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새 날 듯이 가는 길

새 날 듯이 가는 길

by 한희철 목사 2016.10.05

우연히 ‘도리화가’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지난해 상영된 영화인데 기대했던 만큼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던가 봅니다. 한 번 흥행하면 천만이라는 숫자가 회자되는 시절임을 생각하면, 관람객 수도 생각만큼 많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평소에 영화에 많은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랬겠지만, 저는 그런 영화가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하긴 제목을 보면서도 어떻게 띄어서 읽어야 하는지, 그 뜻은 무엇인지 아무것도 짐작이 되는 것이 없었으니까요.
‘도리화’(桃梨花)는 복숭아꽃과 자두꽃(자두나무꽃)을 말하는 것으로, 여인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말이었습니다. ‘도리화가’(桃梨花歌)는 조선 후기 신재효가 지은 판소리 단가(短歌)로 신재효가 최초의 여류 명창이 된 24세의 제자 진채선에게 주었다는 사랑이 담긴 노래였습니다. 바람에 날아와 우연히 떨어진 씨앗 하나가 뿌리를 내리고 마침내 싹이 돋아 자라나듯 영화를 보면서 무엇보다도 두 주인공의 눈빛과 표정을 통해서 전해지는 스승과 제자 사이의 애틋한 감정에 마음이 갔는데, 영화 ‘서편제’를 보았기 때문일까요, 판소리로 이어지는 극 중 전개가 편안하고 그윽하게 여겨졌습니다.
화면 곳곳에 우리 산하의 빼어난 풍광이 담겨 영화의 아름다움을 더했는데, 영화 중 마음속에 인상 깊게 남은 한 장면이 있습니다. 채선이 스승을 찾아가는 마지막 장면이었습니다. 연모와 사랑과 존경의 대상인 스승과 어쩔 수 없이 헤어진 뒤 눈물의 편지로 그리움을 대신하던 채선은 마침내 대원군의 허락을 받아 스승을 찾아가게 됩니다. 꿈에도 그리던 길, 스승 또한 막막함으로 기다리던 길이었으니 그 길이 얼마나 가슴 떨리는 길일지는 영화를 본 사람은 누구라도 충분히 짐작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채선은 하늘 가득 눈발이 날리는 언덕을 넘어질 듯 넘어질 듯 달려갑니다. 그런 채선의 모습은 하나의 점처럼 풍경의 일부처럼 보여 마치 한 장의 판화 같기도 하고 한 폭의 수묵화 같기도 합니다. 보이지 않는 지휘자를 따라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디선가 대금을 불고 있다는 느낌도 듭니다.
그런 채선의 모습을 볼 때 우리 속담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우리 속담 중 ‘친정 길은 참대 갈대 엇벤 길도 신 벗어들고 새 날 듯이 간다’는 것이 있습니다. 참대와 갈대밭을 지나면 신을 제대로 신어도 발이 베이기 십상입니다. 그런데도 친정을 찾는 길이 얼마나 설레고 좋은지 발이야 베든 말든 신을 벗어들고 새가 나는 것처럼 간다고 하니, 친정을 찾아가는 딸의 기쁨이 눈물겹게 전해집니다.
그만한 설렘과 그리움으로 찾아가는 길과 사람이 우리에게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얼마나 좋은지 폭설이 내려도, 눈길에 넘어져도, 참대와 갈대에 발이 베어도 그러거나 말거나 신 벗어들고 한달음에 달려갈 걸음이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새 날 듯이 달려가는 기쁘고 들뜬 걸음이 사라져버린, 어쩌면 오늘 우리의 삶이 메마르고 팍팍해진 것은 그런 걸음이 사라진 것과 무관하지 않겠다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