우려가 있어 절제가 필요하다.
아직 몇 차례 송년 모임이 대기하고 있다. 요즘은 돌아가면서 한 사람씩 건배사를 하는 자리가 늘어 은근히 신경 쓰인다. 윗사람이나 예우 차원에서 선임들의 건배사는 체면과 위엄을 갖추고 의미를 부여하려 하다 보니 장황해지기 일쑤다. 아랫사람들은 잘하려고 하다가 오히려 옆길로 새는 경우가 많다. 윗사람에 대한 감사와 칭송은 아부로 비칠 수 있다. 인터넷에서 찾아 대중적으로 하면 식상할까 봐 두렵다. 웃기려 들면 품위 없을까 봐 신경 쓰인다. 이래저래 쭈뼛거리게 된다.
가장 일반적인 것이 구호형 건배사다. 짧고 군더더기가 없다. “우리는”하고 외치면 “하나다”하고 받아주면 동질감을 느낀다. 약간 격을 높인 산수형 건배사가 나왔다. “기쁨은”→“더하고”, “슬픔은”→“빼고”, “희망은”→“곱하고”, “사랑은”→“나누고”다.
명언을 활용한 건배사도 뜨지만 어설프게 하면 역효과고 잘하면 격이 높아진다. 이순신 장군의 “신에겐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를 패러디한 “아직 12병의 술이 남아 있습니다”이다. 선창자가 “12병”하고 외치면 “마시자” 후렴을 넣는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도 등장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로 광화문을 오가다 마주치는 교보문고 글판에도 쓰인 적이 있어 친근감을 더한다. 선창자가 “자세히”하면 “보자!”, “오래”하면 “보자!”, “우리도”하면 “그렇다”로 화답하면 분위기가 뜬다. 분위기 파악을 잘하는 게 건배사의 센스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날 저녁 제1야당 원내대표단 소속의원들은 여의도 모처에서 가진 축하 술자리에서 건배사로 “위하야(下野)”를 외쳤다는 보도가 나왔다. 가장 대중적인 건배사 “위하여”를 패러디한 것이지만 성급한 축배다. 그날 저녁 참석한 송년 모임에는 언론계 원로와 전·현직 국회의원도 동석했다. 취재현장을 누비던 추억담과 함께 시국 관련 소회를 털어놓았다. 내년에 아흔 살이 된다는 선배는 “나이 든 사람들이 말이 많고 길어지는 것은 머리에 든 잡동사니 정보는 많고 표현은 어눌해지기 때문이니 이해해 달라”고 해 박수를 받았다. 건배사는 “건강을 위하여”가 많았다.
세 번째 송년 모임은 ‘퇴기(퇴직 기자)’들과 현역 후배 기자들과 어울린 자리다 보니 건배사가 다양해졌다. 국정농단 사태의 장본인 최순실 씨와 조카 장시호 씨의 이름으로 삼행시를 짓는 건배사가 등장했다. 최순실은 ‘최대한 마시자, 순순히 마시자, 실려 갈 때까지 마시자’로 장시호는 ‘장소 불문, 시간 불문, 호탕하게 마시자’로 이어졌다. 선창자가 “청와대에서”를 외치면 좌중이 “방 빼라”로 화답하는 ‘촛불집회형 건배사’도 나왔다. 건배사가 지나치게 시류를 반영하면 화기애애해야 할 송년회가 시국 토론장으로 별질 될 우려가 있어 절제가 필요하다.
아직 몇 차례 송년 모임이 대기하고 있다. 요즘은 돌아가면서 한 사람씩 건배사를 하는 자리가 늘어 은근히 신경 쓰인다. 윗사람이나 예우 차원에서 선임들의 건배사는 체면과 위엄을 갖추고 의미를 부여하려 하다 보니 장황해지기 일쑤다. 아랫사람들은 잘하려고 하다가 오히려 옆길로 새는 경우가 많다. 윗사람에 대한 감사와 칭송은 아부로 비칠 수 있다. 인터넷에서 찾아 대중적으로 하면 식상할까 봐 두렵다. 웃기려 들면 품위 없을까 봐 신경 쓰인다. 이래저래 쭈뼛거리게 된다.
가장 일반적인 것이 구호형 건배사다. 짧고 군더더기가 없다. “우리는”하고 외치면 “하나다”하고 받아주면 동질감을 느낀다. 약간 격을 높인 산수형 건배사가 나왔다. “기쁨은”→“더하고”, “슬픔은”→“빼고”, “희망은”→“곱하고”, “사랑은”→“나누고”다.
명언을 활용한 건배사도 뜨지만 어설프게 하면 역효과고 잘하면 격이 높아진다. 이순신 장군의 “신에겐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를 패러디한 “아직 12병의 술이 남아 있습니다”이다. 선창자가 “12병”하고 외치면 “마시자” 후렴을 넣는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도 등장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로 광화문을 오가다 마주치는 교보문고 글판에도 쓰인 적이 있어 친근감을 더한다. 선창자가 “자세히”하면 “보자!”, “오래”하면 “보자!”, “우리도”하면 “그렇다”로 화답하면 분위기가 뜬다. 분위기 파악을 잘하는 게 건배사의 센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