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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목 건설 정책과 한국의 미래

토목 건설 정책과 한국의 미래

by 강판권 교수 2016.12.12

우리나라 연말 풍경 중 하나는 ‘갑자기’ 도로의 블록을 교체하거나 도로를 포장하는 장면이다. 해마다 거의 반복되는 이러한 풍경은 크리스마스 시즌에 가게마다 설치하는 트리를 보는 것만큼이나 익숙하다. 더욱이 요즘 전국을 다니다 보면 고속도로를 건설하거나 국도를 정비하는 등 대한민국 전체가 마치 공사 현장 같은 느낌을 받는다. 심지어 전국 사찰도 거의 예외 없이 공사 중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토목 건설이 끊이지 않는 가장 큰 원인은 국토를 개발로 인식하는 정책 때문이다. 정부의 예산 중에서 토목 건설과 관련한 ‘사회간접자본(SOC)’이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높다.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지역구에 사용할 예산 중에서도 SOC 예산 확보에 혈안이다. 그 이유는 토목 건설이 가장 효과적인 업적이라 믿기 때문이다. 관련 정부 부처도 국회의원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신들의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예산 확보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토목 건설이 많이 이루어지는 또 다른 이유는 공사 기간의 단축에 익숙한 정책 때문이다. 전국의 공사 현장을 유심히 보면 “통행에 불편을 끼쳐 대단히 죄송합니다. 빠른 시일 내에 마치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문구를 자주 볼 수 있다. 나는 이 같은 문구를 보면 화가 치민다. 왜냐하면 왜 공사 자체가 죄송한 일이며, 왜 빨리 끝내야만 하는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드시 해야 할 공사라면 미안할 필요도 없거니와 공사 기간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지 빨리 끝낼 이유가 없다. 나는 어느 날 여행하다가 “공사 기간을 1년을 앞당겼습니다.”라는 현수막을 보고 기절할 뻔했다. 어떻게 공사를 1년 동안 앞당길 수가 있단 말인가. 1년 동안 앞당길 수 있었다면 처음부터 공사 기간을 1년 앞당기는 쪽으로 잡아서 공사해야 정상이다. 공사 기간을 1년 앞당겼다는 것은 결국 공사 기간을 정확하게 분석하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정책을 세웠다는 뜻이다. 공사를 1년 앞당길 정도면 예산 낭비가 엄청나다. 그런데도 마치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는 개선 장군처럼 당당하게 그 사실을 자랑하는 배짱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충대충 빨리빨리’ 습관은 선진국으로 성장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다. 토목 공사를 꼼꼼하고 정확하게 진행하면 예산을 엄청나게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토목 공사 자체를 많이 줄일 수 있다. 아울러 토목 공사의 예산을 줄이면 우리나라의 취약한 부문, 예컨대 서민복지, 청년 일자리 창출, 출산장려정책, 노인정책, 교육정책 등 아주 중요한 부문에 투자할 수 있다. 게다가 토목 건설을 줄이면 국토를 개발로 바라보는 인식도 줄어들면서 국민의 삶도 자연스럽게 높아진다.
지금도 전국에는 좁을 길을 넓히거나 굽은 길을 직선으로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업은 앞으로 우리나라 금수강산을 훼손하는 주범으로 평가받을 날이 머지 않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비생태적인 국토정책은 언제쯤 바뀔까. 국토정책이 생태적인 방향으로 바뀔 날은 언제일까. 아무리 외쳐도 대답 없는 메아리를 언제까지 지켜봐야만 하는 걸까. 그 어떤 것도 바꿀 수 없는 지식인의 나약함에 자괴감만 더해가는 초겨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