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어둠 속에서 빛이 되는 일

어둠 속에서 빛이 되는 일

by 한희철 목사 2016.07.13

선할 때는 천사보다도 더 선하고, 악할 때는 악마보다도 더 악한 것이 인간 아닐까 모르겠습니다. 선한 마음을 가진 이들을 보면 인간이 저렇게 선할 수도 있구나 싶어 감탄하게 되고, 악한 마음을 가진 이들을 보면 인간이 저렇게 악할 수도 있구나 싶어 탄식하게 됩니다. 태어날 때부터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따로 구별되어 태어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모든 인간 안에는 선과 악이라는 두 가지 가능성이 공존하고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가 천사의 길을 택하느냐 악마의 길을 택하느냐 하는 것은 그가 정하는 마음에 따라 결정이 될 것이겠지요.
어떤 인디언 할아버지가 어린 손녀를 데리고 들로 나갔을 때 마침 늑대 두 마리가 서로 으르렁거리며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우리 마음속에서도 두 마리 늑대가 싸운단다.” “우리 마음속에서도 늑대가 싸운다고요?” “그래,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이 저 늑대들처럼 싸우지.” 이야기를 들은 손녀가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둘이 싸우면 누가 이겨요?” 그때 할아버지는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네가 먹이를 주는 쪽이 이긴단다.”
나치가 저지른 유대인 대학살 홀로코스트는 인류 역사상 가장 악마에 가까웠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인간이 얼마나 잔혹할 수 있는지, 어디까지 악할 수 있는지 그 끝을 보았다 싶기 때문입니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중 한 사람인 엘리 위젤이 얼마 전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침묵은 평화에 대한 가장 큰 죄악”이라며 “나와는 상관없다는 식의 무관심에 맞서야 한다.”고 강조한 그는 한평생을 홀로코스트를 증언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엘리 위젤은 나치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흑야>(Night)라는 회고록에 담았습니다. 흑야에 나오는 내용 중에는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습니다. 수용소 안에서 일어난 한 사건으로 세 사람이 공개처형을 당하게 됩니다. 어른 두 명과 소년 한 명이었지요. 사형틀 앞을 전원이 구령에 맞추어 행군해야 했는데, 어른 두 사람은 이내 숨을 거두었지만, 소년은 몸이 가벼워서인지 한동안 버둥거렸습니다. 소년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지나갈 때 엘리 위젤의 마음속에서는 하나의 물음이 일어났습니다. “하느님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때 엘리 위젤은 내부에서 자신에게 대답하는 어떤 음성을 듣습니다. “그분이 어디 있느냐고? 그분은 여기 있어. 여기 저 교수대에 매달려 있어.”
엘리 위젤은 <흑야> 뿐만이 아니라 수용소 경험을 토대로 한 60여 권의 저서를 남겼는데, 인종차별 철폐와 인권을 신장한 공을 인정받아 1986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많은 이들이 그를 애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총리는 “엘리 위젤은 600만 명이 숨진 홀로코스트의 암흑 속에서 등대와도 같은 역할을 했다”며 고인을 추모했는데, 어둠에 지지 않고 어둠을 증언하는 일은 어둠 속에서 빛이 되는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