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든든한 빽이 있어요
나도 든든한 빽이 있어요
by 김재은 행복플랫폼 대표 2016.06.21
이른 아침, 내가 사는 아파트 뒤쪽 미타사 비탈길 숲 속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에 눈을 떴다.
아침에 들려오는 새소리는 어느 때보다도 또렷하고 청명하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다. 나의 숨소리도 덩달아 생기가 넘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느 날 아침이 오고, 새는 울고 있는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어떨까 하는. 밤사이 나의 숨이 멈추고, 모든 의식이 사라져버렸을 때 또 다른 내가 있어 그 상황을 목격한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무덤덤할까 아니면 살아있음에 대한 집착으로 몸부림칠까.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의식이 살아있고 오감이 살아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온전히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뜬금없이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은 온갖 번뇌와 스트레스에 쩔쩔매며 불편하고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이 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에 나 자신이 있음은 물론이다.
한 세상, 좋은 인연으로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우리는 왜 이리 편치 않은 삶을 살아갈까.
곰곰이 헤아려본다. 신나고 즐겁게 살아도 짧은 인생이라며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을 타박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는, 사람마다 각자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편안하고 즐거운 삶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삶을 살아가려면 나에게 뭔가 힘을 주는 것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구체적인 사람이나 사물이 될 수도 있고, 힘을 주는 상황이나 배경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 하나로도 충분히 힘이 되고 신이 날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은 물론이고, 내 곁에서 응원해주고 손을 잡아주는 그 어떤 사람도 그러할 것이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경기를 할 때나, 관전할 때,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음악을 들을 때 또는 여행이나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할 때 신이 나고 즐거울 것이다.
책 한 권, 성인이나 스승의 가르침 한 구절도 때로는 나를 든든하게 견디게 하는 힘이 될 수 있다. 나에게는 포리스트 카터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과 고 신영복 선생의 ‘나무야 나무야’같은 책이 나에게 힘을 준다. 또한, 불편했던 사람과 화해하고 남은 감정을 남김없이 풀었을 때, 마침내 빚덩이에서 벗어나 독촉전화로부터 해방되었을 때 등도 삶이 가벼워져 신이 나고 삶에 힘이 생기게 해 줄 것이다.
이렇듯 내 삶과 주위를 돌아보면 나에게 힘을 주는 것들은 참 많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이리도 힘없이 풀이 죽은 채로 살아가는 것일까.
오랜 시간 동안 과거의 경험이나 타성이 내 삶의 생기를 빼앗아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는 지금의 삶도, 다가올 미래도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가 전혀 없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 손을 잡아줄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아니 적어도 한 명은 있다. 나에게는 든든한 빽이 있다. 무엇을 두려워하고 힘들어하랴. 깃털처럼 가볍고 신나는 새로운 미래, 힘 있는 미래는 나의 것이다.
아침에 들려오는 새소리는 어느 때보다도 또렷하고 청명하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다. 나의 숨소리도 덩달아 생기가 넘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느 날 아침이 오고, 새는 울고 있는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어떨까 하는. 밤사이 나의 숨이 멈추고, 모든 의식이 사라져버렸을 때 또 다른 내가 있어 그 상황을 목격한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무덤덤할까 아니면 살아있음에 대한 집착으로 몸부림칠까.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의식이 살아있고 오감이 살아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온전히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뜬금없이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은 온갖 번뇌와 스트레스에 쩔쩔매며 불편하고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이 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에 나 자신이 있음은 물론이다.
한 세상, 좋은 인연으로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우리는 왜 이리 편치 않은 삶을 살아갈까.
곰곰이 헤아려본다. 신나고 즐겁게 살아도 짧은 인생이라며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을 타박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는, 사람마다 각자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편안하고 즐거운 삶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삶을 살아가려면 나에게 뭔가 힘을 주는 것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구체적인 사람이나 사물이 될 수도 있고, 힘을 주는 상황이나 배경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 하나로도 충분히 힘이 되고 신이 날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은 물론이고, 내 곁에서 응원해주고 손을 잡아주는 그 어떤 사람도 그러할 것이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경기를 할 때나, 관전할 때,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음악을 들을 때 또는 여행이나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할 때 신이 나고 즐거울 것이다.
책 한 권, 성인이나 스승의 가르침 한 구절도 때로는 나를 든든하게 견디게 하는 힘이 될 수 있다. 나에게는 포리스트 카터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과 고 신영복 선생의 ‘나무야 나무야’같은 책이 나에게 힘을 준다. 또한, 불편했던 사람과 화해하고 남은 감정을 남김없이 풀었을 때, 마침내 빚덩이에서 벗어나 독촉전화로부터 해방되었을 때 등도 삶이 가벼워져 신이 나고 삶에 힘이 생기게 해 줄 것이다.
이렇듯 내 삶과 주위를 돌아보면 나에게 힘을 주는 것들은 참 많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이리도 힘없이 풀이 죽은 채로 살아가는 것일까.
오랜 시간 동안 과거의 경험이나 타성이 내 삶의 생기를 빼앗아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는 지금의 삶도, 다가올 미래도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가 전혀 없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 손을 잡아줄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아니 적어도 한 명은 있다. 나에게는 든든한 빽이 있다. 무엇을 두려워하고 힘들어하랴. 깃털처럼 가볍고 신나는 새로운 미래, 힘 있는 미래는 나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