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살의 새로운 사춘기
39살의 새로운 사춘기
by 김재은 대표 2016.09.01
그때 한 소녀가 있었다.
넉넉한 가정에 태어났지만 부모가 정한 정답의 틀 속에서 자유를 저당 잡힌 채 자랐다.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지만 언감생심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부모, 특히 어머니의 각본, 연출대로 살아야 하는 무대 위의 서러운 주연배우였다.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시절은 물론이고, 대학선택, 심지어 자신의 짝인 배우자 선택도 어머니가 했다. 그야말로 그녀의 삶은 독재자 치하의 억압된 삶 그대로였다.
아~ 이런이런~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났다는 게 이런 경우일까.
결혼하면서 이제 자유를 얻나 싶었는데 그 바통이 어머니에게서 남편으로 이어졌는지 독재 시절은 변함이 없었다. 아니 더 혹독한 암흑기였다.
부모야 딸을 사랑하는 마음에 그런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남편은 아니었다. 이유 없이 깜깜한 밤 속에 있는 자신이 너무도 서럽고 한심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라도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견디고 버티며 살다가 39살이 되던 해, 드디어 그녀는 자유의 세계로 탈출하는 스스로 혁명을 시도한다. 더는 이런 삶을 살 수 없다고 선언하고 ‘갈 길’을 찾는다. 구속된 삶의 울타리를 넘어 공부를 시작한다.
인생 100세 시대, 복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그녀는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지금은 복지전문가로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복지 관련 단체에서 사회운동도 하고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데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었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다 순간 그녀가 새로운 사춘기(思春期)를 맞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어쩔 수 없는 삶의 굴레에 체념하고 그냥 살아가기보다는 용기를 내어 자신의 자유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는 길을 택한 그녀가 진정 자유의 화신이었다.
그렇다. 인생 100세 시대라고 한다.
하지만 길고 긴 인생살이가 언제 훅 가버릴 수도 있다.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도 알 수 없다.
그러기에 지금 바로 ‘나의 삶’을 살아야 한다. 내가 원하는 삶, 내가 사랑하는 삶을.
그런 삶을 살아가려면 크게 흔들려야 한다. 웅크린 채 시간만 보내지 말고 기꺼이 변화와 유혹(誘惑)의 세계로 발을 디뎌야 한다. 공자는 40대를 불혹(不惑)이라고 했지만 기꺼이 혹해야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미래학자 토마스 프레이는 2030년에 지금 직업의 80% 이상이 사라지거나 변화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제 모든 것이 변화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 세상 속에 있는 내가 그 변화에 동참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할 터.
나이가 어떠니, 상황이 어떠니 하는 이유와 핑계는 저 멀리 보내고 새로운 시작을 선포해야 한다. 세상에 한 번 왔으면 즐겁게 살고 신나게 놀다 가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말해야 한다. 난 늘 봄이라고. 왜냐면 말이 씨앗이 될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새로운 사춘기를 꿈꾸어야 한다. 39살에 새로운 사춘기를 시작한 그녀가 이제 50대 중반에 새로운 청년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내 삶은 내가 디자인하고 내가 살아가는 것이다. 진정하고픈 것을 하라.
오늘 나의 봄꽃을 피우자. 불혹 속의 유혹을 즐기자. 흔들리며 피는 꽃이 진짜 삶의 꽃이다. 새로운 사춘기는 바로 당신의 것이다.
그녀의 건투를 빈다.
넉넉한 가정에 태어났지만 부모가 정한 정답의 틀 속에서 자유를 저당 잡힌 채 자랐다.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지만 언감생심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부모, 특히 어머니의 각본, 연출대로 살아야 하는 무대 위의 서러운 주연배우였다.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시절은 물론이고, 대학선택, 심지어 자신의 짝인 배우자 선택도 어머니가 했다. 그야말로 그녀의 삶은 독재자 치하의 억압된 삶 그대로였다.
아~ 이런이런~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났다는 게 이런 경우일까.
결혼하면서 이제 자유를 얻나 싶었는데 그 바통이 어머니에게서 남편으로 이어졌는지 독재 시절은 변함이 없었다. 아니 더 혹독한 암흑기였다.
부모야 딸을 사랑하는 마음에 그런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남편은 아니었다. 이유 없이 깜깜한 밤 속에 있는 자신이 너무도 서럽고 한심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라도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견디고 버티며 살다가 39살이 되던 해, 드디어 그녀는 자유의 세계로 탈출하는 스스로 혁명을 시도한다. 더는 이런 삶을 살 수 없다고 선언하고 ‘갈 길’을 찾는다. 구속된 삶의 울타리를 넘어 공부를 시작한다.
인생 100세 시대, 복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그녀는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지금은 복지전문가로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복지 관련 단체에서 사회운동도 하고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데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었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다 순간 그녀가 새로운 사춘기(思春期)를 맞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어쩔 수 없는 삶의 굴레에 체념하고 그냥 살아가기보다는 용기를 내어 자신의 자유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는 길을 택한 그녀가 진정 자유의 화신이었다.
그렇다. 인생 100세 시대라고 한다.
하지만 길고 긴 인생살이가 언제 훅 가버릴 수도 있다.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도 알 수 없다.
그러기에 지금 바로 ‘나의 삶’을 살아야 한다. 내가 원하는 삶, 내가 사랑하는 삶을.
그런 삶을 살아가려면 크게 흔들려야 한다. 웅크린 채 시간만 보내지 말고 기꺼이 변화와 유혹(誘惑)의 세계로 발을 디뎌야 한다. 공자는 40대를 불혹(不惑)이라고 했지만 기꺼이 혹해야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미래학자 토마스 프레이는 2030년에 지금 직업의 80% 이상이 사라지거나 변화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제 모든 것이 변화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 세상 속에 있는 내가 그 변화에 동참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할 터.
나이가 어떠니, 상황이 어떠니 하는 이유와 핑계는 저 멀리 보내고 새로운 시작을 선포해야 한다. 세상에 한 번 왔으면 즐겁게 살고 신나게 놀다 가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말해야 한다. 난 늘 봄이라고. 왜냐면 말이 씨앗이 될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새로운 사춘기를 꿈꾸어야 한다. 39살에 새로운 사춘기를 시작한 그녀가 이제 50대 중반에 새로운 청년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내 삶은 내가 디자인하고 내가 살아가는 것이다. 진정하고픈 것을 하라.
오늘 나의 봄꽃을 피우자. 불혹 속의 유혹을 즐기자. 흔들리며 피는 꽃이 진짜 삶의 꽃이다. 새로운 사춘기는 바로 당신의 것이다.
그녀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