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이사가: 개나리의 수난
또 이사가: 개나리의 수난
by 강판권 교수 2016.06.13
이사는 희망이자 설움이다. 한층 나은 곳으로 옮기면 희망이지만 그렇지 못한 곳으로 가면 설움이기 때문이다. 나는 부모 곁에서 살 때까지 단 한 번의 이사만 경험했지만, 초가집에서 기와집으로 이사한 덕분에 결혼 전까지 이사에 대해서는 좋은 기억만 남아 있다. 그러나 결혼 후에는 이사가 매우 잦아 이사에 대한 나의 기억은 희망보다는 설움으로 남아 있다. 지금도 대한민국의 절반 이상 사람들은 이사에 대해 희망보다는 설움을 경험하고 있다.
나무 중에서도 사람과 같은 경험을 갖고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살아가는 나무들은 한 번 뿌리를 내리면 좀처럼 이사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인간의 발길이 잦은 곳에 사는 나무들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이사를 경험해야 한다. 내가 근무하는 곳의 물푸레나뭇과 개나리가 얼마 전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가 어디론가 사라진 것은 그가 이사 온 지 거의 6개월 만이다. 나는 올해 봄에 그가 피운 노란 꽃을 보았다. 점심 혹은 저녁때 식당에 갈 때마다 그와 만나 정답게 인사하면서 6개월을 보냈다. 그동안 나는 그가 피운 꽃을 여러 차례 촬영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올 5월 말에 나는 식당에 가다가 그가 없어진 사실을 발견했다. 그 순간 나는 정말 황당했다. 도대체 누가 이곳에 사는 개나리를 옮겼을까 궁금했지만 당장 물어볼 방법이 없었다. 나는 밥 먹는 것도 잊고 개나리가 이사한 곳보다 개나리가 이사를 하면서 겪었을 마음의 상처를 생각했다. 사람들은 나무를 옮기면서 결코 옮기는 장소를 알려주지 않는다. 나무는 삽이나 포크 레인을 들이대는 순간 불안과 초조를 넘어 공포에 떨어야만 한다. 한 번이라도 나무를 생명체라고 생각한다면, 적어도 옮길 때 ‘죽이는 것이 아니라 부득이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다’라는 말이라도 해주면 나무도 조금이나마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사라진 개나리를 생각하면서 주인의 횡포에 이사할 수밖에 없었던 지난날을 떠올리면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어떤 차별도 없다. 맑은 날이든, 비 오는 날이든, 구름이 많은 날이든, 구름이 적은 날이든 하늘은 누구나 평등하게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언제부터인가 하늘을 무척 사랑한다. 학생들과 교실 밖으로 나무를 보러 나갈 때도 가장 먼저 하늘을 보면서 출발한다. 얼마 전 비 갠 저녁에 밥을 먹고 캠퍼스를 산책하다가 하늘을 보니 갑자기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러나 나의 손에는 카메라가 없었다. 나는 스마트폰이 아니라서 휴대폰으로 사진을 촬영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마음의 카메라’로 아름다운 하늘을 담았다.
내가 나무를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도 재산이나 나이 및 지위를 막론하고 평등하게 나무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돈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나무를 뜰에 심거나 수목원을 만든다. 그러나 아무리 돈이 많아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나무를 소유할 수는 없다. 그래서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나무를 만날 수 있다. 나는 지금 이사를 하지 않아서 무척 행복하지만, 나무와 함께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서 더욱 행복하다.
나무 중에서도 사람과 같은 경험을 갖고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살아가는 나무들은 한 번 뿌리를 내리면 좀처럼 이사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인간의 발길이 잦은 곳에 사는 나무들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이사를 경험해야 한다. 내가 근무하는 곳의 물푸레나뭇과 개나리가 얼마 전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가 어디론가 사라진 것은 그가 이사 온 지 거의 6개월 만이다. 나는 올해 봄에 그가 피운 노란 꽃을 보았다. 점심 혹은 저녁때 식당에 갈 때마다 그와 만나 정답게 인사하면서 6개월을 보냈다. 그동안 나는 그가 피운 꽃을 여러 차례 촬영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올 5월 말에 나는 식당에 가다가 그가 없어진 사실을 발견했다. 그 순간 나는 정말 황당했다. 도대체 누가 이곳에 사는 개나리를 옮겼을까 궁금했지만 당장 물어볼 방법이 없었다. 나는 밥 먹는 것도 잊고 개나리가 이사한 곳보다 개나리가 이사를 하면서 겪었을 마음의 상처를 생각했다. 사람들은 나무를 옮기면서 결코 옮기는 장소를 알려주지 않는다. 나무는 삽이나 포크 레인을 들이대는 순간 불안과 초조를 넘어 공포에 떨어야만 한다. 한 번이라도 나무를 생명체라고 생각한다면, 적어도 옮길 때 ‘죽이는 것이 아니라 부득이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다’라는 말이라도 해주면 나무도 조금이나마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사라진 개나리를 생각하면서 주인의 횡포에 이사할 수밖에 없었던 지난날을 떠올리면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어떤 차별도 없다. 맑은 날이든, 비 오는 날이든, 구름이 많은 날이든, 구름이 적은 날이든 하늘은 누구나 평등하게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언제부터인가 하늘을 무척 사랑한다. 학생들과 교실 밖으로 나무를 보러 나갈 때도 가장 먼저 하늘을 보면서 출발한다. 얼마 전 비 갠 저녁에 밥을 먹고 캠퍼스를 산책하다가 하늘을 보니 갑자기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러나 나의 손에는 카메라가 없었다. 나는 스마트폰이 아니라서 휴대폰으로 사진을 촬영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마음의 카메라’로 아름다운 하늘을 담았다.
내가 나무를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도 재산이나 나이 및 지위를 막론하고 평등하게 나무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돈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나무를 뜰에 심거나 수목원을 만든다. 그러나 아무리 돈이 많아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나무를 소유할 수는 없다. 그래서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나무를 만날 수 있다. 나는 지금 이사를 하지 않아서 무척 행복하지만, 나무와 함께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서 더욱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