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꽃보다 안전띠

꽃보다 안전띠

by 김재은 대표 2016.04.26

연녹의 잎들이 앙증맞게 피어나는 즈음, 봄 소풍에 시동을 걸고 길을 나선다.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그 누가 말했던가. 여행을 떠나고 여가를 즐기려 사람은 태어난다고. 춘곤증에 스르르 잠이 올 무렵 도로 전광판에 한마디가 눈에 팍 들어온다.
‘졸리면 쉬었다 가야 되지 말입니다.’
대한민국의 여심을 울린 한 드라마 남주인공의 말을 패러디한 문구이다. 순간 이렇게 답을 주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그래야 되지 말입니다.’
잠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작은 재미가 봄바람 따라 솔솔 일어난다.
어라, 이거 바뀌었네. 얼마전까지만 해도 ‘졸면 죽고, 쉬면 안전’,‘졸음운전의 종착지는 이 세상이 아닙니다’, ‘졸음운전! 목숨을 건 도박입니다.’ 등 협박이나 공갈에 가까운 살벌한 문구들이었는데. 생각해보니 지금까지는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말들이 그대로 거기에도 들어있었다. 물론 어느 것이 더 효과적인지는 알 수 없다. 자극적인 문구들이 더 잠을 깨게 할 수도 있고. 어쨌거나 일상의 일부라도 밝은색의 감성적인 언어로 바뀌어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반갑고 즐거웠다.
생각해보면 내가 사용하는 말과 글로부터 나의 세상이 시작된다. 내가 긍정의 언어를 사용하면 긍정의 느낌이 삶에 녹아들고, 부정의 언어를 사용하면 뭔가 께름칙하고 기분이 좋지 않다. 가능의 언어를 사용하면 내가 원하는 일이 가능할 것 같고, ‘할 수 없어. 그건 안돼’ 같은 말을 하면 정말이지 될 것도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일어난다.
‘말 한 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 말이 있고,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말도 있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을 통해 사람들과 통하고 세상과 교류하는 것이기에 ‘내가 하는 말’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래서 말은 때로는 삶의 전부이기도 하다. 사랑한다고 말을 하면 사랑이 전해지고, 좋아한다고 말을 하면 좋아하는 느낌이 일어난다. 증오의 말을 하면 상대가 죽도록 싫어지고, 짜증의 말은 나의 삶을 온통 짜증으로 물들인다. 텅 빈 삶이 말로 인해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는 것이다. 그러함에도 우리는 말을 너무나 가벼이 한다. 말이 그대로 감정과 함께 롤러코스터를 탄다. 그에 따라 나의 삶도 그러할 것은 분명하다.
지난 21일 저녁 세월호 2주기, ‘다시 봄이 올 거예요’ 북 콘서트에 다녀왔다. 별이 된 아이들의 형제자매들, 세상의 아픔에 함께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니 내가 정말이지 큰 자산인 ‘말’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말을 통해 공감하고 마음을 나누고 함께 하는 것이 가능하구나 하고 생각하니 내가 진짜 ‘소중한 존재’라는 것이 진하게 다가온다.
관대함이 사라진 사회, 자신의 갇힌 생각 따라 막말로 깊은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때에 결코 작지 않은 삶의 깨달음이다.
‘봄바람은 차 안으로∼ 졸음은 창밖으로’, ‘꽃보다 안전띠’, ‘천하장사도 당신의 눈꺼풀을 들 수 없습니다.’
다시 삶이 상큼해진다. 새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