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금자리를 보살펴 주는 일
보금자리를 보살펴 주는 일
by 권영상 작가 2016.12.08
이태 전, 창밖에 으름덩굴을 심어놓고 창문 위에 달린 외등에 줄을 매어주었지요. 으름덩굴은 나 몰래 쉬지 않고 기어올라선 아예 그 외등을 휩싸버렸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지붕을 타고 오릅니다. 그걸 보자 아내는 으름덩굴을 옮겨 심자고 안달입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렇지 않습니다. 창문 벽을 덮는 초록빛 으름덩굴이 보기 좋지요. 밤에 외등을 켜면 덩굴 속에서 은은히 풍겨 나오는 불빛이 또 좋지요. 아내도 거기에 대해선 별다른 이견이 없지만 덩굴 순이 지붕 밑을 파고든다는 게 걱정인 거지요.
엊그제 아침, 파 묻어둔 곳을 보러 나갈 때네요. 으름덩굴에서 참새 한 마리 홀짝 날아올랐지요. 뭐 먹을 걸 찾으러 왔다 가는 모양이구나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월동 준비를 하느라 지난해에 떼어놓은 뽁뽁이를 창문마다 붙여나갈 때입니다. 으름덩굴이 지나가는 창문 유리창에 새똥 자국이 있습니다.
걸레를 해들고 밖에 나갔지요. 의자에 올라 새똥을 닦으며 보니 유리창만이 아닙니다. 으름 잎에도 똥 자국이 말라붙어 하얗습니다. 위를 쳐다보니 외등 받침대에 참새 깃털이 붙어 있습니다.
아, 그렇네요. 참새가 여기에 잠자리하고 있었던 게 분명합니다. 덩굴 속이라 안전할 테지요. 으름 잎이 잘 떨어지지 않으니 서리와 추위 피하기도 좋았을 테지요. 나는 새똥 뒤집어쓴 잎들을 떼어내고, 이왕이면 참새가 드나들기 좋도록 잔가지를 잘라주고는 의자에서 내려왔습니다.
참새들은 주로 요 건너편 할머니 댁 늙은 대추나무에 모여 놉니다. 동이 트는 깜깜한 새벽이면 벌써 참새 소리가 요란히 창을 타고 들어옵니다. 그건 어느 하루만의 일이 아닙니다. 꼭 날 좋은 날의 일만이 아닙니다. 폭우가 쏟아지지 않는 한, 바람이 불든 날이 춥든 서리가 내리든 보슬비 오든 변함없이 거기 모여 새벽을 열어젖힙니다.
새벽만의 일이 아니지요. 해가 뜨면 해가 뜨는 종일 마치 이 땅의 숨소리처럼 쉬지 않고 조잘대지요. 꼭 할머니 댁 대추나무에서만 노는 게 아닙니다. 그들은 거기가 싫증 나면 훌쩍 날아올라 이쪽 수수밭으로 달려들고, 또 거기서 볼일을 다 마치면 산 아래 들깨를 털고 난 자리에 훌쩍 모여들지요. 그렇게 떼 지어 자리를 옮겨 다녀도 결코 마을을 벗어나는 법이 없습니다. 그들은 살던 땅을 소중히 여기지요. 주야장천, 좋으나 싫으나 그 터에서 하루를 열고 또 일몰을 맞지요.
일몰이 끝나면 그들은 대열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거처로 뿔뿔이 돌아갑니다. 지금 우리 집 으름덩굴에 와 잠을 청하는 참새도 그중 하나일 테지요. 편안하진 않겠지만 여기 으름덩굴이 감싸주는 외등 받침대가 참새에겐 돌아올 집이었겠지요. 그만한 집이라도 없었다면 천천히 다가오는 일몰이 또 얼마나 두려웠겠나요. 다들 돌아갈 집이 있는데 그 혼자 돌아갈 집이 없었다면 또 얼마나 외로웠겠나요.
나는 무심한 으름덩굴을 올려다봅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허술한 나무 덩굴이지만 그곳은 이미 한 생명을 지켜주는 보금자리입니다. 으름덩굴을 파서 옮기느니 가지를 치고 솎아주어 가며 여기 이 창밖에 그냥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여전히 어느 이름 없는 새의 잠자리를 보살펴 주는 일을 그에게 맡겨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렇지 않습니다. 창문 벽을 덮는 초록빛 으름덩굴이 보기 좋지요. 밤에 외등을 켜면 덩굴 속에서 은은히 풍겨 나오는 불빛이 또 좋지요. 아내도 거기에 대해선 별다른 이견이 없지만 덩굴 순이 지붕 밑을 파고든다는 게 걱정인 거지요.
엊그제 아침, 파 묻어둔 곳을 보러 나갈 때네요. 으름덩굴에서 참새 한 마리 홀짝 날아올랐지요. 뭐 먹을 걸 찾으러 왔다 가는 모양이구나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월동 준비를 하느라 지난해에 떼어놓은 뽁뽁이를 창문마다 붙여나갈 때입니다. 으름덩굴이 지나가는 창문 유리창에 새똥 자국이 있습니다.
걸레를 해들고 밖에 나갔지요. 의자에 올라 새똥을 닦으며 보니 유리창만이 아닙니다. 으름 잎에도 똥 자국이 말라붙어 하얗습니다. 위를 쳐다보니 외등 받침대에 참새 깃털이 붙어 있습니다.
아, 그렇네요. 참새가 여기에 잠자리하고 있었던 게 분명합니다. 덩굴 속이라 안전할 테지요. 으름 잎이 잘 떨어지지 않으니 서리와 추위 피하기도 좋았을 테지요. 나는 새똥 뒤집어쓴 잎들을 떼어내고, 이왕이면 참새가 드나들기 좋도록 잔가지를 잘라주고는 의자에서 내려왔습니다.
참새들은 주로 요 건너편 할머니 댁 늙은 대추나무에 모여 놉니다. 동이 트는 깜깜한 새벽이면 벌써 참새 소리가 요란히 창을 타고 들어옵니다. 그건 어느 하루만의 일이 아닙니다. 꼭 날 좋은 날의 일만이 아닙니다. 폭우가 쏟아지지 않는 한, 바람이 불든 날이 춥든 서리가 내리든 보슬비 오든 변함없이 거기 모여 새벽을 열어젖힙니다.
새벽만의 일이 아니지요. 해가 뜨면 해가 뜨는 종일 마치 이 땅의 숨소리처럼 쉬지 않고 조잘대지요. 꼭 할머니 댁 대추나무에서만 노는 게 아닙니다. 그들은 거기가 싫증 나면 훌쩍 날아올라 이쪽 수수밭으로 달려들고, 또 거기서 볼일을 다 마치면 산 아래 들깨를 털고 난 자리에 훌쩍 모여들지요. 그렇게 떼 지어 자리를 옮겨 다녀도 결코 마을을 벗어나는 법이 없습니다. 그들은 살던 땅을 소중히 여기지요. 주야장천, 좋으나 싫으나 그 터에서 하루를 열고 또 일몰을 맞지요.
일몰이 끝나면 그들은 대열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거처로 뿔뿔이 돌아갑니다. 지금 우리 집 으름덩굴에 와 잠을 청하는 참새도 그중 하나일 테지요. 편안하진 않겠지만 여기 으름덩굴이 감싸주는 외등 받침대가 참새에겐 돌아올 집이었겠지요. 그만한 집이라도 없었다면 천천히 다가오는 일몰이 또 얼마나 두려웠겠나요. 다들 돌아갈 집이 있는데 그 혼자 돌아갈 집이 없었다면 또 얼마나 외로웠겠나요.
나는 무심한 으름덩굴을 올려다봅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허술한 나무 덩굴이지만 그곳은 이미 한 생명을 지켜주는 보금자리입니다. 으름덩굴을 파서 옮기느니 가지를 치고 솎아주어 가며 여기 이 창밖에 그냥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여전히 어느 이름 없는 새의 잠자리를 보살펴 주는 일을 그에게 맡겨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