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떨림은 신뢰할 수 있다
오히려 떨림은 신뢰할 수 있다
by 한희철 목사 2016.11.09
길을 잃어버렸을 때 방향을 찾기 위해 꺼내 드는 도구가 나침반입니다. 나침반을 꺼내 들면 나침반의 바늘은 파르르 떨기 시작합니다. 떨지 않는 나침반은 좋은 나침반이 아니라 고장 난 나침반일 가능성이 큽니다. 파르르 온몸을 떠는 과정이 있었기에 우리는 마침내 멈춰서는 방향을 신뢰할 수가 있습니다.
아침에 사무실로 나오는 길, 차 안에서 라디오 방송을 듣고 있었습니다. 대개 자동차 안에서는 클래식 방송을 듣습니다. 때마침 방송에서는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를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카를로스는 지휘자로서 매우 특별한 존재로 자리매김이 되고 있습니다. 강력하게 몰아붙이는 힘과 깊이 있는 해석력, 오케스트라를 자기 몸처럼 완벽하게 장악하는 데에서 오는 유연하고 다이내믹한 지휘력 등 매력적인 요소가 많은 지휘자였습니다. 다른 어떤 지휘자들보다도 강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그의 큰 장점이었습니다.
카를로스에 대한 일화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연습과 관련된 것입니다. 카를로스는 레퍼토리를 적게 유지하고 리허설 시간을 보통의 배 이상 잡아 연습했으며, 자기 뜻에 거슬리면 연주를 취소하곤 했답니다. 그런 성향이 오히려 카를로스의 희소성을 높이고 인기를 부추기는 역할을 했다니 아이러니한 일이기도 합니다. 카를로스의 공연은 대체 지휘자를 마련해놓아야 하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티켓은 항상 매진이었다는 것입니다.
카를로스의 화려한 경력에 비한다면 그가 지금까지 녹음한 음반의 수는 의외로 너무 적은데, 대신 그가 손을 댄 음반들은 대부분 명반의 대열에 올라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그가 그만큼 완벽을 추구한 지휘자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카를로스의 신경과민은 유명했습니다. 지나치게 예민했던 그는 협연자를 잘 주도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따르지 않을까봐 늘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특히 무대에 오르기 직전의 긴장 상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답니다. 1970년대 바이에른 국립오페라를 지휘해 ‘장미의 기사’를 연주할 때였습니다. 연주 직전 바이에른 국립오페라의 음악 감독이었던 볼프강 자발리쉬가 카를로스의 대기실을 찾았습니다. 정중한 인사를 하고 뜨거운 악수를 한 뒤 자발리쉬는 카를로스를 무대 앞까지 배웅해주었습니다. 그런데 막이 오를 즈음 카를로스는 거의 노이로제 상태가 되어 무대 위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본 자발리쉬가 괜찮다고 격려하며 등을 떠밀어서 억지로 무대 위로 내보냈다는 것이지요.
카를로스에 관한 이야기 중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던 말은 어느 연주회를 앞두고는 구토까지 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세계적인 거장, 그런데도 그런 떨림이 있었다는 것이 뜻밖이었습니다. 떨림이 없는 것이 문제, 오히려 떨림은 얼마든지 신뢰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침에 사무실로 나오는 길, 차 안에서 라디오 방송을 듣고 있었습니다. 대개 자동차 안에서는 클래식 방송을 듣습니다. 때마침 방송에서는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를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카를로스는 지휘자로서 매우 특별한 존재로 자리매김이 되고 있습니다. 강력하게 몰아붙이는 힘과 깊이 있는 해석력, 오케스트라를 자기 몸처럼 완벽하게 장악하는 데에서 오는 유연하고 다이내믹한 지휘력 등 매력적인 요소가 많은 지휘자였습니다. 다른 어떤 지휘자들보다도 강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그의 큰 장점이었습니다.
카를로스에 대한 일화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연습과 관련된 것입니다. 카를로스는 레퍼토리를 적게 유지하고 리허설 시간을 보통의 배 이상 잡아 연습했으며, 자기 뜻에 거슬리면 연주를 취소하곤 했답니다. 그런 성향이 오히려 카를로스의 희소성을 높이고 인기를 부추기는 역할을 했다니 아이러니한 일이기도 합니다. 카를로스의 공연은 대체 지휘자를 마련해놓아야 하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티켓은 항상 매진이었다는 것입니다.
카를로스의 화려한 경력에 비한다면 그가 지금까지 녹음한 음반의 수는 의외로 너무 적은데, 대신 그가 손을 댄 음반들은 대부분 명반의 대열에 올라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그가 그만큼 완벽을 추구한 지휘자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카를로스의 신경과민은 유명했습니다. 지나치게 예민했던 그는 협연자를 잘 주도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따르지 않을까봐 늘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특히 무대에 오르기 직전의 긴장 상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답니다. 1970년대 바이에른 국립오페라를 지휘해 ‘장미의 기사’를 연주할 때였습니다. 연주 직전 바이에른 국립오페라의 음악 감독이었던 볼프강 자발리쉬가 카를로스의 대기실을 찾았습니다. 정중한 인사를 하고 뜨거운 악수를 한 뒤 자발리쉬는 카를로스를 무대 앞까지 배웅해주었습니다. 그런데 막이 오를 즈음 카를로스는 거의 노이로제 상태가 되어 무대 위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본 자발리쉬가 괜찮다고 격려하며 등을 떠밀어서 억지로 무대 위로 내보냈다는 것이지요.
카를로스에 관한 이야기 중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던 말은 어느 연주회를 앞두고는 구토까지 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세계적인 거장, 그런데도 그런 떨림이 있었다는 것이 뜻밖이었습니다. 떨림이 없는 것이 문제, 오히려 떨림은 얼마든지 신뢰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