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귀로’에 묻어나는 푸근함

‘귀로’에 묻어나는 푸근함

by 이규섭 시인 2016.12.02

세 여인이 나란히 걸어가는 뒷모습이 푸근하다. 두 여인은 머리에 바구니를 이고 한 여인은 아이를 등에 업은 고단한 하루다. 새들도 ‘둥지’를 찾아가는 해거름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간다. 붉은빛 화강암 색조에 따스함이 묻어나는 박수근(1914∼1965)의 ‘귀로(歸路)’와 마주하니 설레고 벅차다.
강원도 양구에 위치한 박수근미술관 특별기획전 ‘귀로’ 전시장을 지난주 찾았다. 말년의 ‘귀로’ 연작 풍경화 가운데 한 작품으로 1965년 국내 전시에서 딱 한 번 관객과 만났다고 한다. 당시 한국에 머물던 미국인 허브 누트바 씨가 이 작품을 구매해 소장해 오다가 지난해 10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 패서디나 시의 남캘리포니아대(USC) 퍼시픽 아시아 뮤지엄에 기증했다. 박수근미술관에서 작품 대여를 요청해 51년 만에 귀향하여 공개됐다.
바짝 말린 조기 두 마리를 그린 정물화 ‘굴비’에도 사연이 담겼다. 박수근 화백이 1962년 서울 소공동 반도호텔 화랑 점원에게 결혼선물로 준 그림이다. 가난했던 그녀는 2만5천 원에 이 그림을 팔았다. 그녀는 훗날 무명화가 박수근을 국민화가로 만든 주역인 ‘갤러리 현대’ 박명자 회장이다. 그 뒤 박 회장은 이 그림을 2억5천만 원에 되샀다고 한다. 큐레이터는 “3호 크기의 이 작품은 현재 굴비 한 마리에 약 5억 원 간다”고 귀띔한다.
서민들의 삶의 풍경을 서민적인 감각으로 화폭에 담아낸 박수근의 이름을 처음 대한 것은 박완서(1931∼2011)의 데뷔작 ‘나목(裸木)’을 통해서다. 서울 문리과 대학에 다니던 박완서는 육이오로 학업을 중단하고 미군 부대 PX에서 근무하며 미군 장병들의 인물화를 만들어 주는 일을 했다.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가들은 따로 있었고, 미군 장병들과 연결해 주는 일종의 ‘거간꾼’이었다. 화가들 가운데 박수근이 있었다. 처음엔 극장 간판장이 수준 취급을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작품과 인품에 매료됐다. 장편 ‘나목’은 박수근과의 운명적 해후를 바탕으로 쓴 자전적 소설이다.
양구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만 나온 박수근은 집이 가난해 중학교 진학은 포기했으나 화가의 꿈은 접지 못했다. 독학으로 열여덟 살 때 11회 선전(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면서 전업 작가의 꿈에 한 걸음 다가섰다. 1952년 서울 창신동에 내 집을 마련하고 전업 작가로 살았다. 대부분의 대작은 그곳에서 그렸다. 간경화로 1965년에 죽어 경기도 포천에 묻혔다.
양구군은 2002년 ‘박수근미술관’을 지었고 박수근 부부의 묘소도 미술관 뒤 언덕 위로 옮겨왔다. 개관 당시 ‘박수근 작품 없는 박수근미술관’이란 비판을 받았다. 먹고살기 위해 그림을 그때그때 팔았기 때문이다. 생전의 그림 값은 호당 1,000원이었다. 2007년 경매시장에 나온 ‘빨래터’는 45억2000만 원. 낙찰받아 기증한 사람은 박수근이 미군 PX 초상화부에 근무할 때 주한미군으로 있던 존 릭스이다. 수집가들이 소장 작품을 기증하면서 현재 박수근 작품은 110여 점에 이른다. 신산스러운 세월을 겪고 돌아온 길은 아득했어도 무릎에 손을 얹고 앉아 미술관 입구를 바라보는 박수근 동상에 저녁노을이 푸근하게 내려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