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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학대 신고의무 제대로 될까

노인학대 신고의무 제대로 될까

by 이규섭 시인 2016.06.24

오래된 장독은 반질반질 윤이 난다. 정성껏 쓰고 닦은 것이 역력하다. 80대 노부부가 쓰던 장독을 얻어왔다. 이사를 하려니 놓을 데도 마뜩잖으니 장 담던 독을 가져가라고 한다. 늘그막에 이사해야 하는 사연도 기가 막히다. 그동안 일궈놓은 4층 빌라는 맏아들의 잇따른 사업실패로 남의 손으로 넘어갔다. 빚잔치하고 남은 돈으로 좁은 집으로 전세 얻어가면서 세간을 이웃에게 나눠줬다. 자식의 빚을 청산하고 이삿짐 싸는 심정은 오죽할까. 부모를 참담하게 만든 것도 정신적 학대와 마찬가지다.
늙기도 서러운데 힘없는 노인들을 폭행하고 무시하는 사례가 갈수록 늘어난다니 착잡하고 서글프다. 지난해 노인학대 신고 건수만 1만 1,905건으로 전년보다 12.6% 증가했다고 한다. 자식들이 처벌받거나 동네에서 손가락질받을까 봐 은폐하는 경우가 많아 실제 발생하는 노인학대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게 뻔하다.
노인학대 가해자는 3건 중 1건이 아들이었고 배우자, 딸, 며느리 등을 포함하면 가족이 노인학대의 70%가량을 차지한다니 어처구니없다. 경제력 없는 노인일수록 가족들로부터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으니 통탄할 일이다. 심지어 요양시설이나 요양병원에서조차 폭언과 정서적 학대가 자주 발생한다니 늙고 병든 노인들의 설 땅은 좁아진다. 전통적 효사상이 뿌리 째 흔들려도 경로우대제도가 있는 나라에서 노인학대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됐다.
유엔은 노인학대에 관한 사회적 관심 촉구와 예방을 위해 2006년 ‘세계 노인학대 인식의 날’을 제정했다. 정부도 내년부터 매년 6월 15일을 ‘노인학대 예방의 날’로 지정하여 노인학대에 대한 인식을 높이겠다고 한다. 연말부터 시행에 들어가는 개정 노인복지법에 따라 노인학대 예방과 학대피해 노인보호 활동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개정 노인복지법은 노인학대 관련 범죄자의 노인 관련 기관 취업을 제한하고 노인학대 상습범과 노인복지시설 종사자의 학대행위를 가중 처벌하는 내용이 담겼다. 신고의무자 직군을 8개에서 14개로 확대하고 신고 불이행 때 과태료를 300만 원에서 500만 원으로 상향 조정하도록 했지만 실효성에 의구심이 든다.
지난 2013년 의료인이나 노인복지시설, 장애인복지시설, 가정폭력상담소, 사회복지관, 재가 장기요양기관 종사자 등 8개 직업군을 노인학대 신고의무자로 지정했지만, 제도시행 2년 동안 과태료부과는 한 건도 없어 법 취지가 무색해졌다. 여기에 의료기관장, 노인 돌봄서비스,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성폭력상담소 종사자와 응급구조사, 의료기사 등 6개 직군을 신고의무자로 추가해도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원칙상 의심 신고가 실제 노인학대로 최종 판정될 경우 피해 노인과 관계된 모든 신고의무자에 과태료를 물려야 하는데 학대 기간과 학대행위를 어느 수준까지 적용할지 불분명하다. 노인학대 상황에 휘말릴까 봐 신고를 주저하고, 자신이 신고의무자인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다니 법시행이 제대로 되겠는가. 결국은 주변의 관심과 인간성 회복운동이 노인학대를 줄이는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