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그리움: 생강나무

그리움: 생강나무

by 강판권 교수 2016.04.04

봄은 형형색색의 꽃들로 겨울 동안 메말랐던 까칠한 마음을 부드럽게 만든다. 봄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는 나무의 꽃을 색깔별로 만나는 일이다. 개화 시기는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생강나무는 이른 봄에 노란색으로 인기가 높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산수유와 혼동하는 경우가 많아서 나에게도 종종 묻곤 한다. 나는 그런 질문에 늘 짧게 다르다고만 말한다. 심지어 같은 나무라도 모습이 다를진대, 전혀 다른 생강나무와 산수유를 어찌 같다고 할 수 있을까. 멀리서 보면 노란색이라는 점 외에는 두 나무의 공통점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두 나무 간의 공통점을 찾으면 노란 색깔 외에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두 나무의 차이점을 유독 강조하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른 점 혹은 차이점을 인정하는데 인색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러한 태도는 다양성을 추구하는 현대사회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세대 간의 갈등 요인 중 하나도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하지 않아서 생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전국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녹나뭇과의 생강나무는 나무에서 ‘생강’ 냄새가 나서 붙인 이름이지만, 나는 생강나무 이름의 유래에 불만이 많다. 왜냐하면, 적잖은 사람들이 생강나무의 이름을 확인하기 위해 가지를 꺾기 때문이다. 생강나무의 학명(Lindera obtusiloba Blume) 중 속명인 ‘린데라’는 스웨덴의 식물학자 린데르(Linder, 1676-1723)를 의미하고, 종소명인 ‘오브투시로바’는 둔하게 세 갈래로 갈라진 잎을 강조한 것이다. 생강나무는 중국단풍처럼 잎이 세 갈래로 나누어져 ‘삼아조약’이라 부른다. 갈잎중간키 생강나무의 노란 꽃은 마치 노란 솜사탕 같다. 그래서 생강나무를 ‘황매목(黃梅木)’이라 부른다. 생강나무는 잎도 꽃처럼 노랗게 물든다. 학명에서 강조한 생강나무의 잎은 이 나무를 구별하는 중요한 단서다. 산에서도 잎을 보면 생강나무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생강나무의 별칭 중 하나는 ‘동백나무’다. 김유정의 단편소설 <동백꽃>은 차나뭇과의 동백나무 꽃이 아니라 생강나무의 북한 방언이다. 이처럼 나무 중에는 특정 지역에서만 불리는 이름이 적지 않다. 물론 나무 이름의 방언은 간혹 오해를 낳기도 하지만, 고향을 그리워할 수 있는 중요한 소재라는 점에서 소중한 문화자산이다. 살아가면서 누군가를 그리워할 대상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그리워할 대상이 없다는 것이다. 고향의 부모님이 돌아가셨더라도 부모님이 계셨다는 자체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 더욱이 고향에 추억을 간직한 한 그루의 나무만 있어도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김유정에게 생강나무의 꽃은 그리움의 대상이자 사랑일지도 모른다. 봄은 남녀 간의 사랑이 생강나무 꽃처럼 피어나는 계절이다.
나는 오늘도 한 그루의 나무를 그리워한다. 충청북도 단양군 신라적성비(국보 제198호)를 만나러 가는 도중에 만난 한 그루의 생강나무를 추억한다. 남한강을 바라보면서 눈 가득 품었던 생강나무의 노란 꽃을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사무치도록 보고 싶은 것은 분명 깊은 사랑이다. 노란 꽃이 비에 젖어 움츠리고 있던 애절한 모습은 나를 눈물짓게 한다. 그리움은 언제나 눈물로 키우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