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추억 대신 상처, 수학여행 양극화

추억 대신 상처, 수학여행 양극화

by 이규섭 시인 2016.07.15

뱃고동 소리를 그때 처음 들었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부산에서다. 개울 돌다리를 건너며 자란 촌놈에게 바다에 다리를 놓은 것도 신기한데 상판 하나를 들었다 놓았다한다는 게 여간 신통방통한 게 아니다. 영도다리를 바라보니 ‘굳세어라 금순이’를 그리는 실향민의 아픔이 피부에 와 닿는 느낌이었다. ‘용두산 엘레지’의 일백구십사계단이 맞는지 세어보고 내기를 걸자고 친구와 낄낄거렸다. 새벽공기를 가르며 “재첩국 사이소∼”외치던 자갈치 아지매의 억센 억양도 귀에 쟁쟁하다.
충무공의 얼을 찾아 통영 앞 바다에서 유람선을 탄 것도 처음이다. 안동 제비원 마애불상처럼 듬직한 국어 선생님이 갑판 위에서 청마 유치환 시인의 ‘파도’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고 청마 시인의 고향이 통영이란 사실도 그때 알았다. 수학여행의 추억은 세월이 흘러도 흑백사진처럼 선명하게 남는다.
학창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야 할 수학여행이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상처가 된다는 보도를 접하니 씁쓸하다. 고등학생 자녀를 둔 아버지가 수학여행 가정통신문을 받았다. 국내 여행지는 없고 중국·백두산·캄보디아 세 군데 중 한 곳을 선택하라고 한다. 경비는 90만 원 후반에서 130만 원이다. 비용이 부담되고 황당했지만 보내기로 했다. 우리 아이만 안가면 기분이 어떻겠느냐며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경제적 부담 때문에 수학여행을 못 간 학생은 다녀온 학생들의 이야기에 소외되고 평생 상처가 될 수 있다. 지난해 한 고등학교는 450만 원을 내고 미국 수학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 직장인들도 이 정도 금액이면 부담을 느낀다. 고액을 낸 만큼 교육적으로 의미가 컸었는지 묻고 싶다.
지난해 교육부가 여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도 수학여행의 양극화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2015년 수학여행을 실시한 전국의 고등학교 중 수학여행비가 가장 많이 낸 학교는 중부권의 과학고로 조사됐다. 이 학교는 학생 1인당 306만 원을 내고 미국 뉴욕과 보스턴, 워싱턴DC를 다녀왔다. 수학여행비 상위 10위권의 8개교가 과학고, 외고 등 특목고로 평균 1인당 경비는 231만9783원이었다. 해외여행으로 견문을 넓히는 것도 좋지만, 경비가 많을수록 경제적 여건이 어려운 학생은 당연히 못 가게 되어 위화감이 들게 마련이다. 수학여행마저 금수저 흙수저로 나누어 질 판이니 서글프다.
수학여행 경비 하위 10개교는 1인당 평균 4만247원을 들여 학교 인근 지역을 다녀온 것으로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는 1인당 2만 5,000원으로 야영장 캠프로 수학여행을 대신했다고 한다. 캠프파이어를 하며 장기자랑으로 끼를 발산하면 추억이 아닌가.
더구나 수학여행을 가지 못하는 것도 속상한데 일부 학교는 등교하여 자습하라는 것도 비교육적 행위다. 지금은 대기업에 근무하는 인척 조카는 기숙고등학교 시절 돈이 없어 수학여행 못 간 것도 억울한데 기숙사에서 자율학습을 하면서 청소까지 시켜 그 생채기가 아직 남아있다고 한다. 교육 당국은 수학여행 안전 매뉴얼 못지않게 고비용 해외 수학여행에도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