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층 할머니
5층 할머니
by 권영상 작가 2016.07.28
5층 할머니가 요즘 보이지 않는다. 5층이면 우리가 사는 집 바로 위층이다. 같은 엘리베이터와 같은 통로를 쓰니까 종종 만나던 분이다. 머리가 온통 하얀, 이제는 여든이 넘으신 할머니다. 할머니는 가끔 마당에서 들어오는 계단에 앉아계시곤 했다.
“무릎이 아파 이렇게 한 번씩 주저앉아야 해요.”
나는 그 말에 일이 좀 바빠도 고향의 어머니가 생각나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할머니 이야기를 들어드리곤 했다. 그럴 때면 할머니는 외국에 나가 사는 두 아들을 못마땅해했다.
할머니에겐 할아버지가 계신다. 미색 양복에 하얀 중절모, 그리고 단장을 짚으시는 단정한 분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뵐 때, 안녕하세요? 인사를 드리면 언제나 간단히 예, 하셨다. 아파트 앞길에서 뵐 때도 안녕하세요? 하면 꼭 한 마디 예, 하셨다. 그러고는 단장을 짚고 조심조심 걸어가셨다.
물론 그때에도 뒤를 따르는 분은 할머니였다. 하얀 머리의 할머니는 연한 하늘색 원피스에 하얀 블라우스를 입으셨다. 동행을 해도 꼭 두어 걸음 할아버지 뒤를 따르셨다. 예전 고향의 어머니도 연로하신 아버지와 마실을 다닐 적이면 아버지 뒤에 서셨다. 아버지가 앞에 서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힘이 떨어진 아버지 걸음걸이를 보살펴야 하시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분들의 그런 걸음이 아름다워 퇴근하여 오다가도 그분들을 만나면 걸음을 맞추어 천천히 걸었다. 그때에도 할아버지는 나의 인사에 ‘예’ 그 한 마디 외에 달리 말씀이 없었지만 ,할머니는 반가운 동행을 만난 듯이 이야기를 꺼내셨다.
“내 정신 좀 보게나. 퇴근길이시니 시장하실 텐데, 우리 생각 말고 어여 가세요.”
할머니는 이야기하시다 말고 내 걸음을 그렇게 재촉하셨다.
그런 할머니가 그날 이후 달라지셨다. 그 날 이후란 요 이태 전, 일흔아홉으로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다. 마당에서 어쩌다 할머니를 만나 인사를 드리면 할머니는 그저 간단히 예, 하고는 가던 길을 급히 가셨다. 그때마다 바쁜 일이 있으신가 보다 했다. 할머니에게 달라진 그 말고 또 있다. 백설같이 하얗던 머리다. 염색을 하셨는지 그 머리가 검어졌다. 또 있다. 종종 계단에 앉아 무릎을 주무르시며 이야기를 걸던 모습이 사라졌다.
나는 5층 할머니의 달라진 모습이 궁금해 아내에게 물었다.
“혼자 사시기 때문에 그런 거지 뭐.” 했다.
할아버지가 계실 때는 계단에 앉아도 되고, 몸 아픈 이야기를 아무에게나 해도 괜찮았지만, 이제는 아니라는 거다. 그때는 하얀 머리도 아름다웠고, 이웃집 아이 아빠들과 가까이 인사하며 지내는 일이 허물없어 보였지만 이제는 흉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거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랬다. 단장을 짚고 천천히 길을 가던 그 힘겨워 보이던 할아버지도 살아계시는 동안엔 할머니에게 힘이 되셨던 거다. 그 힘이 머리를 하얗게 해서 다녀도, 멀리 나가 사는 아들 흉을 남에게 보아도 부끄럽지 않게 만들었던 거다. 어쨌거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할머니는 우리와 너무 멀어졌다.
“무릎이 아파 이렇게 한 번씩 주저앉아야 해요.”
나는 그 말에 일이 좀 바빠도 고향의 어머니가 생각나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할머니 이야기를 들어드리곤 했다. 그럴 때면 할머니는 외국에 나가 사는 두 아들을 못마땅해했다.
할머니에겐 할아버지가 계신다. 미색 양복에 하얀 중절모, 그리고 단장을 짚으시는 단정한 분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뵐 때, 안녕하세요? 인사를 드리면 언제나 간단히 예, 하셨다. 아파트 앞길에서 뵐 때도 안녕하세요? 하면 꼭 한 마디 예, 하셨다. 그러고는 단장을 짚고 조심조심 걸어가셨다.
물론 그때에도 뒤를 따르는 분은 할머니였다. 하얀 머리의 할머니는 연한 하늘색 원피스에 하얀 블라우스를 입으셨다. 동행을 해도 꼭 두어 걸음 할아버지 뒤를 따르셨다. 예전 고향의 어머니도 연로하신 아버지와 마실을 다닐 적이면 아버지 뒤에 서셨다. 아버지가 앞에 서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힘이 떨어진 아버지 걸음걸이를 보살펴야 하시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분들의 그런 걸음이 아름다워 퇴근하여 오다가도 그분들을 만나면 걸음을 맞추어 천천히 걸었다. 그때에도 할아버지는 나의 인사에 ‘예’ 그 한 마디 외에 달리 말씀이 없었지만 ,할머니는 반가운 동행을 만난 듯이 이야기를 꺼내셨다.
“내 정신 좀 보게나. 퇴근길이시니 시장하실 텐데, 우리 생각 말고 어여 가세요.”
할머니는 이야기하시다 말고 내 걸음을 그렇게 재촉하셨다.
그런 할머니가 그날 이후 달라지셨다. 그 날 이후란 요 이태 전, 일흔아홉으로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다. 마당에서 어쩌다 할머니를 만나 인사를 드리면 할머니는 그저 간단히 예, 하고는 가던 길을 급히 가셨다. 그때마다 바쁜 일이 있으신가 보다 했다. 할머니에게 달라진 그 말고 또 있다. 백설같이 하얗던 머리다. 염색을 하셨는지 그 머리가 검어졌다. 또 있다. 종종 계단에 앉아 무릎을 주무르시며 이야기를 걸던 모습이 사라졌다.
나는 5층 할머니의 달라진 모습이 궁금해 아내에게 물었다.
“혼자 사시기 때문에 그런 거지 뭐.” 했다.
할아버지가 계실 때는 계단에 앉아도 되고, 몸 아픈 이야기를 아무에게나 해도 괜찮았지만, 이제는 아니라는 거다. 그때는 하얀 머리도 아름다웠고, 이웃집 아이 아빠들과 가까이 인사하며 지내는 일이 허물없어 보였지만 이제는 흉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거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랬다. 단장을 짚고 천천히 길을 가던 그 힘겨워 보이던 할아버지도 살아계시는 동안엔 할머니에게 힘이 되셨던 거다. 그 힘이 머리를 하얗게 해서 다녀도, 멀리 나가 사는 아들 흉을 남에게 보아도 부끄럽지 않게 만들었던 거다. 어쨌거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할머니는 우리와 너무 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