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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크나큰 죄를 용서하소서

우리의 크나큰 죄를 용서하소서

by 한희철 목사 2016.08.17

‘석고대죄’(席藁待罪)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리 석’(席), ‘볏짚 고’(藁), ‘기다릴 대’(待), ‘허물 죄’(罪)를 합한 말로, ‘거적을 깔고 엎드려 벌을 주기를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내가 지은 죄과에 대한 처분을 기다리는 것이지요. 왕이나 윗전이 용서해 줄 때까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겠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석고대죄를 통해 용서를 구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한반도 좁은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남한과 북한은 누가 뭐래도 형제입니다. 자매이기도 합니다. 부모와 자식이기도 하고, 같은 피를 나눈 혈육이기도 합니다. 유구한 역사 속에서 다르지 않은 일들을 경험하며 같은 삶을 살아온 운명공동체, 동족입니다. 어느 누가 막아도 막을 수 없고, 떨어뜨리려 해도 떨어질 수가 없는 피붙이들입니다. 얼굴도 닮고, 말도 닮고, 생각도 닮은, 우리는 가족이요 식구들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 얼굴을 들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철조망을 허리에 두른 채 서로가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있습니다. 증오와 불신의 눈을 부라리고 있습니다. 더 무섭고 더 강력하고 더 날 선 무기로 서로를 윽박지르고 있습니다.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서로를 거칠고 사납게 몰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친구가 하나도 없는 외톨이로 고립을 시켜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이 아픈 것이 있습니다. 남쪽에서는 먹을 것이 남아돕니다. 끼니마다 양식이 되는 쌀도 남아돌고, 먹다 남은 음식도 남아돕니다. 남은 음식물을 버리는 쓰레기통엔 날마다 온갖 음식물이 가득 찹니다.
북쪽에서는 먹을 것이 부족합니다. 무엇이라도 먹을 것을 찾아 사방을 헤맵니다. 남쪽에서는 풀뿌리를 캐 먹고 나무껍질을 벗겨 먹던 초근목피(草根木皮)의 시간을 까마득한 옛날처럼 말하지만, 북한에서는 아직도 그 시간이 고통스럽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남쪽에서는 남은 음식물을 처리하느라 연간 수조 원의 돈을 들이고, 북쪽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수많은 형제가 쓰러집니다. 그러면서도 경쟁적으로 포기하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더 무서운 무기를 만들고 사들이는 일입니다.
본래 ‘평화’(平和)란 ‘모든 사람의 입에 벼(쌀)가 골고루 나누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사람 먹고 사는 데 꼭 필요한 쌀을 누군가는 썩도록 쌓아놓고, 누군가는 그 쌀이 없어 굶어 죽는 것은 결코 평화일 수 없습니다. 많이 가진 자가 없는 자에게 시혜를 베풀 듯 전하는 것도 엄밀한 의미에서는 진정한 평화가 아닙니다.
이제는 부디 서로를 겨누고 있는 총부리를 내려놓게 하소서. 철조망을 거두게 하소서. 온갖 무기를 다 녹여 호미와 쟁기, 묵은 땅을 가는 농기구를 만들게 하소서. 서로를 얼싸안게 하소서. 하늘 끝에 닿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소서. 광복 71주년을 맞으며 이 나라 이 민족이 여전히 짓고 있는 큰 죄를 두고는 우리 모두 석고대죄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