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좋아하네. 꿈 깨!
꿈 좋아하네. 꿈 깨!
by 김재은 대표 2016.05.24
일장춘몽(一場春夢)이란 말이 있다.
어느 봄날, 한바탕의 봄 꿈처럼 헛된 영화(榮華)나 덧없는 일이란 뜻으로, 인생의 허무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짧은 인생, 뭐 그리 애달아 하면서 사느냐며 언젠가 어떤 선배가 해 준 말이기도 하다.
당나라 때의 소설 《남가태수전》에 나오는 남가일몽(南柯一夢)은 또 어떤가.
순우분이라는 사람이 술에 취하여 선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괴안국(槐安國) 사신의 초청으로 집 마당의 홰나무 구멍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왕녀와 결혼하고 남가군(南柯郡)의 태수가 되어 호강을 누렸다. 왕녀가 죽어 고향으로 돌아와 깨어보니 자기 집이었다.
남쪽 가지에서의 꿈이란 뜻으로, 이 또한 덧없는 꿈이나 헛된 부귀영화를 이르는 말이다.
이런 고사성어의 영향 속에서 살아온 탓일까. 돌이켜보면 어렸을 때부터 꿈이란 단어는 금기어였다. 꿈은 커녕 다른 생각만 해도 ‘꿈같은 소리’말고 공부나 하라면 핀잔이나 꾸중을 들었던 기억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한참 꿈을 꾸고 미래를 향해 나가야 할 때, 상상의 나래가 꿈이라는 단어를 만나 공상(空想)과 망상(妄想)으로 치부되어 ‘꿈 깨!’가 되어버린 것이다.
유교적 문화의 영향과 획일적 생각과 삶을 강요당한 일제강점기와 독재시대를 살아온 것도 아마 그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또한 산업화 시대조차도 ‘빠른 추종자’(fast follower)만 되면 되었기에 굳이 꿈을 꾸며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생각해보면 ‘꿈과 모험’을 즐기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안전지대에 머물며 ‘그냥’ 살아가도 되는데 뭐 그리 힘들게 ‘위험한’ 수고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그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창업 대신 철밥통이라 불리는 공무원시험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몰려가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자.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뻔한 삶에 무슨 즐거움이 있을까.
말 그대로 ‘일장춘몽’, 덧없는 삶이라 해도 한 번 세상에 왔으면 인생을 즐기고 의미와 가치 있는 삶을 살다 가야 하지 않겠는가.
어제와 오늘, 한 방송사에서 10여 년 넘게 진행하고 있는 디지털 포럼에 함께 하고 있다.
올해의 주제가 ‘관계의 진화-함께 하는 공동체’이다.
인공지능(AI)을 필두로 무인주행차,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등 얼마 전까지 ‘꿈’과 ‘공상’의 세계에 있던 일들이 현실에 그대로 펼쳐진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가 어떤 관계를 만들어가고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어떻게 가꾸어가야 하는지 같이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이다.
이제 어쩌면 ‘꿈’은 우리에게 공기나 물같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삶의 생존전략의 중심에 ‘꿈’을 빼고는 이야기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아니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도 ‘꿈꾸고 시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꿈을 잃으면 늙는다. 헛된 꿈, 망상이면 어떻고 공상이면 어떠랴.
꿈꾸는 사람들에 의해 세상은 변화해 왔고,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대부분은 ‘꿈쟁이’들이다. 거기에 혼자만의 꿈이 아닌 함께 꾸고 가꾸어가는 삶을 살아가자. 칭기즈칸의 말처럼 함께 꾸는 꿈은 이루어지기에.
영화 터보의 대화 한 구절에 이런 말이 있다.
‘이루지 못할 큰 꿈은 없다. 작다고 꿈까지 작지는 않다.’
어느 봄날, 한바탕의 봄 꿈처럼 헛된 영화(榮華)나 덧없는 일이란 뜻으로, 인생의 허무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짧은 인생, 뭐 그리 애달아 하면서 사느냐며 언젠가 어떤 선배가 해 준 말이기도 하다.
당나라 때의 소설 《남가태수전》에 나오는 남가일몽(南柯一夢)은 또 어떤가.
순우분이라는 사람이 술에 취하여 선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괴안국(槐安國) 사신의 초청으로 집 마당의 홰나무 구멍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왕녀와 결혼하고 남가군(南柯郡)의 태수가 되어 호강을 누렸다. 왕녀가 죽어 고향으로 돌아와 깨어보니 자기 집이었다.
남쪽 가지에서의 꿈이란 뜻으로, 이 또한 덧없는 꿈이나 헛된 부귀영화를 이르는 말이다.
이런 고사성어의 영향 속에서 살아온 탓일까. 돌이켜보면 어렸을 때부터 꿈이란 단어는 금기어였다. 꿈은 커녕 다른 생각만 해도 ‘꿈같은 소리’말고 공부나 하라면 핀잔이나 꾸중을 들었던 기억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한참 꿈을 꾸고 미래를 향해 나가야 할 때, 상상의 나래가 꿈이라는 단어를 만나 공상(空想)과 망상(妄想)으로 치부되어 ‘꿈 깨!’가 되어버린 것이다.
유교적 문화의 영향과 획일적 생각과 삶을 강요당한 일제강점기와 독재시대를 살아온 것도 아마 그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또한 산업화 시대조차도 ‘빠른 추종자’(fast follower)만 되면 되었기에 굳이 꿈을 꾸며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생각해보면 ‘꿈과 모험’을 즐기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안전지대에 머물며 ‘그냥’ 살아가도 되는데 뭐 그리 힘들게 ‘위험한’ 수고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그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창업 대신 철밥통이라 불리는 공무원시험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몰려가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자.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뻔한 삶에 무슨 즐거움이 있을까.
말 그대로 ‘일장춘몽’, 덧없는 삶이라 해도 한 번 세상에 왔으면 인생을 즐기고 의미와 가치 있는 삶을 살다 가야 하지 않겠는가.
어제와 오늘, 한 방송사에서 10여 년 넘게 진행하고 있는 디지털 포럼에 함께 하고 있다.
올해의 주제가 ‘관계의 진화-함께 하는 공동체’이다.
인공지능(AI)을 필두로 무인주행차,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등 얼마 전까지 ‘꿈’과 ‘공상’의 세계에 있던 일들이 현실에 그대로 펼쳐진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가 어떤 관계를 만들어가고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어떻게 가꾸어가야 하는지 같이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이다.
이제 어쩌면 ‘꿈’은 우리에게 공기나 물같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삶의 생존전략의 중심에 ‘꿈’을 빼고는 이야기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아니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도 ‘꿈꾸고 시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꿈을 잃으면 늙는다. 헛된 꿈, 망상이면 어떻고 공상이면 어떠랴.
꿈꾸는 사람들에 의해 세상은 변화해 왔고,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대부분은 ‘꿈쟁이’들이다. 거기에 혼자만의 꿈이 아닌 함께 꾸고 가꾸어가는 삶을 살아가자. 칭기즈칸의 말처럼 함께 꾸는 꿈은 이루어지기에.
영화 터보의 대화 한 구절에 이런 말이 있다.
‘이루지 못할 큰 꿈은 없다. 작다고 꿈까지 작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