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 무게
비의 무게
by 권영상 작가 2016.09.08
비 내린다. 한동안 폭염에 시달려 그런지 빗소리가 좋다. 창밖에 내놓은 부겐빌레아 화분의 꽃가지가 몸을 흔드는 모습도 좋다. 폭염은 이미 우리 곁을 떠나갔지만 우리 몸 어디에 깊은 흔적을 남겼을 게 분명하다. 음식을 조리하는 가스불의 후끈한 열기를 받거나, 햇볕이 조금만 뜨거워도 폭염의 공포를 느낀다.
비를 보며 등산화를 꺼내 신고 집을 나선다. 아파트 후문을 따라난 오솔길 풀숲이 이슬밭처럼 온통 빗방울로 반짝인다. 빗방울들이 풀잎마다 매달렸다. 그 무게에 풀잎이 활처럼 휘었다. 풀잎이 만들어낸 부드럽고 유연한 곡선이다.
오솔길 끝에서 건널목을 건넛산에 들어선다. 산은 벌써 서늘하다. 내가 걸어온 길과 온도 차를 느낄 만큼 심하다. 가을 느낌이다. 산빛이 짙은 초록의 고비를 넘어서고 있다. 무성하기만 하던 산이 아니라 성장을 천천히 늦추는 산이다.
산길을 오르는 내 앞에 커다란 상수리나무 삭정이가 후두두 떨어져 내린다. 바람 한 점 없는 이 산중에 저렇게 큰 삭정이가 떨어지고 있다. 나무도 비에 젖어 무거워진 삭정이를 더는 품고 있을 수 없는 모양이다. 죽은 나뭇가지라면 그것도 나무에겐 짐이다. 끌어안기보다 이제는 서서히 놓아버리는 계절이다.
잣나무숲길을 지나면 아까시나무, 오리나무, 싸리나무, 떡갈나무, 귀룽나무 잡목림이 나온다. 육교 쪽에서 올라오는 산길과 잡목림이 만나는 곳쯤이다. 요 며칠 전까지 서 있던 늙은 오리나무가 쓰러졌다. 간밤 내린 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게 틀림없다. 폭염에 말랐던 몸이니 하룻밤 비도 무거웠을 거다. 쓰러진 나무 밑동이 속이 거의 다 비었다. 나무껍질은 또 새들의 부리 자국으로 온통 험하게 패였다. 어디 성한 곳 하나 없다. 우듬지에 푸른 가지 하나 붙어 있지만 그것이 어떤 연유로 거기 살아남아 있었는지 기적 같다.
비 내리는 깊은 밤, 나무는 비에 젖어 기울어가는 제 몸을 부여잡다 부여잡다 그만 산비탈 젖은 땅에 제 몸을 털썩 내려놓았을 성싶다. 나는 마치 그의 조문객이나 되듯 쓰러진 오리나무 몸뚱이를 바라보며 그가 살아온 지난 삶을 생각한다. 그도 이 땅에 와 산야를 녹음으로 물들이는 일에 저를 바쳤을 것이다. 몸이 좀 불편해도, 아니 하루쯤 쉬고 싶어도 그 일을 위해 참아가며 나무의 소임을 다 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여기 이 산중에 서 있는 무수한 나무들치고 지금 자신들의 임무에 충실하지 않은 나무들이라곤 없다. 이렇다 하게 내세울 게 없는 잡목림이어도 그들 모두 건실한 나무들이다. 나는 이 숲을 부지런히 오르내리며 나무의 힘에 또 얼마나 나약한 나를 의탁했던가.
산에서 내려올 때쯤 빗방울 무게에 활처럼 휘어져 있던 풀숲의 풀잎들이 생각났다. 그때 나는 기껏 그 모습에서 곡선의 유연함이니 어쩌니 그런 한가한 생각을 했지만 정작 그것이 풀잎들의 힘겨운 고충임은 몰랐다. 존재감이 큰 나무만 삶의 고충이 있는 건 아니다. 작지만 미미한 풀잎도 마찬가지일 테다. 힘없고, 힘없어 낮은 땅에 사는 풀잎이라고 왜 빗방울 무게의 고충을 모르겠는가.
어제까지 몰랐는데 이 비가 그친 뒤에야 비로소 생명의 이치를 안다. 어쩌면 폭염이 가르쳐준 교훈이 아닌가 싶다.
비를 보며 등산화를 꺼내 신고 집을 나선다. 아파트 후문을 따라난 오솔길 풀숲이 이슬밭처럼 온통 빗방울로 반짝인다. 빗방울들이 풀잎마다 매달렸다. 그 무게에 풀잎이 활처럼 휘었다. 풀잎이 만들어낸 부드럽고 유연한 곡선이다.
오솔길 끝에서 건널목을 건넛산에 들어선다. 산은 벌써 서늘하다. 내가 걸어온 길과 온도 차를 느낄 만큼 심하다. 가을 느낌이다. 산빛이 짙은 초록의 고비를 넘어서고 있다. 무성하기만 하던 산이 아니라 성장을 천천히 늦추는 산이다.
산길을 오르는 내 앞에 커다란 상수리나무 삭정이가 후두두 떨어져 내린다. 바람 한 점 없는 이 산중에 저렇게 큰 삭정이가 떨어지고 있다. 나무도 비에 젖어 무거워진 삭정이를 더는 품고 있을 수 없는 모양이다. 죽은 나뭇가지라면 그것도 나무에겐 짐이다. 끌어안기보다 이제는 서서히 놓아버리는 계절이다.
잣나무숲길을 지나면 아까시나무, 오리나무, 싸리나무, 떡갈나무, 귀룽나무 잡목림이 나온다. 육교 쪽에서 올라오는 산길과 잡목림이 만나는 곳쯤이다. 요 며칠 전까지 서 있던 늙은 오리나무가 쓰러졌다. 간밤 내린 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게 틀림없다. 폭염에 말랐던 몸이니 하룻밤 비도 무거웠을 거다. 쓰러진 나무 밑동이 속이 거의 다 비었다. 나무껍질은 또 새들의 부리 자국으로 온통 험하게 패였다. 어디 성한 곳 하나 없다. 우듬지에 푸른 가지 하나 붙어 있지만 그것이 어떤 연유로 거기 살아남아 있었는지 기적 같다.
비 내리는 깊은 밤, 나무는 비에 젖어 기울어가는 제 몸을 부여잡다 부여잡다 그만 산비탈 젖은 땅에 제 몸을 털썩 내려놓았을 성싶다. 나는 마치 그의 조문객이나 되듯 쓰러진 오리나무 몸뚱이를 바라보며 그가 살아온 지난 삶을 생각한다. 그도 이 땅에 와 산야를 녹음으로 물들이는 일에 저를 바쳤을 것이다. 몸이 좀 불편해도, 아니 하루쯤 쉬고 싶어도 그 일을 위해 참아가며 나무의 소임을 다 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여기 이 산중에 서 있는 무수한 나무들치고 지금 자신들의 임무에 충실하지 않은 나무들이라곤 없다. 이렇다 하게 내세울 게 없는 잡목림이어도 그들 모두 건실한 나무들이다. 나는 이 숲을 부지런히 오르내리며 나무의 힘에 또 얼마나 나약한 나를 의탁했던가.
산에서 내려올 때쯤 빗방울 무게에 활처럼 휘어져 있던 풀숲의 풀잎들이 생각났다. 그때 나는 기껏 그 모습에서 곡선의 유연함이니 어쩌니 그런 한가한 생각을 했지만 정작 그것이 풀잎들의 힘겨운 고충임은 몰랐다. 존재감이 큰 나무만 삶의 고충이 있는 건 아니다. 작지만 미미한 풀잎도 마찬가지일 테다. 힘없고, 힘없어 낮은 땅에 사는 풀잎이라고 왜 빗방울 무게의 고충을 모르겠는가.
어제까지 몰랐는데 이 비가 그친 뒤에야 비로소 생명의 이치를 안다. 어쩌면 폭염이 가르쳐준 교훈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