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잿더미 앞에서도 웃을 수 있는 것은

잿더미 앞에서도 웃을 수 있는 것은

by 한희철 목사 2016.06.22

오래전의 일입니다. 봉화에 사는 전우익 선생 댁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를 비롯한 그분의 책을 몇 권 인상 깊게 읽고선 선배와 함께 봉화를 찾아갔던 것이었습니다. 그분의 집은 오래된 한옥이었는데, 집 주변 곳곳에는 세월이 잘 익은 나무들이 켜켜 쌓여 있었습니다. 주변에서 버려지는 나무를 모아다가 쌓아둔 것이었습니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바라보는 법이 없는 그분의 성품을 대뜸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그날 우리는 생각하지 못한 당황스러운 일을 경험하였습니다.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선생님과 함께 밖으로 나서는 길이었는데, 잠시 마당을 둘러보던 선배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습니다. “불이다!” 막 대문을 나서다 말고 놀라 달려가니 이미 안방에는 불길이 가득했습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선생님은 안방에 불을 때고 있었는데 우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곳은 사랑방,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 아궁이에서 안방으로 불이 옮겨붙은 것이었습니다.
정말이지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불을 껐습니다. 물이 있는 우물가가 집 밖에 있어 더욱 어려웠는데, 그야말로 부리나케 뛰어다니며 물을 붓자 천만다행으로 불길이 잦아들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불을 모두 끄고 나서보니 집은 엉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물과 재가 어지럽게 널린 바닥도 바닥이지만 제일 마음에 걸렸던 것은 안방에 걸려 있는 액자며 그림이며 선생님이 아끼던 많은 것들이 모두 불타버린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방문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던 일, 괜한 방문에 큰 어려움을 끼쳤다며 송구해 하자 선생님은 손사래를 쳤습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고, 구들장 아랫목에 틈이 생긴 걸 알면서도 손보는 일을 미루어온 게으름을 일깨우기 위해 내는 수업료라며 안방을 다 태운 일을 가벼운 웃음으로 받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함께 찾기로 한 정호경 신부님 댁으로 앞장을 서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전 한국화의 맥을 잇는 윤명호 화백의 작업실인 청우헌이 송두리째 불타버리고 말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윤 화백의 열정이 담긴 작품 70여 점도 새까만 재로 변했습니다. 윤 화백은 26년 전 지인의 도움으로 내아마을에 터를 잡았는데, 여느 시골과 다를 바 없던 마을은 윤 화백의 손길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마을 담벼락과 집의 벽들은 윤 화백의 붓끝이 스칠 때마다 커다란 화폭으로 변했습니다. 윤 화백에게 내아마을은 커다란 미술관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불에 탄 작품들은 전시회를 염두에 두었던 작품들, 75세의 화가에게는 크게 낙담할 일이 아닐 수 없겠다 싶은데 오히려 화가는 잿더미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그림을 두고 긴가민가하던 생각이 불과 함께 사라져 버리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동안의 작품은 다 불에 타버리는 경험을 통해서 처음부터 다시 자신의 그림을 그리겠다고 생각할 수가 있었던 것이었지요. 전우익 선생과 윤명호 화백, 두 분이 재 앞에서도 흐트러짐이 없었던 것은 불로는 태울 수 없는 가치를 마음에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