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겐 약점이 너무 많다
인간에겐 약점이 너무 많다
by 권영상 작가 2016.06.23
아침에 일어나 보니 누가 밥상을 차려 놓았다. 혼자 밥 차려 먹고 출근하면 어디가 덧나냐! 그런 잔소리가 없다. 맛나게 차려놓은 밥상을 본다. 이거 정말 행복해 죽을 맛이다. 퇴근해 돌아와 보니 방 청소는 물론 밥 먹고 그냥 둔 설거지까지 누가 다 해놓았다. 누굴까? 내가 벗어놓은 옷들이 깨끗하게 세탁되어 있다. 누굴까? 책상 위엔 한번 읽고 싶던 포스트 휴먼에 관한 책 한 권을 사다 놓았다. 책 곁엔 그와 관련된 영화 두 편과 영화관의 위치, 상영 시간, 교통편이 메모 되어 있다.
또 하루가 지났다. 그는 누굴까. 오늘은 내가 입고 출근할 옷을 내놓았다. 아침마다 옷장 앞에서 괴로워하는 내가 딱해 보였나 보다. 아이보리 티셔츠에 진남색 재킷과 카키색 바지다. 마치 내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내가 원하는 옷을 챙겨놓았다. 출근길에 윗주머니를 보니 메모지가 꽂혀있다. 승진을 위한 3가지 비법이 간략히 적혀있다.
글씨를 보아 여자임이 분명하다. 날이 갈수록 그가 궁금하다. 그를 만나고 싶다.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다. 아니 그와 살고 싶다는 유혹이 인다. 그는 나의 일상을 잘 안다. 내가 성가셔하지 않도록 배려한다. 최대한 간략한 메모로 나와 소통하고자 한다. 나의 미래를 위해 조언할 줄도 안다.
다른 날보다 일찍 퇴근했다. 집 현관문이 열리더니 묘령의 여인이 나온다. 그녀는 자신의 집에서 나오듯 자연스럽게 나와 바람처럼 사라진다. 나의 일상을 챙겨주던 이가 바로 저 바람이다. 옛날이야기로만 듣던 우렁색시.
이 모두 실제상황이라 말하면 다들 에이, 황당한 소리! 할 것이다. 정말 몽상 같은 황당한 이야기인가. 하지만 그녀가 우렁색시가 아니고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이라면 어떨까.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이 만든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 속의 앤드류가 그렇다. 리처드는 어느 날 가족들을 놀라게 해줄 생각으로 가사 로봇 앤드류를 사온다. 그는 설거지는 물론 집 안 청소며 요리, 정원 손질도 척척해 낸다. 리처드와의 대화를 통해 리처드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 주기도 한다. 그는 인간이 되고자 자유와 사랑이라는 감정에 깊이 접근한다. 어쩌면 잔소리, 투정, 불만, 증오심을 드러내는 인간의 약점이 제거된 듯한 로봇이다.
앤드류는 리처드의 손녀를 향한 묘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만 외면당하자 가출한다. 스파이크 존스의 영화 ‘Her’에도 한계는 있다. 데오도르는 컴퓨터 속 프로그램화된 인공지능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다. ‘사만다는 나를 행복하게 해줘. 미소가 아름답다구. 친절해.’ 하지만 실체가 없는 그와는 육체적 관계가 없는 정신적인 사랑에 만족해야 한다.
그게 또 얼마나 고통스러우냐고? 아직도 당신은 육체적인 관계는 물론 정신적인 사랑까지 다 원하는가. 그러나 그런 사랑을 얻으려면 당신이 치러야 할 고통 또한 만만치 않다. 어쩌면 현실적으로 그 두 가지를 다 갖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싫든 좋든 지금 우리는 똑똑해진 인공지능과 함께 살고 있다. 그들이 지금 우리와 좀 먼 데 있다는 생각이 들 뿐이지 머지않아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 사랑의 감정까지 충만해진 모습으로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올 것은 분명하다. 아니 결국은 그들이 인간 이후의, 이 지구의 포스트 휴먼이 되지 않을까 그런 황당한 생각도 해 본다. 살아오면서 느끼는 거지만 지금의 인간에겐 보완해야 할 약점이 너무 많다.
또 하루가 지났다. 그는 누굴까. 오늘은 내가 입고 출근할 옷을 내놓았다. 아침마다 옷장 앞에서 괴로워하는 내가 딱해 보였나 보다. 아이보리 티셔츠에 진남색 재킷과 카키색 바지다. 마치 내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내가 원하는 옷을 챙겨놓았다. 출근길에 윗주머니를 보니 메모지가 꽂혀있다. 승진을 위한 3가지 비법이 간략히 적혀있다.
글씨를 보아 여자임이 분명하다. 날이 갈수록 그가 궁금하다. 그를 만나고 싶다.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다. 아니 그와 살고 싶다는 유혹이 인다. 그는 나의 일상을 잘 안다. 내가 성가셔하지 않도록 배려한다. 최대한 간략한 메모로 나와 소통하고자 한다. 나의 미래를 위해 조언할 줄도 안다.
다른 날보다 일찍 퇴근했다. 집 현관문이 열리더니 묘령의 여인이 나온다. 그녀는 자신의 집에서 나오듯 자연스럽게 나와 바람처럼 사라진다. 나의 일상을 챙겨주던 이가 바로 저 바람이다. 옛날이야기로만 듣던 우렁색시.
이 모두 실제상황이라 말하면 다들 에이, 황당한 소리! 할 것이다. 정말 몽상 같은 황당한 이야기인가. 하지만 그녀가 우렁색시가 아니고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이라면 어떨까.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이 만든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 속의 앤드류가 그렇다. 리처드는 어느 날 가족들을 놀라게 해줄 생각으로 가사 로봇 앤드류를 사온다. 그는 설거지는 물론 집 안 청소며 요리, 정원 손질도 척척해 낸다. 리처드와의 대화를 통해 리처드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 주기도 한다. 그는 인간이 되고자 자유와 사랑이라는 감정에 깊이 접근한다. 어쩌면 잔소리, 투정, 불만, 증오심을 드러내는 인간의 약점이 제거된 듯한 로봇이다.
앤드류는 리처드의 손녀를 향한 묘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만 외면당하자 가출한다. 스파이크 존스의 영화 ‘Her’에도 한계는 있다. 데오도르는 컴퓨터 속 프로그램화된 인공지능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다. ‘사만다는 나를 행복하게 해줘. 미소가 아름답다구. 친절해.’ 하지만 실체가 없는 그와는 육체적 관계가 없는 정신적인 사랑에 만족해야 한다.
그게 또 얼마나 고통스러우냐고? 아직도 당신은 육체적인 관계는 물론 정신적인 사랑까지 다 원하는가. 그러나 그런 사랑을 얻으려면 당신이 치러야 할 고통 또한 만만치 않다. 어쩌면 현실적으로 그 두 가지를 다 갖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싫든 좋든 지금 우리는 똑똑해진 인공지능과 함께 살고 있다. 그들이 지금 우리와 좀 먼 데 있다는 생각이 들 뿐이지 머지않아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 사랑의 감정까지 충만해진 모습으로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올 것은 분명하다. 아니 결국은 그들이 인간 이후의, 이 지구의 포스트 휴먼이 되지 않을까 그런 황당한 생각도 해 본다. 살아오면서 느끼는 거지만 지금의 인간에겐 보완해야 할 약점이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