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과 행복 사이에서
행운과 행복 사이에서
by 김재은 대표 2016.08.16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가만히 있어도 등위로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걸 보니 2016년 더위가 여느 여름보다 대단한 듯싶다. 문득 내가 발붙이고 사는 이곳에 4계절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고마운 마음이 샘물처럼 솟는다. 일 년 내내 이렇게 더운 날씨가 이어진다면 어찌했을까. 그러고 보니 나도 우리도 행운아다. 행운을 듬뿍 받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더위에 짜증은 내도 우리가 행운아라는 사실을 모르고 사는 것 같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사실 오늘 간만에 연락한 대학 선배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나도 알아차렸으니.
행운을 이야기하자니 자연스럽게 토끼풀, 네잎 클로버가 생각난다. 고향 산야에 지천으로 소박하게 피어나던 추억의 풀, 손목시계를 만들어 놀았던 기억도 새롭다. 눈을 말똥말똥 뜨고 주인 아이가 토끼풀을 뜯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토끼도 생각난다.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쟁 당시 알프스 산맥을 넘어가던 중 네잎 클로버를 발견, 이를 신기하게 여겨 뜯으려고 고개를 숙이는 순간 총알을 피했다는 이야기, 그래서 네잎 클로버는 일약 행운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희귀한 네잎의 행운보다 널려있는 세 잎의 행복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내 것이 되기 어려운 행운보다 마음만 먹으면 바로 찾을 수 있고, 내 것으로 할 수 있는 행복의 가치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런데 과연 행운이라는 것이 우연히 오는 것일까. 행운이란 희귀해서가 아니라 행운을 얻을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적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행운이란 진심 어린 땀을 흘리며 시간을 견디고 온갖 시련을 이겨낸 사람들의 정성 어린 노력에 하늘이 감동하여 내어주는 선물이기에.
기실 행복을 무시하고 행운만을 쫓는 사람이든, 행운은 허황된 것으로 여기고 행복에 집중하는 사람이든 어느 경우든 문제 될 것은 없다고 본다. 다만 행복도 행운도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선물이라는 것에 방점을 찍고 싶은 것이다.
내가 행복한 삶을 살고 싶으면 마음을 열고 일상의 사소함을 놓치지 말고 거기에 깨어있고, 눈과 귀를 열어두면 될 것이다. 그러면 널려있는 게 행복 거리이다. 결국 나의 존재, 살아있는 모든 존재 자체가 행복임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 행운도 마찬가지이다. 대충 쉽게 얻으려는 마음 다 내려놓고, 진심을 담은 땀을 흘리며 내 길을 뚜벅뚜벅 가다보면 행운이 다가올 터, 내가 하늘이 감동할 ‘무엇’을 하고 있는데 어찌 나에게 그런 선물이 오지 않을쏜가. 행운이라는 이름이든 아니든. 아울러 한 번뿐인 인생에 어떤 행운을 누리고 싶은지 우리 함께 자문해보면 좋을 것 같다.
토끼풀(클로버)이 밟혀 생장점에 상처가 나면 그 상처에서 잎을 하나 더 뽑아 올리는 게 대부분의 네잎 클로버라고 한다. 그런 이유로 네잎 클로버는 잎 크기가 균일하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네잎 클로버의 탄생 이야기가 (내가 주장하는 바대로) 견디고 이겨낸 대가로 하늘이 감동하여 내린 선물인 행운과 뭔가 통하는 것 같기도 하다.
또한, 네잎 클로버가 존재하는 곳 근처에는 반드시 또 다른 네잎 클로버가 여럿이 숨어있다고 한다. 인생이 그러하듯 처음 행운을 잡기가 어렵겠지만 이어서 곧 행운이 넝쿨째 굴러오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 같아 괜히 기분이 좋다. 그런 행운이 내 곁에 올 때 일어나는 느낌이 바로 행복이 아닐까. 언제 어디서나 행운이든 행복이든 바로 당신의 삶에 굴러오면 좋겠다. 이 더위가 싹 잊히도록.
그런데 더위에 짜증은 내도 우리가 행운아라는 사실을 모르고 사는 것 같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사실 오늘 간만에 연락한 대학 선배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나도 알아차렸으니.
행운을 이야기하자니 자연스럽게 토끼풀, 네잎 클로버가 생각난다. 고향 산야에 지천으로 소박하게 피어나던 추억의 풀, 손목시계를 만들어 놀았던 기억도 새롭다. 눈을 말똥말똥 뜨고 주인 아이가 토끼풀을 뜯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토끼도 생각난다.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쟁 당시 알프스 산맥을 넘어가던 중 네잎 클로버를 발견, 이를 신기하게 여겨 뜯으려고 고개를 숙이는 순간 총알을 피했다는 이야기, 그래서 네잎 클로버는 일약 행운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희귀한 네잎의 행운보다 널려있는 세 잎의 행복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내 것이 되기 어려운 행운보다 마음만 먹으면 바로 찾을 수 있고, 내 것으로 할 수 있는 행복의 가치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런데 과연 행운이라는 것이 우연히 오는 것일까. 행운이란 희귀해서가 아니라 행운을 얻을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적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행운이란 진심 어린 땀을 흘리며 시간을 견디고 온갖 시련을 이겨낸 사람들의 정성 어린 노력에 하늘이 감동하여 내어주는 선물이기에.
기실 행복을 무시하고 행운만을 쫓는 사람이든, 행운은 허황된 것으로 여기고 행복에 집중하는 사람이든 어느 경우든 문제 될 것은 없다고 본다. 다만 행복도 행운도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선물이라는 것에 방점을 찍고 싶은 것이다.
내가 행복한 삶을 살고 싶으면 마음을 열고 일상의 사소함을 놓치지 말고 거기에 깨어있고, 눈과 귀를 열어두면 될 것이다. 그러면 널려있는 게 행복 거리이다. 결국 나의 존재, 살아있는 모든 존재 자체가 행복임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 행운도 마찬가지이다. 대충 쉽게 얻으려는 마음 다 내려놓고, 진심을 담은 땀을 흘리며 내 길을 뚜벅뚜벅 가다보면 행운이 다가올 터, 내가 하늘이 감동할 ‘무엇’을 하고 있는데 어찌 나에게 그런 선물이 오지 않을쏜가. 행운이라는 이름이든 아니든. 아울러 한 번뿐인 인생에 어떤 행운을 누리고 싶은지 우리 함께 자문해보면 좋을 것 같다.
토끼풀(클로버)이 밟혀 생장점에 상처가 나면 그 상처에서 잎을 하나 더 뽑아 올리는 게 대부분의 네잎 클로버라고 한다. 그런 이유로 네잎 클로버는 잎 크기가 균일하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네잎 클로버의 탄생 이야기가 (내가 주장하는 바대로) 견디고 이겨낸 대가로 하늘이 감동하여 내린 선물인 행운과 뭔가 통하는 것 같기도 하다.
또한, 네잎 클로버가 존재하는 곳 근처에는 반드시 또 다른 네잎 클로버가 여럿이 숨어있다고 한다. 인생이 그러하듯 처음 행운을 잡기가 어렵겠지만 이어서 곧 행운이 넝쿨째 굴러오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 같아 괜히 기분이 좋다. 그런 행운이 내 곁에 올 때 일어나는 느낌이 바로 행복이 아닐까. 언제 어디서나 행운이든 행복이든 바로 당신의 삶에 굴러오면 좋겠다. 이 더위가 싹 잊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