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꽃들과 함께 시(詩)가 되다
봄, 꽃들과 함께 시(詩)가 되다
by 김재은 대표 2016.03.29
봄이다. 대지 위에도 작은 나뭇가지에도 꽃들의 함성이 들려온다. 여기저기서 유치원 아이들보다 더 큰 소리로 나 좀 보아 달라고 아우성이다. 서울에도 매화와 산수유가 꽃망울을 터트렸고, 남도 구례의 산수유, 하동·광양의 매화는 이미 절정을 이루고 있다는 소식이 지인들을 통해 들려온다.
지난 겨울, 혹한의 겨울 속에서 그 어떤 생명도 돋아날 것 같지 않았는데 다시 싹이 나고 꽃이 피는 것을 보면 그 자체가 신비로움이다. 하지만 고맙게도 눈부신 꽃들의 향연을 만끽하면서도 그 꽃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저만치 떨어져 있는 꽃들이라 내 삶과는 상관없다는 듯이 살아간다.
도종환 시인은 이야기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 도종환,‘흔들리며 피는 꽃’中
꽃조차도 저리 흔들리며 피어나는데 시시각각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삶의 곡절들을 겪으며 살아갈까. 그 곡절들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편안해진다.
시인 고은 선생의 시를 통해서 우리는 삶을 성찰한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 고은,‘그 꽃’
그저 앞만 보고 서둘러 달려나가는 삶에서는 ‘그 꽃’이 보일 리 없다. 삶은 앞만 있는 게 아니라 뒤로 있고, 주위도 있는데 그것을 잊고 산지 오래다. 어쩌면 소중한 것들은 앞이 아닌 다른 곳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김춘수 선생의 ‘꽃’은 또 어떤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 ‘꽃’中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면, 그가 내 이름을 불러주면 꽃이 된다니 이 어찌 가슴이 벅차고 설레지 않으랴. 불러주는 이름 하나에 엄청난 삶의 의미와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갓 피어난 꽃들을 통해 느낄 수 있다면 이 봄은 분명 대박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나태주, ‘풀꽃’
나태주 시인은 ‘풀꽃’에서 이렇게 읊었다. 마음이 신나게 울렁거린다. 울렁거림이 이토록 편안하고 기쁜 것임을 이제야 느끼는 내 자신이 오래 보아온 풀꽃처럼 사랑스럽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꽃’은 더 마음을 후벼 판다.
꽃은 피어있는데/ 피어있는 걸 누가 보았답니까/ 꽃은 졌는데/ 지는 걸 누가 보았답니까/ 아무도 못 본/ 그/ 꽃 - 김용택, ‘꽃’
꽃이 바로 곁에 있는데 보지 못하고 사는 게 안타까워, 아니 우리가 바로 꽃임을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여러 시인들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우리네 삶은 꽃을 많이도 닮았다. 그러기에 꽃은 그대로 의미가 되고, 인생이 되고 삶이 된다. 아니 모두가 그대로 자신만의 꽃이 된다.
흔들리며 핀 꽃, 젖으며 핀 꽃, 못 본 꽃, 이름을 불러주어 된 꽃, 자세히 본 꽃 모두가 그대로 나이고 우리이다. 나만의 빛깔이며 향기이자 적나라한 몸짓이다. 끝내 지고 말겠지만.
지난 겨울, 혹한의 겨울 속에서 그 어떤 생명도 돋아날 것 같지 않았는데 다시 싹이 나고 꽃이 피는 것을 보면 그 자체가 신비로움이다. 하지만 고맙게도 눈부신 꽃들의 향연을 만끽하면서도 그 꽃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저만치 떨어져 있는 꽃들이라 내 삶과는 상관없다는 듯이 살아간다.
도종환 시인은 이야기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 도종환,‘흔들리며 피는 꽃’中
꽃조차도 저리 흔들리며 피어나는데 시시각각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삶의 곡절들을 겪으며 살아갈까. 그 곡절들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편안해진다.
시인 고은 선생의 시를 통해서 우리는 삶을 성찰한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 고은,‘그 꽃’
그저 앞만 보고 서둘러 달려나가는 삶에서는 ‘그 꽃’이 보일 리 없다. 삶은 앞만 있는 게 아니라 뒤로 있고, 주위도 있는데 그것을 잊고 산지 오래다. 어쩌면 소중한 것들은 앞이 아닌 다른 곳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김춘수 선생의 ‘꽃’은 또 어떤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 ‘꽃’中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면, 그가 내 이름을 불러주면 꽃이 된다니 이 어찌 가슴이 벅차고 설레지 않으랴. 불러주는 이름 하나에 엄청난 삶의 의미와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갓 피어난 꽃들을 통해 느낄 수 있다면 이 봄은 분명 대박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나태주, ‘풀꽃’
나태주 시인은 ‘풀꽃’에서 이렇게 읊었다. 마음이 신나게 울렁거린다. 울렁거림이 이토록 편안하고 기쁜 것임을 이제야 느끼는 내 자신이 오래 보아온 풀꽃처럼 사랑스럽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꽃’은 더 마음을 후벼 판다.
꽃은 피어있는데/ 피어있는 걸 누가 보았답니까/ 꽃은 졌는데/ 지는 걸 누가 보았답니까/ 아무도 못 본/ 그/ 꽃 - 김용택, ‘꽃’
꽃이 바로 곁에 있는데 보지 못하고 사는 게 안타까워, 아니 우리가 바로 꽃임을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여러 시인들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우리네 삶은 꽃을 많이도 닮았다. 그러기에 꽃은 그대로 의미가 되고, 인생이 되고 삶이 된다. 아니 모두가 그대로 자신만의 꽃이 된다.
흔들리며 핀 꽃, 젖으며 핀 꽃, 못 본 꽃, 이름을 불러주어 된 꽃, 자세히 본 꽃 모두가 그대로 나이고 우리이다. 나만의 빛깔이며 향기이자 적나라한 몸짓이다. 끝내 지고 말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