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천의 차별을 없애다
귀천의 차별을 없애다
by 강판권 교수 2016.08.08
더위를 이기는 방법 중 하나는 『장자(莊子)』를 읽는 것이다. 중국 전국시대의 장주가 편찬한 『장자』가 피서에 좋은 것은 고대인의 파격적인 생각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장자』는 중국이 낳은 세계적인 우화집이지만 고대 그리스의 『이솝우화』의 명성에 가려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부터 인문학 열풍으로 『장자』에 대한 관심은 예전보다 훨씬 높아졌지만 어려운 한문이 큰 걸림돌이다. 물론 한글 번역본이 많지만 본뜻의 깊이를 맛보기 위해서는 한자를 피할 수 없다. 원문 『장자』를 모두 읽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할 뿐 아니라 주석까지 읽으려면 본문의 배가 걸린다.
나는 『장자』 원문과 주석을 일주일에 한 차례 2시간씩 윤독하면서 읽는 데 4년이 걸렸다. 더욱이 『장자』는 내용이 결코 쉽지 않아서 한문 전문가라도 본뜻을 정확하게 이해하기란 절대 쉽지 않다.
『장자』는 읽을수록 매력 넘치는 고전이다. 특히 중국 고대인의 사유세계가 정말 놀랍다. 『장자.추수(秋水)』 중 내가 아주 좋아하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만약 도로써 본다면 무엇을 귀하다고 하며 무엇을 천하다고 하겠는가? 이것을 ‘반연(反衍)’이라 부른다. 귀천의 차별로 네 뜻을 얽매지 말라. 그러면 도와 더불어 크게 어긋날 것이다.
중국의 주나라 봉건시대는 귀한 것과 천한 것을 철저하게 차별하는 신분제 사회였다. 그러나 주나라가 쇠퇴한 전국시대는 신분의 벽이 무너진 사회였다. 누구나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지만, 세계는 갈수록 차별이 심화되고 있다.
차별은 갈등의 핵심 원인이다. 대부분 갈등도 차별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세상의 차별 중에서 가장 가슴 아픈 것은 ‘기회의 차별’이다.
사람은 각자 다른 능력을 타고났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각각 다른 역할로 살아간다. 그러나 각각의 역할은 공정한 기회를 통해서 얻어야 한다.
그러나 세상은 기회조차 공정하게 주어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갈등은 심화되고, 갈등의 심화는 심지어 폭동을 낳는다.
현대사회는 신분사회가 아니지만, 엄연히 신분사회와 같은 현상이 존재한다. 인문학은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인문학은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찾기보다는 인문의 내용을 나열하는 데 급급하다.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하지 않은 채 과거 사람들의 이야기만 나열하면, 지금의 현안은 결코 해결할 수 없다. 내가 장자의 ‘반연’ 철학을 언급하는 것은 그의 철학이 새로워서가 아니라 신분사회가 엄존했던 시대의 철학자가 가지고 있는 태도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나도 인문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나라와 세계의 현안을 해결하는 데 일조해야 할 의무가 있다.
사람들의 귀천에 대한 차별 의식은 상상 이상으로 강하다. 이러한 현상은 식물에 대한 의식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사람들은 식물의 귀천을 아주 자연스럽게 내뱉는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얘기가 차별인지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식물에 대한 차별의식이 사라지는 날, 세상의 평화는 한층 빨리 다가올 것이다.
『장자』는 중국이 낳은 세계적인 우화집이지만 고대 그리스의 『이솝우화』의 명성에 가려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부터 인문학 열풍으로 『장자』에 대한 관심은 예전보다 훨씬 높아졌지만 어려운 한문이 큰 걸림돌이다. 물론 한글 번역본이 많지만 본뜻의 깊이를 맛보기 위해서는 한자를 피할 수 없다. 원문 『장자』를 모두 읽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할 뿐 아니라 주석까지 읽으려면 본문의 배가 걸린다.
나는 『장자』 원문과 주석을 일주일에 한 차례 2시간씩 윤독하면서 읽는 데 4년이 걸렸다. 더욱이 『장자』는 내용이 결코 쉽지 않아서 한문 전문가라도 본뜻을 정확하게 이해하기란 절대 쉽지 않다.
『장자』는 읽을수록 매력 넘치는 고전이다. 특히 중국 고대인의 사유세계가 정말 놀랍다. 『장자.추수(秋水)』 중 내가 아주 좋아하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만약 도로써 본다면 무엇을 귀하다고 하며 무엇을 천하다고 하겠는가? 이것을 ‘반연(反衍)’이라 부른다. 귀천의 차별로 네 뜻을 얽매지 말라. 그러면 도와 더불어 크게 어긋날 것이다.
중국의 주나라 봉건시대는 귀한 것과 천한 것을 철저하게 차별하는 신분제 사회였다. 그러나 주나라가 쇠퇴한 전국시대는 신분의 벽이 무너진 사회였다. 누구나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지만, 세계는 갈수록 차별이 심화되고 있다.
차별은 갈등의 핵심 원인이다. 대부분 갈등도 차별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세상의 차별 중에서 가장 가슴 아픈 것은 ‘기회의 차별’이다.
사람은 각자 다른 능력을 타고났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각각 다른 역할로 살아간다. 그러나 각각의 역할은 공정한 기회를 통해서 얻어야 한다.
그러나 세상은 기회조차 공정하게 주어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갈등은 심화되고, 갈등의 심화는 심지어 폭동을 낳는다.
현대사회는 신분사회가 아니지만, 엄연히 신분사회와 같은 현상이 존재한다. 인문학은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인문학은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찾기보다는 인문의 내용을 나열하는 데 급급하다.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하지 않은 채 과거 사람들의 이야기만 나열하면, 지금의 현안은 결코 해결할 수 없다. 내가 장자의 ‘반연’ 철학을 언급하는 것은 그의 철학이 새로워서가 아니라 신분사회가 엄존했던 시대의 철학자가 가지고 있는 태도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나도 인문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나라와 세계의 현안을 해결하는 데 일조해야 할 의무가 있다.
사람들의 귀천에 대한 차별 의식은 상상 이상으로 강하다. 이러한 현상은 식물에 대한 의식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사람들은 식물의 귀천을 아주 자연스럽게 내뱉는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얘기가 차별인지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식물에 대한 차별의식이 사라지는 날, 세상의 평화는 한층 빨리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