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게구름 피는 마을로 여행하고 싶다
뭉게구름 피는 마을로 여행하고 싶다
by 권영상 작가 2016.06.30
아파트 후문 뒷길에 언제부턴가 캠핑 트레일러 한 대가 서 있다. 모서리가 부드럽게 구부러진 흰색 트레일러다. 이 캠핑 트레일러가 여기 주차된 지는 일 년이 넘는다. 산으로 갈 적이면 가끔 이쪽 인도에 서서 그 캠핑 트레일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작은 창문엔 나뭇잎무늬 커튼이 쳐져 있고, 그 아래엔 가스통과 유류를 저장하는 젤리캔이 있다. 연결대의 핀을 승용차에 꽂기만 하면 달려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 두 바퀴.
이 트레일러의 주인은 누구일까. 모르긴 해도 캠핑카 여행에 매혹되어 아내를 설득하고 끝내 이 트레일러를 산 용기 있는 사내일 것 같다. 처음에는 한 달에 두 번, 아니 세 번 여행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그런데 바쁜 일상이 여행을 떠나려는 그의 발목을 자꾸 붙잡았겠다. 그 바람에 캠핑 트레일러는 이럭저럭 일 년이 넘도록 여기 묶여있는 게 아닐까.
나도 한때는 해가 지는 쪽으로 캠핑카를 몰고 가다 저녁노을 내리는 숲에 차를 세우고 1박을 하는 꿈을 꾸었댔다. 그때가 내 나이 마흔. 1993년 작, 조니뎁과 줄리엣 루이스가 나오는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를 보고 나서다.
길버트 역의 조니뎁에겐 자살한 아버지와 그 충격으로 사람들로부터 놀림을 받을 만큼 살이 찐 엄마가 있다. 가족이야 죽든 말든 제 몸치장에 급급한 철없는 여동생과 정신이 부실한 어린 동생 어니. 동네 식료품 가게 점원인 길버트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오늘이 어제 같은, 내일이라 해 봤자 아무 달라질 게 없는 답답한 일상에 젖어 산다.
그 무렵, 구름이 피는 길을 따라 길버트가 사는 엔도라의 작은 마을로 캠핑카의 대열이 나타난다. 그 대열에 할머니와 함께 캠핑카 여행을 하는 베키역의 예쁜 줄리엣 루이스가 있다. 공교롭게도 루이스가 몰고 가는 차는 고장이 나고, 이 마을에서 머물게 된다.
마을 물탱크에 올라가 말썽을 피우는 어니를 달래어 데리고 내려오는 길버트에게 베키는 묘한 사랑을 느낀다. 그러나 가족을 부양해야 할 길버트에겐 사랑이란 너무나 먼일. 그러면서도 차츰 베키에게로 마음이 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가족을 부양하는 일이 당연한 거라고 여기며 살았는데 사랑을 알고부터 길버트는 가족이 자신을 옭아매는 멍에라는 걸 느낀다. 아직 한 번도 나무란 적 없는 동생 어니에게 손찌검을 하고 마을을 떠났다가 돌아왔을 때, 떠나지 않고 기다려준 베키를 길버트는 끝내 사랑한다.
엄마의 죽음 이후, 길버트와 베키는 바보 동생 어니와 함께 캠핑카를 타고 다시 먼 여행을 떠난다. 그때, 영화가 끝나고, 영화관에 불이 들어온 뒤까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캠핑카를 몰고 뭉게구름 피는 먼 곳으로 여행하고 싶다는 충동이 내 안에서 일고 있었다.
며칠 전, 은퇴한 친구 형님에게 살아오면서 꼭 해보고 싶었던 게 있었냐고 여쭈어보았다. 그때 그분이 말했다. 캠핑카에 아내를 태우고 가본 적 없는 길을 한 달가량 여행하고 싶었다고. 그러나 이젠 그마저 물거품이 되고 말 만큼 나이를 먹었다며 쓸쓸히 웃었다.
산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나는 다시 그 캠핑트레일러 옆을 지났다. 더 늦기 전에 한 번 여행을 시작해 보라고 트레일러가 내게 말을 거는 것 같다. 캠핑카는 아니어도 내 차로 사흘쯤 시간을 내어 아내와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다가 뭉게구름을 만나면 멈추어 서서 오랫동안 뭉게구름을 보고 떠나는 그런 여행을.
이 트레일러의 주인은 누구일까. 모르긴 해도 캠핑카 여행에 매혹되어 아내를 설득하고 끝내 이 트레일러를 산 용기 있는 사내일 것 같다. 처음에는 한 달에 두 번, 아니 세 번 여행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그런데 바쁜 일상이 여행을 떠나려는 그의 발목을 자꾸 붙잡았겠다. 그 바람에 캠핑 트레일러는 이럭저럭 일 년이 넘도록 여기 묶여있는 게 아닐까.
나도 한때는 해가 지는 쪽으로 캠핑카를 몰고 가다 저녁노을 내리는 숲에 차를 세우고 1박을 하는 꿈을 꾸었댔다. 그때가 내 나이 마흔. 1993년 작, 조니뎁과 줄리엣 루이스가 나오는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를 보고 나서다.
길버트 역의 조니뎁에겐 자살한 아버지와 그 충격으로 사람들로부터 놀림을 받을 만큼 살이 찐 엄마가 있다. 가족이야 죽든 말든 제 몸치장에 급급한 철없는 여동생과 정신이 부실한 어린 동생 어니. 동네 식료품 가게 점원인 길버트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오늘이 어제 같은, 내일이라 해 봤자 아무 달라질 게 없는 답답한 일상에 젖어 산다.
그 무렵, 구름이 피는 길을 따라 길버트가 사는 엔도라의 작은 마을로 캠핑카의 대열이 나타난다. 그 대열에 할머니와 함께 캠핑카 여행을 하는 베키역의 예쁜 줄리엣 루이스가 있다. 공교롭게도 루이스가 몰고 가는 차는 고장이 나고, 이 마을에서 머물게 된다.
마을 물탱크에 올라가 말썽을 피우는 어니를 달래어 데리고 내려오는 길버트에게 베키는 묘한 사랑을 느낀다. 그러나 가족을 부양해야 할 길버트에겐 사랑이란 너무나 먼일. 그러면서도 차츰 베키에게로 마음이 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가족을 부양하는 일이 당연한 거라고 여기며 살았는데 사랑을 알고부터 길버트는 가족이 자신을 옭아매는 멍에라는 걸 느낀다. 아직 한 번도 나무란 적 없는 동생 어니에게 손찌검을 하고 마을을 떠났다가 돌아왔을 때, 떠나지 않고 기다려준 베키를 길버트는 끝내 사랑한다.
엄마의 죽음 이후, 길버트와 베키는 바보 동생 어니와 함께 캠핑카를 타고 다시 먼 여행을 떠난다. 그때, 영화가 끝나고, 영화관에 불이 들어온 뒤까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캠핑카를 몰고 뭉게구름 피는 먼 곳으로 여행하고 싶다는 충동이 내 안에서 일고 있었다.
며칠 전, 은퇴한 친구 형님에게 살아오면서 꼭 해보고 싶었던 게 있었냐고 여쭈어보았다. 그때 그분이 말했다. 캠핑카에 아내를 태우고 가본 적 없는 길을 한 달가량 여행하고 싶었다고. 그러나 이젠 그마저 물거품이 되고 말 만큼 나이를 먹었다며 쓸쓸히 웃었다.
산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나는 다시 그 캠핑트레일러 옆을 지났다. 더 늦기 전에 한 번 여행을 시작해 보라고 트레일러가 내게 말을 거는 것 같다. 캠핑카는 아니어도 내 차로 사흘쯤 시간을 내어 아내와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다가 뭉게구름을 만나면 멈추어 서서 오랫동안 뭉게구름을 보고 떠나는 그런 여행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