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무슨 재미로 사는 겨”

“무슨 재미로 사는 겨”

by 이규섭 시인 2016.07.08

건강에 자신 넘치는 사람이 예방 차원에서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선생님! 이만큼 좋고 튼튼한 위장이면 100살은 거뜬히 살겠지요?” “글쎄요, 술을 하시나요?” “한 모금도 못 합니다” “담배는?” “전혀 안 피웁니다” “그러시면, 봉사활동이나 특별한 취미라도 있으신가요? 음악이나 스포츠 등…” “별로요∼” “여자는 좋아하시나요?” “근처에도 가지 않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100년씩이나 살 이유가 없잖아요? 무엇하러 삽니까?” 경상도 버전으로 “무슨 재미로 사는 겨”이다.
웃자고 지어낸 이야기지만 저런 남성은 멋대가리 없다. 왜 100세까지 살려는지 동기부여가 안 된다. 가족을 위해 개미처럼 일은 하겠지만, 베짱이 같은 흥이 없는 무미건조한 인간으로 문화생활과는 거리가 멀다. 운동도 안 하고 취미도 없이 주변과 담을 쌓고 살수록 나이 들면 외로운 처지가 된다. 등산화 끈 질끈 조이고 산을 찾거나, 낚싯대 메고 바다로 나가거나 자전거 타고 강변을 달릴 위인도 못 된다.
‘착한 개미’일수록 재테크, 노(老)테크는 착실하게 했겠지만, 친구들에게 술값 밥값 한번 흔쾌히 쏘는 스타일은 아니다. 모임에 나가도 술을 못 마시니 안주만 축내다 온다. 은퇴하여 ‘개미 역할’마저 끊어지면 아내로부터 홀대받기 시작하여 개밥에 도토리 신세로 전락한다. 누구나 이런저런 모임 몇 가지는 있다. 향우회와 동창회는 자식들 결혼시키고 나면 시들해진다. 처음에는 고향 까마귀처럼 반갑다가도 거들먹거리는 친구들이 늘면서 발길을 끊었다. 친목 단체에 가면 친소관계에 따라 끼리끼리 어울린다. 퇴직 후 글품이라도 팔려고 결성한 칼럼니스트 모임은 매월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17년 가까이 지나다 보니 저세상으로 떠난 회원도 있고,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참가자가 줄면서 격월 점심 모임으로 축소지향 됐다.
화제의 공통분모를 찾기 쉽고 격의 없이 어울리는 사람은 언론현장서 비슷하게 퇴직한 이들이다. 모임 날짜도 헷갈리지 않게 ‘매월 몇 번째 주 오후 몇 시’라고 못 박아 놓고 참석 여부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그날 비용은 N분의 1로 나누어 내니 부담 없고 공동 기금도 없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같은 부서에 근무하던 선후배와 일 년에 두 번 만나는 모임은 평균 연령이 낮아지면서 푸른 피가 도는 것 같아 즐겁다. 송년 모임은 도심에서 갖지만 한 해의 반환점을 도는 유월에는 근교로 소풍을 간다. 현역 후배들과 떠나는 소풍은 즐겁다.
반주를 곁들인 점심 후에는 족구로 소통한다. 초창기엔 선·후배 팀으로 나눠 대등한 경기를 펼쳤으나 이제는 족탈불급, 나이는 속일 수 없다. 몇 해 전부터는 혼합팀으로 구성하여 “마이 볼∼”을 외치며 노폐물을 땀으로 흘린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노래방 코스에서 흥을 발산하면 세월이 잠시 호흡을 고르는 느낌이다. 늙을수록 시간은 늘고 활동공간은 좁아진다. 한 가지 모임이라도 유지하며 즐거움을 누려야 “무슨 재미로 사는 겨”라는 핀잔을 듣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