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400년 전 같은 날 타계한 대문호

400년 전 같은 날 타계한 대문호

by 이규섭 시인 2016.04.22

마드리드 ‘스페인 광장’에서 ‘돈키호테’를 만났다. 왼손에 긴 창을 거머쥔 채 오른손을 흔들며 노새를 탄 모습이 늠름하다. 조언자 산초 판사는 중절모에 가죽 장화를 신고 뒤따르는 청동 동상이 역동적이다. 뒤 편 마드리드 타워에는 ‘돈키호테’를 쓴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가 오른손에 책을 쥐고 근엄하게 돈키호테 동상을 내려다본다. 석조 탑 꼭대기엔 지구본을 머리에 이고 책을 읽는 조각상이 까마득하게 올려다 보인다. 지구촌 사람들이 ‘돈키호테’를 읽는 모습을 형상화 했다.
스페인 광장은 세르반테스 사후 300주년을 기념하여 1916년 조성했다. 돈키호테 관련 조형물 위주로 꾸며 놓았다. 돈키호테가 보여준 우스꽝스러운 행동은 당시 신성시됐던 중세 경건주의에 대한 풍자이자, 기사 계급 등 봉건질서를 조롱한 것이다. 16세기 에스파냐의 관습과 제도의 틀을 깨부수려는 도전정신과 풍자정신은 변하지 않는 고전의 가치다.
세르반테스의 삶 자체가 돈키호테만큼 극적이다. 그는 1547년 귀머거리 외과의사 아들로 태어난 흙수저 출신이다. 마드리드의 한 사숙(私塾)에서 잠시 공부한 것 외에는 정규 교육을 받은 적 없이 불우하게 보냈다. 1569년 세르반테스는 이탈리아로 건너가 추기경의 시복(侍僕)이 됐고, 베네치아에 주둔한 에스파냐 군대에 자원입대한다. ‘레판토 해전’에서 가슴과 왼손에 총상을 입어 ‘레판토의 외팔이’가 됐다.
5년 더 군 복무를 한 뒤 퇴역을 결심하고 고향 에스파냐로 향했다. 출항 엿새 만에 그가 탄 배는 해적선의 습격을 받았다. 졸지에 해적의 포로가 되어 알제리로 끌려가 노예로 고초를 겪었고 수차례 탈옥을 시도하다 잡혔다. 종교단체의 노력으로 자유의 몸이 됐으나 불행의 그늘에선 벗어나지 못 했다. 생계를 위해 작은 회사 회계원으로 일하다 계산 착오로 공금 횡령죄를 뒤집어쓰고 세비야 감옥에 수감된다. 감옥에서 ‘돈키호테’를 쓰기 시작한다. 1605년 ‘돈키호테’가 출간됐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1616년 마드리드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으나 무덤조차 확인할 수 없다.
4월 23일은 1995년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책의 날’이다. 책을 사는 사람에게 꽃을 선물하는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축제일 ‘성(聖) 조지의 날’에서 유래했다. 이 날은 세르반테스와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400년 전에 사망한 날이기도 하다. 스페인에서는 책과 장미의 축제가 동시에 펼쳐진다. 영국에서는 ‘책의 날’을 전후하여 한 달간 부모들이 취침 전 자녀들에게 20분씩 책을 읽어 주는 ‘잠자리 독서 캠페인’을 벌인다. 한국에서도 사랑의 책 보내기 운동, 도서관에 책 기증하기 캠페인 등을 벌인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독서량은 UN 회원국 가운데 166위로 꼴찌 수준이다. 성인 열 명 가운데 아홉 명은 하루 독서량이 10분도 채 안 된다. 네 명 중 한 명은 1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니 부끄럽다. 꽃그늘 아래서 책 한 권 읽거나 지인에게 책과 함께 장미 한 송이를 선물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