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를 하긴 해야할 텐데
사과를 하긴 해야할 텐데
by 권영상 작가 2016.08.18
머리도 참 빨리 자란다. 엊그제 미장원에서 커트하고 나온 것 같은데 그 사이 또 길었다. 다달이 미장원을 찾는 일이 정말이지 성가시다. 이발소를 다닐 때도 그건 마찬가지다. 그래도 미용실을 선호하는 이유는 단시간 내에 머리를 끝내준다는 점이다.
집 앞 네 거리를 사이에 두고 미장원이 넷 있다. 나는 그중에서도 내 나이보다 좀 젊은 분이 운영하는 곳을 정해놓고 다닌다. 그날도 나는 늘 가던 그 미장원을 찾았다.
“새로 오신 분이니 젊은 헤어스타일을 갖게 되실 겁니다.”
주인이 빈자리에 나를 앉혀놓고 웃었다. 그러고 보니 내 뒤에 와 선 헤어디자이너가 앳되다. 20대 후반은 될까. 나는 인사 삼아 하는 말로 듣고 의자에 앉아 눈을 감은 채 머리를 맡겼다. 미장원이나 이발소를 다니면서 느끼는 거지만 눈을 둘 곳이 마땅찮다. 거울 속 자신과 딱 마주 보는 것도 어색하고, 여자 미용사와 눈을 맞추는 일도 어색하다. 상대가 아직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젊은 분일 때는 더욱 그렇다.
하긴 이 나이에 머리 모양에 신경 쓸 일이 없지 않은가. 이렇게 커트하나 저렇게 커트하나 처음 하루 이틀이 낯설지 며칠 지나면 그 머리가 그 머리다. 나는 하던 대로 눈을 감고 오늘 할 일과 이런저런 풀리지 않는 일의 실마리를 한참 궁리하고 있을 때다.
“다 마쳤습니다.”
그 말에 나는 눈을 떴다. 벌써 끝났다. 젊은 헤어디자이너가 앞가리개에 담긴 내 머리칼을 모아 버리고 있다. 머리를 감으러 가던 나는 거울 속 내 머리를 보고 비명을 질렀다. 귀밑머리가 싹둑 잘려나가고 없다. 옆머리가 빡빡 깎여있고, 정수리 머리만 풀숲처럼 남아있다.
“요즘 젊은 손님들 사이에 잘 나가는 슬립백 스타일의 변형입니다.”
내 머리 커트를 해준 젊은 헤어디자이너가 뭘 그렇게 놀라시냐는 투다.
“한결 젊어 보입니다. 이십 세 청년으로요.”
주인분도 거들고 나섰다. ‘내 나이가 몇인데!’ 나는 화를 냈다. 그 어떤 머리도 며칠 지나면 그 머리가 그 머리라던 내 느긋함도 우스운 것이 되고 말았다. 머리도 감지 않은 채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내가 놀란다. 30년은 젊어 보인다고. 농구선수 누굴 닮았다며 호들갑이다.
암만 그렇대도 며칠간 집 밖을 나가지 못했다. 나갈 때면 모자를 꼭 눌러썼다. 나는 변화를 원한다. 그러면서도 달라진 내게 잘 적응하지 못한다. 그렇게 집안에 틀어박혀 있을 때다. 나가 사는 딸아이가 집에 왔다. 내 머리 스타일을 보더니 뜻밖에 호감을 표했다. 너무 젊어 보인다며 거울을 다시 한 번 보라는 거다. 화가 풀릴 때가 되어 그런지 조금 괜찮아 보이는 듯도 했다. 괜히 미장원에서 화를 낸 게 미안했다. 그 때문에 집으로 오갈 때면 그 미용실을 피해 뒷골목길로 돌아다녔다.
“한번 가서 사과해요. 젊게 해주려고 그런 건데 얼마나 놀랐겠어요.”
아내가 그랬다. 나이 타령을 하며 화를 낸 걸 생각하니 낯이 뜨거웠다. 눈을 감고 내 머리를 온전히 맡긴 사람은 나인데 헤어디자이너에게 화를 낸 건 뭔가.
그렇지만 그 사과라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다. 한번 찾아가 그 젊은 분에게 사과하긴 해야 할 텐데, 하면서 오늘도 뒷골목길을 돌아간다.
집 앞 네 거리를 사이에 두고 미장원이 넷 있다. 나는 그중에서도 내 나이보다 좀 젊은 분이 운영하는 곳을 정해놓고 다닌다. 그날도 나는 늘 가던 그 미장원을 찾았다.
“새로 오신 분이니 젊은 헤어스타일을 갖게 되실 겁니다.”
주인이 빈자리에 나를 앉혀놓고 웃었다. 그러고 보니 내 뒤에 와 선 헤어디자이너가 앳되다. 20대 후반은 될까. 나는 인사 삼아 하는 말로 듣고 의자에 앉아 눈을 감은 채 머리를 맡겼다. 미장원이나 이발소를 다니면서 느끼는 거지만 눈을 둘 곳이 마땅찮다. 거울 속 자신과 딱 마주 보는 것도 어색하고, 여자 미용사와 눈을 맞추는 일도 어색하다. 상대가 아직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젊은 분일 때는 더욱 그렇다.
하긴 이 나이에 머리 모양에 신경 쓸 일이 없지 않은가. 이렇게 커트하나 저렇게 커트하나 처음 하루 이틀이 낯설지 며칠 지나면 그 머리가 그 머리다. 나는 하던 대로 눈을 감고 오늘 할 일과 이런저런 풀리지 않는 일의 실마리를 한참 궁리하고 있을 때다.
“다 마쳤습니다.”
그 말에 나는 눈을 떴다. 벌써 끝났다. 젊은 헤어디자이너가 앞가리개에 담긴 내 머리칼을 모아 버리고 있다. 머리를 감으러 가던 나는 거울 속 내 머리를 보고 비명을 질렀다. 귀밑머리가 싹둑 잘려나가고 없다. 옆머리가 빡빡 깎여있고, 정수리 머리만 풀숲처럼 남아있다.
“요즘 젊은 손님들 사이에 잘 나가는 슬립백 스타일의 변형입니다.”
내 머리 커트를 해준 젊은 헤어디자이너가 뭘 그렇게 놀라시냐는 투다.
“한결 젊어 보입니다. 이십 세 청년으로요.”
주인분도 거들고 나섰다. ‘내 나이가 몇인데!’ 나는 화를 냈다. 그 어떤 머리도 며칠 지나면 그 머리가 그 머리라던 내 느긋함도 우스운 것이 되고 말았다. 머리도 감지 않은 채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내가 놀란다. 30년은 젊어 보인다고. 농구선수 누굴 닮았다며 호들갑이다.
암만 그렇대도 며칠간 집 밖을 나가지 못했다. 나갈 때면 모자를 꼭 눌러썼다. 나는 변화를 원한다. 그러면서도 달라진 내게 잘 적응하지 못한다. 그렇게 집안에 틀어박혀 있을 때다. 나가 사는 딸아이가 집에 왔다. 내 머리 스타일을 보더니 뜻밖에 호감을 표했다. 너무 젊어 보인다며 거울을 다시 한 번 보라는 거다. 화가 풀릴 때가 되어 그런지 조금 괜찮아 보이는 듯도 했다. 괜히 미장원에서 화를 낸 게 미안했다. 그 때문에 집으로 오갈 때면 그 미용실을 피해 뒷골목길로 돌아다녔다.
“한번 가서 사과해요. 젊게 해주려고 그런 건데 얼마나 놀랐겠어요.”
아내가 그랬다. 나이 타령을 하며 화를 낸 걸 생각하니 낯이 뜨거웠다. 눈을 감고 내 머리를 온전히 맡긴 사람은 나인데 헤어디자이너에게 화를 낸 건 뭔가.
그렇지만 그 사과라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다. 한번 찾아가 그 젊은 분에게 사과하긴 해야 할 텐데, 하면서 오늘도 뒷골목길을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