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원한 등목의 추억
이 시원한 등목의 추억
by 권영상 작가 2016.08.11
장마를 잘 이겨내는 작물들도 있지만 장마에 약한 작물도 있습니다. 경험에 비추어 보면 토마토가 그중 가장 약한 작물인 듯싶습니다. 올핸 좀 널찍한 간격으로 심어 토마토 줄기도 건강하고 토마토 재미도 본 편이라 안심했지요.
장마 중인데도 건재한 토마토를 보고 서울로 올라왔는데 한 주일 뒤에 다시 안성에 내려가 보니 역시입니다. 어디 손 하나 댈 곳 없이 짓무르거나 상하였습니다. 좀 아까운 것들도 있었지만 눈을 꾹 감고 모두 뽑았습니다.
줄기는 줄기대로 모아 잘게 자른 뒤 유기농 퇴비와 함께 밭에다 쭉 폈습니다. 그리고는 순전히 내 손으로 삽질해 밭을 뒤집었습니다. 요령도 모르고 서툰 대로 힘만 쓰며 일하는 내 몸에 땀이 장맛비처럼 흘러내렸지요. 그 일을 간신히 마치고 장갑을 벗을 때입니다.
“등목해 드릴게요. 수돗가로 오세요.” 옆집 사는 김형이 내 삽질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나 봅니다. 김형이 바자울을 열고 우리 집 수돗가로 걸음을 하네요. 나도 그 바람에 김형을 따라 뒤뜰 수돗가로 갔습니다.
“웃통 벗으세요.” 나는 군말 없이 웃통을 벗고 엎드렸습니다. 엉덩이를 한껏 치켜세우면서 ‘김형, 근데 살살!’ 그 부탁을 잊지 않았지요. 김형이 염려 말라며 허리께에다 슬슬 바가지물을 붓습니다. 워낙 뜨거운 땀을 흘려 그런지 물이 조금도 시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데운 물처럼 미적지근합니다. 김형도 느꼈겠지요? 수돗물을 뽑아내더니 이번에는 호스로 슬슬 끼얹습니다. 물이 점점 차가워집니다.
나는 연실 어푸! 어푸! 흐느끼고, 김형은 어이 좋겠다!를 연발하며 물을 끼얹어줍니다. 등을 슥슥 문지르는, 농사일하는 김형의 두툼한 손바닥 느낌이 좋습니다. 그 둔탁하면서도 거칠고 묵직한 손의 무게. 평생 농사일을 하신 그 옛날 아버지의 손이 그랬습니다. 예전, 아버지도 등목이 그리우시면 수돗가에 나를 불러내어 먼저 등목을 시켜 주셨지요. 그때 느끼던 아버지 손의 묵직함, 그걸 김형의 손에서 느낍니다.
등목이 끝나자, 몸에 흐르는 물을 손바닥으로 훑어내며 일어섰습니다.
“김형도 엎드려요. 이번엔 제가 물맛을 보여드릴 테니.”
아니, 아니, 아니! 김형이 손사래를 칩니다. 옆구리를 가리킵니다. 아, 그렇네요. 일만 아는 김형이 올 늦은 봄 큰 수술을 했습니다. 그런 사정도 모르고 바나나를 한 다발을 들고 갔을 때 김형은 퇴원을 했다며 복대를 하고 있었지요.
등목을 마치고 지난해 여름에 사다 놓은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꺼내 먹었습니다. 그동안 아이스크림을 꺼내먹을 일이 없었습니다. 아이스크림도 먹고 등목도 해 그럴까요. 한결 시원합니다. 시원하기로 하자면 안에 들어가 전신 샤워를 하면 더 시원할 테지요. 하지만 사람의 손이 닿은 등목이라 한층 몸이 가뿐합니다. 어릴 적 어머니나 누나 손을 빌어 하던 등목의 추억이 오래 남는 건 등을 문지르던 그분들의 손자국 때문일 테지요. 제 홀로 쏟아져 나오는 에어컨 바람보다 어린 자식이 부채로 부쳐주는 바람이 더 시원한 것처럼.
남은 여름이 좀 덥다 해도 잘 견딜 수 있겠습니다. 오늘 이 시원한 등목의 추억 하나가 내 안에 잘 저장되었을 테니까요. 더울 때마다 그걸 꺼내어 모진 더위를 넘기겠습니다.
장마 중인데도 건재한 토마토를 보고 서울로 올라왔는데 한 주일 뒤에 다시 안성에 내려가 보니 역시입니다. 어디 손 하나 댈 곳 없이 짓무르거나 상하였습니다. 좀 아까운 것들도 있었지만 눈을 꾹 감고 모두 뽑았습니다.
줄기는 줄기대로 모아 잘게 자른 뒤 유기농 퇴비와 함께 밭에다 쭉 폈습니다. 그리고는 순전히 내 손으로 삽질해 밭을 뒤집었습니다. 요령도 모르고 서툰 대로 힘만 쓰며 일하는 내 몸에 땀이 장맛비처럼 흘러내렸지요. 그 일을 간신히 마치고 장갑을 벗을 때입니다.
“등목해 드릴게요. 수돗가로 오세요.” 옆집 사는 김형이 내 삽질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나 봅니다. 김형이 바자울을 열고 우리 집 수돗가로 걸음을 하네요. 나도 그 바람에 김형을 따라 뒤뜰 수돗가로 갔습니다.
“웃통 벗으세요.” 나는 군말 없이 웃통을 벗고 엎드렸습니다. 엉덩이를 한껏 치켜세우면서 ‘김형, 근데 살살!’ 그 부탁을 잊지 않았지요. 김형이 염려 말라며 허리께에다 슬슬 바가지물을 붓습니다. 워낙 뜨거운 땀을 흘려 그런지 물이 조금도 시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데운 물처럼 미적지근합니다. 김형도 느꼈겠지요? 수돗물을 뽑아내더니 이번에는 호스로 슬슬 끼얹습니다. 물이 점점 차가워집니다.
나는 연실 어푸! 어푸! 흐느끼고, 김형은 어이 좋겠다!를 연발하며 물을 끼얹어줍니다. 등을 슥슥 문지르는, 농사일하는 김형의 두툼한 손바닥 느낌이 좋습니다. 그 둔탁하면서도 거칠고 묵직한 손의 무게. 평생 농사일을 하신 그 옛날 아버지의 손이 그랬습니다. 예전, 아버지도 등목이 그리우시면 수돗가에 나를 불러내어 먼저 등목을 시켜 주셨지요. 그때 느끼던 아버지 손의 묵직함, 그걸 김형의 손에서 느낍니다.
등목이 끝나자, 몸에 흐르는 물을 손바닥으로 훑어내며 일어섰습니다.
“김형도 엎드려요. 이번엔 제가 물맛을 보여드릴 테니.”
아니, 아니, 아니! 김형이 손사래를 칩니다. 옆구리를 가리킵니다. 아, 그렇네요. 일만 아는 김형이 올 늦은 봄 큰 수술을 했습니다. 그런 사정도 모르고 바나나를 한 다발을 들고 갔을 때 김형은 퇴원을 했다며 복대를 하고 있었지요.
등목을 마치고 지난해 여름에 사다 놓은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꺼내 먹었습니다. 그동안 아이스크림을 꺼내먹을 일이 없었습니다. 아이스크림도 먹고 등목도 해 그럴까요. 한결 시원합니다. 시원하기로 하자면 안에 들어가 전신 샤워를 하면 더 시원할 테지요. 하지만 사람의 손이 닿은 등목이라 한층 몸이 가뿐합니다. 어릴 적 어머니나 누나 손을 빌어 하던 등목의 추억이 오래 남는 건 등을 문지르던 그분들의 손자국 때문일 테지요. 제 홀로 쏟아져 나오는 에어컨 바람보다 어린 자식이 부채로 부쳐주는 바람이 더 시원한 것처럼.
남은 여름이 좀 덥다 해도 잘 견딜 수 있겠습니다. 오늘 이 시원한 등목의 추억 하나가 내 안에 잘 저장되었을 테니까요. 더울 때마다 그걸 꺼내어 모진 더위를 넘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