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용기 있는 용서

용기 있는 용서

by 이규섭 시인 2016.06.10

날벼락이다. 이런 날벼락이 있다니 어처구니없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대학생이 목숨을 끊기 위해 아파트에서 투신하면서 야근을 마치고 퇴근하던 30대 공무원 가장을 덮쳤다. 두 사람 모두 숨졌다. 남편과 아빠를 마중 나갔던 임신 8개월 만삭의 아내와 여섯 살 아들은 불과 몇 발자국 뒤에서 참혹한 현장을 지켜봐야 했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비극이다.
숨진 양대식 씨는 전남 곡성(谷城)군청 홍보팀 7급 공무원이다. ‘곡성 세계장미축제’ 마무리작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길이었다고 한다. 근무지 곡성에서 거주지 광주로 가는 막차를 타고 온 양 씨는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아파트 근처 정류장에 내려 마중 나온 아내와 여섯 살 아들을 만났다. 가정의 달 마지막 날 밤, 가족의 만남이 영원한 이별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지난달 하순 10여 일 동안 펼쳐진 장미축제는 인구 3만 명의 곡성에 23만 명의 방문객을 끌어드리며 대박을 쳤다. 양 씨가 축제 준비와 축제 현장을 누비며 등줄기에 소금 꽃이 피도록 땀 흘리고 홍보한 결과다. 곡성에서 찍은 영화 '곡성(哭聲)'이 크게 히트한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양 씨는 지난해 말 전남지사 표창을 받은 성실하고 유능한 공무원이었기에 안타까움은 더 크다. ‘군청에서 청소하는 사람’이라고 밝힌 조문객은 “이른 아침 출근하여 신문기사를 스크랩하고 분석하는 양 주무관을 보면서 성실한 청년”이라고 기억하며 부조금 50만 원을 전달했다는 지역신문 보도에서도 그의 인품을 느낀다.
공무원을 꿈꾸다 투신한 대학생은 “나는 열등감 덩어리다. 내 인생은 쓰레기다” “주위 시선이 신경 쓰여서 보는 공무원 시험, 외롭다”는 유서를 남겼다. 죽음을 선택한 취준생의 안타까운 사연은 취업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 준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졸지에 가장을 잃은 유족들은 분노보다 용서를 선택했다. 보도에 따르면 장례식이 끝난 뒤 공시생 아버지와 형은 양 씨 유족에게 “정말 죽을 죄를 졌다”며 용서를 구했다. 유족들은 “슬픔을 이겨 내자”고 위로하며 “모두 아픈 상처다. 비극이 빨리 잊혀 상처가 아물기를 바란다”며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다. 만삭의 아내는 남편을 잃게 한 청년에게 화가 났지만 용서했다. 투신 대학생 가족은 경제적으로 어렵고 영구 임대아파트에 살며 80대 노모를 봉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유족들은 보상 또한 받지 않기로 했다니 힘든 결단이자 용기 있는 용서다.
서울 명문대 유전공학과를 졸업한 양 씨는 제약회사에서 일하다가 늦깎이로 공무원이 됐다. 경기도 지자체에서 근무하다 아내의 고향인 곡성군청으로 옮겼다. 가장은 갔어도 가족은 슬픔을 딛고 살아가야 한다. 양 씨는 공무원연금법상 근무연수가 10년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규정을 충족하지 못해 연금수급 대상자가 되지 못한다는 소식이다. 공무원연금법 시행규칙에 ‘출퇴근 중의 사고로 인한 사망의 경우 공무상 사망으로 본다’는 규정이 있다니 유족급여를 받을 수 있게 처리되어 ‘곡성의 눈물’에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