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by 한희철 목사 2016.09.28

언제까지나 물러설 것 같지 않은 여름도 때가 되니 착한 아이처럼 때를 따릅니다. 밝음과 어둠의 분기점인 ‘처서’를 지나자 자신의 고집을 내려놓는다 싶습니다. 어느새 노루 꼬리 만큼씩 해가 짧아지며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한동안 못 본 사이에 훌쩍 자란 조카의 키처럼 하늘도 높아졌습니다. 풀벌레 소리는 점점 영역과 음을 넓히고 높이고 있고요. 햇살의 변화를 느낀 걸까요, 나뭇잎의 빛깔도 조금씩 순해지고 있다 싶습니다. 태양 아래 펼쳐진 붉은 고추들, 어느새 가을은 우리 가까운 곳까지 찾아왔습니다.
가을이 되면 떠오르는 노래들이 있습니다. 제목이든 가사든 분위기든 가을을 담은 노래들이 생각납니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지겠지만, 가을과 관련해서 떠오르는 노래들이 제게도 몇 곡이 있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는 신계행의 ‘가을 사랑’입니다. “그대 사랑 가을 사랑 단풍 일면 그대 오고 그대 사랑 가을 사랑 낙엽 지면 그대 가네 그대 사랑 가을 사랑 파란 하늘 그대 얼굴 그대 사랑 가을 사랑 새벽안개 그대 마음” 매우 단순한 가사이지만 가사에 어울리는 곡을 만나서 그럴까요, 가을의 느낌이 물씬 묻어납니다.
몇몇 사람들이 불렀지만 제게는 패티 킴의 노래로 기억되는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람’도 있습니다.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람 겨울은 아직 멀리 있는데 사랑할수록 깊어가는 슬픔의 눈물은 향기로운 꿈이었나 당신의 눈물이 생각날 때 기억에 남아있는 꿈들이 눈을 감으면 수많은 별이 되어 어두운 밤하늘에 흘러가리 아 그대 곁에 잠들고 싶어라 날개를 접은 철새처럼 음 눈물로 씐 그 편지는 꼭 다시 지우렵니다 내 가슴에 꿈은 멀리 있지만 내 사랑 꽃이 되고 싶어라 아 그대 곁에 잠들고 싶어라 날개를 접은 철새처럼 음 눈물로 씐 그 편지는 꼭 다시 지우렵니다 내 가슴에 꿈은 멀리 있지만 내 사랑 꽃이 되고 싶어라” 날개를 접은 철새처럼 그대 곁에 잠들고 싶다는 고백이 참 그윽하다 여겨집니다.
가을에 관한 노래 중 빠뜨리고 싶지 않은 노래도 있습니다. 고은 시인이 작시한 ‘가을편지’입니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흩어진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모든 것을 헤맨 마음 보내드려요 낙엽이 사라진 날 헤맨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할 터이니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달라는 가사는 가을에 대한 절창이 아닌가 싶습니다. 굳이 수신인을 따로 정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아무에게라도 편지를 쓰고 싶은 그리움을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가 읽어도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은 누구에게 보여도 부끄러울 것 없는 그리움이 담기기 때문이겠지요. 곱게 물든 이파리가 떨어질 때 한 닢 한 닢 나뭇잎을 엽서나 편지지 삼아 누군가에게 편지를 띄운다면, 아마도 가을에 물드는 것은 나뭇잎만이 아니겠다 싶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더 붉게 물들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