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피서지에서 생긴 일

피서지에서 생긴 일

by 권영상 작가 2016.08.25

폭염에서 벗어나기 위해 46번 국도에 들어섰다. 진부령을 넘어 북으로 달려가 닿은 곳이 강원도 고성 송지호해수욕장. 그때가 8월 18일. 서울은 여전히 고집 센 짐승처럼 폭염 중이었다. 그 무렵 내 머릿속에 불현 떠오르는 곳이 동해안 북단, 거기 당도하면 북방의 찬 해류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거기도 30도를 웃돌았고, 바닷물은 한번 데워놓은 목욕물처럼 미적지근했다.
하룻밤을 간신히 자고 다시 북상했다. 이번엔 최북단 화진포를 생각했다. 그쯤 가면 8월 중순의 가을빛을 보리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아무리 더워도 아침은 먹어야겠어.”
나는 옆자리에 앉은 아내를 종용했다. 오전 10시. 거진항이 가까운 곳에 내렸다. 빠작빠작 타는 폭염이 우리를 맞았다. 거리를 헤매다 맨드라미 붉게 피는 음식점에 들어섰다. 40대 남자 주인이 선풍기를 켜고 앉았다. 우리는 생선 찌개를 시켜놓고 그가 미리 놓아준 도라지 무침을 집고 있었다.
“우리가 직접 키운 거요. 거기 오이며 고추, 가지나물까지.”
남자 주인의 어머니인 듯한 이가 방에서 나왔다. 얼굴이 둥글고 눈가에 웃음이 가득해 보이는 마음씨 좋은 분이었다. 그분이 우리가 집고 있는 도라지 반찬 이야기를 꺼냈다. 어쩐 일인지 그 이야기는 도라지 무침을 잘한다는 둘째 아들로 이어졌고, 끝내는 그분의 사연 많은 큰딸로 이야기가 번져갔다.
“우리 큰딸!” 할머니는 그 말을 꺼내놓고 눈물을 주르르 떨어뜨렸다.
큰딸의 인생이 우리 마음을 아프게 했다. 어린 나이에 의정부 남자를 만나 아들 둘을 낳고, 까닭 없이 이혼을 당했다. 두 아들을 데려간 남자는 이듬해 새 여자를 얻어 재혼했다. 할머니가 그쯤에서 긴 한숨을 내쉬셨다.
“그게 무슨 팔자인지 이혼한 사위는 그해에 그만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오.”
아내도 나도 그 소리에 세상에! 저런! 그런 비명을 질렀다. 그러던 그해 겨울 새벽. 눈 내리는 대문 앞 낌새가 이상해 큰딸이 문을 열고 나가봤더니 어린아이 둘이 담요를 뒤집어쓰고 울고 있더라는 거다. 이혼한 남자가 데려간 바로 자신의 아이들이었다.
할머니가 한숨을 쉬신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길로 그 세 살, 다섯 살짜리 딸의 자식을 데려다 키우는 것이 지금은 살아가는 유일한 낙이 되고 말았단다. 두 녀석을 아들보다 더 소중히 키워 군에 보냈는데 지난달 생신에 금목걸이 선물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요령껏 아침밥을 먹었지만 아내는 저런! 훌륭도 하시지! 복 받드시겠어요! 하며 맞장구를 쳐 드리느라 그 맛난 해물 찌개를 넉넉히 먹지도 못 했다.
“모두 내 탓이오. 이 늙은이가 주책을 부리는 바람에.”
안에 들어가신 할머니가 작은 유리 그릇을 들고 나왔다. 밥 조금에, 호박과 도라지 무침에, 명란을 조금씩 담았다. 가다가 배고프면 먹으라고. 더위를 이기는데 밥만 한 게 없다고. 음식점을 나올 때는 그분의 40대 아드님이며 뒤란에 계시던 할아버지의 전송을 받았다.
등대가 있는 동산을 돌아 화진포를 향해 가면서 우리는 더는 폭염 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아프지만 누군가 들어드렸어야 할 할머니의 큰딸 이야기와 도라지무침 이야기를 하느라 폭염 같은 건 싹 잊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