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2000년 전 기록은 뭘까

2000년 전 기록은 뭘까

by 이규섭 시인 2016.10.28

고고학에도 첨단과학 기술을 동원한 도전이 시작됐다. 이탈리아 초소형전자공학연구소 비토 모첼라 연구팀은 지난해 숯덩어리 상태인 파피루스 두루마리의 문자를 읽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보도가 최근 나왔다. 파피루스는 종이의 원조로 열을 받으면 숯처럼 새까맣게 탄화(炭化)된다.
억지로 펴려고 하면 바스러지기 때문에 강력한 X선으로 파피루스의 내부를 꿰뚫어 글자를 읽어냈다니 놀랍다. 두루마리가 발견된 헤르쿨라네움은 베수비오 화산 폭발 때 폼페이와 함께 잿더미에 묻힌 이웃 도시다.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의 도서관과 공공기관에 쌓여 있는 탄화 문서들을 읽을 수 있다면 로마 연구의 방향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지난해 29년 만에 다시 찾은 폼페이는 옛 모습을 95% 복원했다고 한다. 사라진 도시 중 가장 완벽하게 복원된 도시다. 폼페이 최후의 날은 AD 79년 8월 24일 아침. 로마 시민들의 여름철 휴양도시 폼페이는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고통 속에 죽어간 사람들의 형체를 보면서 화산 폭발이 순식간에 일어났는지 짐작이 간다.
2000년 긴 잠에서 깨어난 ‘꿈의 도시’ 폼페이는 계획도시다. 집집마다 수도가 공급됐고 하수도 시설도 갖췄다. 우리나라가 ‘뚝도수원지’에 정수장을 만들어 수돗물을 처음 공급한 것이 불과 100여 년 전인 데 2000년 전에 상·하수도 혜택을 누렸으니 탄성이 절로 나온다. 사람과 마차가 서로 다른 길을 다니도록 도로 시스템을 구축한 것도 획기적이다.
붉은 벽돌 건물의 구조적 아름다움은 물론 지진에도 끄떡없다. 마당의 화려한 모자이크와 조각품 등은 당시의 문화 수준을 짐작게 한다. 신전과 관공서, 시장이 몰려 있는 중앙광장은 생활 중심 공간이다. 1만2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경기장과 대극장, 소극장을 별도로 갖췄다. 폼페이 문화의 핵심은 상업 도시라는 경제력을 배경으로 그리스 전통을 이어받아 로마식의 강건함과 화려함을 더한 헬레니즘 문화를 만들어내고 꽃피웠다는 데 있다.
부호 베티 형제 저택의 조각과 그림, 윤락가의 춘화는 폼페이가 환락의 도시였음을 상징한다. 공중목욕탕은 안마실, 탈의실, 미온탕, 열탕과 함께 천장에 홈을 파 증기가 스미도록 한 사우나 시설까지 완벽하다. 목욕탕 천장 중앙과 동서 쪽 3면에 비스듬히 유리를 끼워 태양열 난방을 이용했다.
홍등가 유적 복원은 2006년 마무리됐다. 복층 구조 건물에는 층마다 5개의 방과 1개의 화장실이 구비돼 있다. 2층은 지위가 높은 손님들을 위한 곳으로, 매트리스가 얹혀 있는 돌침대로 꾸며 놓았다. 낯 뜨거운 프레스코 춘화는 29년 전보다 색이 많이 바랬다. 맞은편은 여관과 고객들이 마차를 보관하던 곳이다.
폼페이가 번영의 절정기에 화산의 폭발로 사라진 것은 향락문화와 쾌락주의에 대한 신의 분노라는 평가가 있다. 어떤 학자는 폼페이를 타락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에 비유한다. 탄화문서가 판독되면 더는 밝혀낼 것이 없어 보이는 폼페이에 어떤 역사 기록이 드러날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