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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 딱 좋은 날

사랑하기 딱 좋은 날

by 김재은 대표 2016.05.12

기억이 선명하지 않지만, 새벽녘에 꿈을 꾸다 알람 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났다. 기지개를 켜고 게슴츠레 눈을 뜬 채로 거울을 본다. 그 속에 낯선 사람이 덩그러니 있다. 살짝 웃어본다. 신기하게도 그가 따라 웃는다. 그나저나 이 무뚝뚝한 사나이는 어제의 나와 같은 사람인가, 다른 사람인가.
얼마 전 우연하게 영화 비포선라이즈를 보았다. 1995년 개봉되고 20년이 더 지나 다시 개봉된 영화이다. 여자 주인공인지 남자 주인공인지 가물가물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나는 내가 왜 싫은지 알아? 언제나 나를 따라 다니니까. 그래서 때론 지겹고 싫증이 나는거야.”
우연히 만나 연인이 된 두 사람의 대화라서 그런가. 이 말이 왜 이리 달콤하게 느껴지던지. 나에게도 분명 익숙한 나와 낯선 내가 섞여 있을 것이다.
나는 어떤 나를 더 좋아하고 사랑할까. 낯이 익고 오래된 것은 정겹기는 하지만 때론 지겨울 수도 있다. 삶도 사람도 그렇다.
호기심을 가진 존재인 사람들은 새로운 것, 다른 것을 찾아 헤맨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새로운 옷으로 나를 치장한다. 그런 새로운 모습, 새로운 환경을 만나야 ‘사랑의 마음’을 내놓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한다. 과연 사랑이라는 것이 그런 것일까.
어떤 상황, 어떤 환경 또는 어떤 변화된 모습 속에서만 잉태되는 것이라면 얼마나 슬플까. 그것은 내일을 기약하기 어려운 하루살이 사랑, 아니 순간적 감정에 불과하지 않을까. 다행히 영화에선 이런 대화도 나온다.
"너는 오래된 커플일수록 상대방의 반응을 미리 예측할 수 있고 습관들 때문에 싫증을 느끼게 되고 결국에는 싫어한다고 했지만 내 생각은 반대인 것 같아. 난 상대에 대해서 완전히 알게 되었을 때 사랑에 빠질 것 같거든. 어떻게 옷을 입는 것을 좋아하는지 가르마는 어떻게 타는지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할지 알게 되면 그제서야 난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될 거야"
새로운 것이든 묵은 것이든 다 나름대로 좋아할 이유가 있다. 하지만 사랑은 조건이나 상황의 산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사랑의 존재’ 그 자체가 아닐까. 그러니 우리는 서로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5월, 가정의 달, 사랑하기 좋은 시절이다. 나 자신을 사랑하고, 가족과 친구, 이웃들을 사랑하며 산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두 주인공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줄리 델피)은 이야기한다. “이 세상에 마술이란 게 있다면 그건 상대를 이해하고 함께 나누려는 시도 안에 존재할 거야” 라고. 거기엔 사랑도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은 토끼처럼 달아난다는데.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며 살기에도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오호~ 통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