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보다 꿈대
꼰대보다 꿈대
by 김재은 대표 2016.09.13
엊그제 일이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 노약자석에서 한바탕 말다툼이 일어났다. 부인과 함께 노약자석에 앉았던 한 노인(A)에게 다른 노인(B)이 ‘젊은 사람이 거기에 앉았다’며 타박을 한 것이다. 그런데 A 노인은 자신이 38년 범띠, 곧 80이어서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다며 상관하지 말라며 말을 받아쳤다. 언뜻 보기엔 60대 중반으로 보였는데 그보다 10여 년 위였다. 두 사람의 말다툼은 한동안 계속되었고, 언성은 지하철 좌중을 압도했다.
A 노인은 말다툼 중에 노약자석은 ‘하루종일 수고하는 젊은이들이 앉아야 해. 그들이 얼마나 고생하는데, 노인들은 매일 먹고 놀자나.’라며 나름의 논리로 노약자석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평소 ‘힘들어하는 젊은이가 앉을 수도 있어야지, 무조건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생각을 해 왔는데, A 노인의 이야기를 들으니 괜히 마음이 편안해졌다. 고령화가 심해지는 우리의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동방예의지국이라며 나이든 사람에 대한 공경은 우리 사회의 미덕으로 이어져 온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의당 그럴 수 있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었다는 것만으로 만능키 행세를 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런 면에서 누가 더 나이가 많으냐는 이른바 ‘민증까기’ 문화는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나이든 내가 경험한 것이 옳으니 너희들은 내 말을 들어야 한다는 유치한 나이 자랑은 강물에 띄워 보내야 한다.
꼰대라는 말이 있다. 나이가 많다고 젊은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충고하고 훈계하고 나무라는 ‘짓’을 하는 기성세대를 일컫는 은어이다. ‘나이’만을 근거로 무시하고 큰소리치는 꼰대질이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 발전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지만 요즘같이 급속도로 변하는 시대에는 과거의 생각이나 지식, 경험 등이 도움은커녕 때로는 결정적 장애가 되기도 한다. 물론 선배들의 인생 경험이나 지혜는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문제는 그들의 조화, 균형적인 만남, 나아가 서로를 관대하게 지켜봐 주고 응원해주는 문화의 부재가 더 큰 과제이다.
우리 사회는 ‘갈등 공화국’이라고 할 정도로 수많은 갈등으로 인해 엄청난 비용을 지급하고 있다. 그중에 세대갈등은 그 중심부에 있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독재와 산업화시대 등 곡절이 많은 역사 속에서 그 경험 유무에 따라 세대 간의 생각이 전혀 다른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기보다는 내 생각만이 옳다며 관철하려는 모습이 강하다. 소통의 가장 기본적이라 할 역지사지의 자세가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
나도 어느새 ‘꼰대질’의 혐의가 있는 세대로 다가가고 있지만 이렇게 주장하고 싶다.
내 생각만이 옳다는 나이나 선배 알레르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양보받는 삶, 충고하는 삶이 아니라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존중받는 삶을 선택해야 한다.
이 사회의 미래를 책임지고 갈 젊은 세대를 관대함으로 지켜보고 응원해주고 믿음을 보내주는 진정한 어른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진심이 있는 모습으로 다가갈 때 기성세대의 소중한 자산인 ‘지혜의 언어’가 빛을 발할 것이다. 양자 간에 서로의 역할과 자산이 진심의 다리로 이어지면 우리 시대의 새로운 활로를 찾을 수도 있음은 물론이다.
진정한 마음이 담긴 지갑은 열고 거친 충고와 잔소리가 끝없이 이어지는 입은 닫아야 한다. 어쭙잖은 꼰대 세대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젊은 세대의 찬란함을 땅에 묻어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꼰대질이 아니라 그들의 꿈을 응원하고 힘을 실어주는 ‘꿈대(꿈의 지지대)’가 되는 일이다. 나부터 꿈대가 되어 거기에 서야겠다. 기꺼이.
집으로 가는 지하철 노약자석에서 한바탕 말다툼이 일어났다. 부인과 함께 노약자석에 앉았던 한 노인(A)에게 다른 노인(B)이 ‘젊은 사람이 거기에 앉았다’며 타박을 한 것이다. 그런데 A 노인은 자신이 38년 범띠, 곧 80이어서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다며 상관하지 말라며 말을 받아쳤다. 언뜻 보기엔 60대 중반으로 보였는데 그보다 10여 년 위였다. 두 사람의 말다툼은 한동안 계속되었고, 언성은 지하철 좌중을 압도했다.
A 노인은 말다툼 중에 노약자석은 ‘하루종일 수고하는 젊은이들이 앉아야 해. 그들이 얼마나 고생하는데, 노인들은 매일 먹고 놀자나.’라며 나름의 논리로 노약자석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평소 ‘힘들어하는 젊은이가 앉을 수도 있어야지, 무조건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생각을 해 왔는데, A 노인의 이야기를 들으니 괜히 마음이 편안해졌다. 고령화가 심해지는 우리의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동방예의지국이라며 나이든 사람에 대한 공경은 우리 사회의 미덕으로 이어져 온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의당 그럴 수 있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었다는 것만으로 만능키 행세를 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런 면에서 누가 더 나이가 많으냐는 이른바 ‘민증까기’ 문화는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나이든 내가 경험한 것이 옳으니 너희들은 내 말을 들어야 한다는 유치한 나이 자랑은 강물에 띄워 보내야 한다.
꼰대라는 말이 있다. 나이가 많다고 젊은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충고하고 훈계하고 나무라는 ‘짓’을 하는 기성세대를 일컫는 은어이다. ‘나이’만을 근거로 무시하고 큰소리치는 꼰대질이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 발전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지만 요즘같이 급속도로 변하는 시대에는 과거의 생각이나 지식, 경험 등이 도움은커녕 때로는 결정적 장애가 되기도 한다. 물론 선배들의 인생 경험이나 지혜는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문제는 그들의 조화, 균형적인 만남, 나아가 서로를 관대하게 지켜봐 주고 응원해주는 문화의 부재가 더 큰 과제이다.
우리 사회는 ‘갈등 공화국’이라고 할 정도로 수많은 갈등으로 인해 엄청난 비용을 지급하고 있다. 그중에 세대갈등은 그 중심부에 있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독재와 산업화시대 등 곡절이 많은 역사 속에서 그 경험 유무에 따라 세대 간의 생각이 전혀 다른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기보다는 내 생각만이 옳다며 관철하려는 모습이 강하다. 소통의 가장 기본적이라 할 역지사지의 자세가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
나도 어느새 ‘꼰대질’의 혐의가 있는 세대로 다가가고 있지만 이렇게 주장하고 싶다.
내 생각만이 옳다는 나이나 선배 알레르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양보받는 삶, 충고하는 삶이 아니라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존중받는 삶을 선택해야 한다.
이 사회의 미래를 책임지고 갈 젊은 세대를 관대함으로 지켜보고 응원해주고 믿음을 보내주는 진정한 어른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진심이 있는 모습으로 다가갈 때 기성세대의 소중한 자산인 ‘지혜의 언어’가 빛을 발할 것이다. 양자 간에 서로의 역할과 자산이 진심의 다리로 이어지면 우리 시대의 새로운 활로를 찾을 수도 있음은 물론이다.
진정한 마음이 담긴 지갑은 열고 거친 충고와 잔소리가 끝없이 이어지는 입은 닫아야 한다. 어쭙잖은 꼰대 세대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젊은 세대의 찬란함을 땅에 묻어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꼰대질이 아니라 그들의 꿈을 응원하고 힘을 실어주는 ‘꿈대(꿈의 지지대)’가 되는 일이다. 나부터 꿈대가 되어 거기에 서야겠다. 기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