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영화 ‘5일의 마중’

영화 ‘5일의 마중’

by 권영상 작가 2016.10.06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다. 영화 ‘5일의 마중’ 속에도 가을비가 내린다. 빗속을 뚫고 온 사내가 여인의 집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린다. 한 번, 두 번. 그가 누군지 알고 있는 여인은 눈물 가득한 눈으로 꼼짝없이 문을 바라본다.
문화대혁명의 와중 속에 반혁명분자로 낙인찍혀 숨어 지내던 루옌스(진도명 역)가 비 내리는 밤, 은밀히 자신의 옛집을 찾아온 것이다.
그의 아내 펑완위(공리 역)는 두려움에 떨며 문을 열지 못한다. 루옌스는 ‘내일 아침 8시 기차역에서 만나자’는 쪽지를 문 밑으로 밀어 넣고 계단을 내려선다. 학교 발레단에서 주인공 역을 맡고 싶었던, 모택동 사상에 심취한 딸 단단(장혜문 역)은 이 정보를 혁명대에 신고한다.
그 일로 감옥에 잡혀간 루옌스는 무려 20년 만에 문화혁명의 종말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아내에게 편지를 쓴다. 5일에 도착할 거라고. 어쩐지 딸 단단의 마중을 받으며 집에 돌아온 루옌스는 아내 펑완위를 보고 당황한다.
아내가 자신이 누군지를 모른다는 사실이다. 남편인 자신을 눈앞에 두고도 자신이 그동안 자신을 감시하고 폭행해온 펑 아저씨로 알고 있다. 출옥하여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거라는 편지를 받고 남편을 기다리는 그사이, 아내는 심인성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말았다.
한집에 살지 못하는 루옌스는 날마다 아내를 찾아가 자신이 당신의 남편이라고 말해보지만 아내는 한사코 자신을 모른다. 아내의 기억을 되돌리기 위해 감옥에서 보낸 그 많은 편지를 매일 매일 읽어주지만 그 일도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자신을 점점 ‘편지 읽어주는 사람’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아내는 매월 5일이 되면 거울 앞에 조용히 앉는다. 기차를 타고 돌아올 ‘남편’을 마중 가기 위해 곱게 머리를 빗는다. 그리고 남편의 이름을 적은 큼직한 피켓을 들고 기차역으로 나가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 출구의 문이 닫히면 무겁게 돌아선다.
아내는 남편을 맞기 위해 남편이 즐겨 치던 피아노를 조율하려 조율사를 구한다. 이 사실을 안 루옌스는 조율사를 자처하며 아내를 찾아와 조율을 마치고 그 옛날의 피아노를 친다. 그때다. 아내는 그 추억의 소리에 가까이 다가와 루옌스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루옌스는 그런 아내를 껴안고 회한의 눈물을 흘리지만 아내의 비명에 다시 놀란다.
“나가! 나가! 이 나쁜 펑 아저씨! 여기가 어디라고!”
아내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루옌스는 펑 아저씨를 찾아가지만 오히려 펑의 아내에게 비정한 혁명분자로 오인받고 심한 욕설을 듣는다. 타인을 감시하고 폭력을 행사하던 사람들조차 문화혁명에 희생되기는 마찬가지. 그녀도 남편을 잃었다.
중국을 휘몰아친 문화대혁명의 비극이 한 개인을, 또는 한 가정을, 한 사회를 어떻게 파탄시켰는지를 보여주는 장예모 감독의 영화다. 비극적 역사를 간결하면서도 여운 있게 만들어낸 거장의 작품다운 영화다. 배우 공리의 내면의 연기가 주제를 더욱 그윽하게 만든다.
새벽 3시부터 내려 6시에 그친다던 비는 약속대로 그치고 영화도 그쳤다. 일어나 창가에 가 선다. 계절이 가을 속으로 빠져든다. 서늘하다. 지난여름도, 우리네 정치 현실도 ‘5일의 마중’처럼 잔인했고, 지금도 잔인하다. 우리 사는 세상이 희망적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