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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언단의장(言短意長)의 미학

시조, 언단의장(言短意長)의 미학

by 김민정 박사 2016.10.24

달빛 한 사발을
누가 건져 올리는가

차르르르
물소리가
봄밤을 다 적신다

짧아도
너무 짧았던
그 밤에 스친,
눈빛

- 졸시, 「홍매」 전문

며칠 전 시조시인들의 연간집 《시조미학》에 ‘내 생애 한 편의 시조’에 대해 원고 청탁을 받았다. 황진이의 ‘동짓달 기나긴 밤’을 소개했다.‘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 어른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라는 내용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시조, 나도 예외는 아니다. 내가 그 시조를 좋아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는 무척 진솔하다는 것이다. 조선 시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힘든 시기, 자신의 감정을 숨김없이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임 없는 쓸쓸한 긴 겨울밤을 잘라다가 임 오신 봄밤에 길게 늘려 굽이굽이 펴겠다는 발상이다.
찬 겨울과 따뜻한 봄, 긴 밤과 짧은 밤을 대조시키는 시적 능력이 탁월하다는 점이다. 셋째는 서리서리, 굽이굽이 등의 첩어를 사용하여 의미를 강조하는 등 우리말의 구사 능력이 아주 뛰어나다는 점이다. 넷째는 3장 6구 12음보 45자 내외의 짧은 글귀 속에 자기 뜻을 다 전달했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나도 이 시조를 좋아하고, 시조에 대한 매력을 느껴 시조를 창작하게 되었다.
문학은 종교가 아니고, 철학도 아니며, 도덕도 아니다. 문학에서 추구하는 것은 진(眞)이며, 선(善)이며, 미(美)다. 문학은 인간다운 진실을 추구하고, 남에게 도움이 되는 착함을 추구하고, 감동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종교를 초월하고, 철학을 초월하고, 도덕도 초월하여 존재하는 것이 문학이라면 그것은 어느 것에도 속박되어서는 안 되는 자유인의 표상, 자유 정신의 표상이어야 한다. 종교, 철학, 도덕, 권력, 재력,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때만이 어느 것에도 구애됨이 없고, 어느 것에도 속박됨이 없는 자유로운 문학정신이 나타날 것이며 문학다운 문학이 창작될 것이다.
생활 속의 잡다한 생각, 감정, 번뇌들이 내 시의 주제가 되고 있다. 내가 쓰는 한 편의 시 속에는 나의 모든 사유와 생활이 담겨 있을 것이다.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나타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초월하고 싶은 자유 정신이 녹아 있을 것이다. 아름다움을 보고 감탄하고, 만남을 기뻐하고, 이별을 슬퍼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이 담겨 있다. 인간의 보편적인 생각과 감정으로 황진이 시조보다 더 멋진 사랑 시조도 쓰고 싶다.
우리의 시조는 12음보만 잘 맞춘다면 한 음보 안에서 한두 글자가 많거나 적어도 자연스러운 작품이 된다. 얼마나 적절한 낱말을 그 자리에 앉혀야, 말은 짧고 뜻은 긴 언단의장(言短意長)의 문장이 될까 하고 나는 늘 고민한다. 적확한 언어를 그 자리에 놓을 수 있는 언어의 조련사가 되고 싶고, 군더더기의 말은 과감하게 생략할 줄 아는 결단력 있는 시인이고 싶다. 언단의장(言短意長)의 미학을 제대로 살려 더욱 아름다운 시조작품을 써서 사람들의 가슴 속에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시조의 아름다움을 심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