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충북 괴산군 산막이옛길의 굴피나무 군락

충북 괴산군 산막이옛길의 굴피나무 군락

by 강판권 교수 2016.08.22

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의 산막이옛길(이하 옛길)은 ‘새 길’이다. 내가 한 달 만에 이곳을 두 번이나 찾은 것은 1957년 우리나라 기술로 만든 최초의 수력발전소라는 역사적인 의미와 더불어 댐 한쪽을 아름다운 둘레길로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둘레길을 만든 사람들의 정성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산을 막아서 만든 괴산댐 덕분에 생긴 옛길은 ‘양반길’과 함께 괴산의 명품 관광 코스다.
옛길은 나무데크로 만든 둘레길을 따라 걷거나 유람선을 타는 방법이 있다. 나는 갈 때는 걸어서, 올 때는 배를 이용했다. 걷는 길은 어린아이조차 어렵지 않게 다닐 수 있을 만큼 편리하지만, 입구 농가에서 들려오는 음악은 소음에 가깝다. 스피커에서 들리는 7080의 노래들은 옛길의 바람 소리와 물소리와 새소리와 나뭇잎소리들을 모두 무용지물로 만들기 때문이다.
옛길에는 장소마다 이름을 만들어 놓았지만, 어떤 장소에는 스토리텔링까지 소개하는 안내문을 만들 정도로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아울러 나무에는 이름표까지 달았지만 아쉽게도 학명이 정확하지 않다. 학명을 붙인 사람은 바탕체여야 하지만 이탈리아체로 적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나무를 관찰하면서 걷기는 쉽지 않다. 워낙 사람들이 많아서 천천히 걸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옛길에서 만난 나무 중에서 나의 관심을 끈 것은 가래나뭇과의 갈잎큰키나무 굴피나무였다. 굴피나무는 옛길 곳곳에서 만날 수 있지만 약수터 근처의 굴피나무군락은 압권이다. 나는 그간 인근 산에서 굴피나무를 자주 만났지만 옛길처럼 군락을 본 적이 없었다. 댐의 물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굴피나무 군락은 소나무 군락이나 참나무 종류의 군락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간혹 사람들은 굴피나무를 참나뭇과의 갈잎큰키나무 굴참나무와 혼동한다. 특히 굴참나무의 껍질로 만든 ‘굴피집’을 굴피나무 껍질로 만든 것으로 착각한다. 굴참나무는 껍질에 코르크가 많아서 굴피집을 짓거나 와인의 뚜껑을 만들 때 사용한다. 그러나 굴피나무는 껍질에 코르크가 발달하지 않아서 굴피집을 만들 수 없다.
옛길은 발걸음 발걸음마다 만든 사람들의 정성을 느낄 수 있어서 행복하다. 곳곳마다 아주 세심하게 만든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미녀 엉덩이 참나무’에 대한 소개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안내문에는 두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하나는 ‘미녀 엉덩이 참나무’의 명칭 중 ‘참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 참나무는 굴참나무, 졸참나무, 신갈나무,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갈참나무 등 참나뭇과의 종류를 총칭하는 이름일 뿐 나무의 종류가 아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대나무와 마찬가지로 참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굴참나무의 줄기가 미녀의 엉덩이를 닮았는지는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일 뿐 미녀의 엉덩이와 전혀 관계가 없다. 특히 안내문에 ‘만져도 돼요’라는 표현은 ‘성희롱’에 해당한다. 방문객의 관심을 끌기 위한 안내문일지라도 신중하지 않으면 오히려 역효과다.
옛길의 벅찬 감동은 나무데크가 끝나고 흙길이 시작되는 어느 지점의 넘어진 나무를 바친 장면에서 맛볼 수 있다. 넘어진 나무를 지키려는 따뜻한 마음이야말로 옛길의 백미다. 고개를 숙이면서 지나가는 순간, 눈물이 가슴을 가득 채운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이런 장면이 많을수록 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