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의 잔혹성
비둘기의 잔혹성
by 이규섭 시인 2016.03.25
비둘기의 잔혹성이 섬뜩하다. 목이 잘려나간 하얀 비둘기의 피 묻은 살점이 흩어진 현장은 참혹하다. 무더기로 뽑혀나간 깃털이 피에 엉켜 처연하다. 잿빛 깃털이 흩어진 것으로 보아 잿빛 비둘기에게 처참하게 당했다. 일대일의 처절한 싸움이 아니라 잿빛 비둘기 무리에게 집단 린치당한 주검인 것 같다.
참혹의 현장은 옥상이다. 얼마 전 된장 담글 때 쓰려고 메주콩을 띄워 옥상 철 그물망에 널어놓았더니 냄새를 맡은 비둘기가 날아들었다. 그 위에 또 다른 철 그물망을 덮어놓았는데도 틈새로 주둥이를 넣어 쪼아 먹는다. 틈새를 나무토막으로 막다가 콩이 바닥에 흩어졌다. 떨어진 콩을 주워 담기가 뭣해 버려두었더니 용케 알고 날아와 서로 차지하려고 처절한 싸움을 벌인 것 같다.
비둘기는 영역동물이라 다른 비둘기 무리가 장악한 지역에는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흰 비둘기가 잿빛 비둘기들 영역인 옥상에 홀로 찾아왔다가 당한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추정은 같은 무리인데 혼자 몰래 날아와 흩어진 콩알을 쪼아 먹다가 배신자로 낙인 찍혀 집단 린친 당했을 수도 있다. 워낙 잔혹하게 비둘기가 죽어 고양이에게 당했을 수 있을 것이라 짐작했으나 옥상까지 고양이가 올라올 수 없는 구조다.
비둘기는 그동안 ‘평화의 사도’로 사랑을 많이 받았다. 비둘기는 성경 노아의 방주에도 등장한다. 귀소본능을 지닌 비둘기가 올리브 가지를 물고 귀환하여 육지에 평화가 왔음을 알려 평화의 상징이 됐다.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노래 가사처럼 금슬이 좋으면 ‘비둘기 부부’ 같다고 했다. 60년대 후반 한 문예지에서 읽은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가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쫓기는 새가 되었다…’(마지막 연 일부)는 도시화와 산업화로 소외되는 인간을 비둘기에 비유해 노래했다. 이미 50년 전에 평화의 상징 비둘기가 유해의 상징으로 전락할 것임을 통찰한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비둘기는 전국 체전 등 국가적 행사 때마다 박수갈채와 환호성을 들으며 하늘을 날았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는 3,000마리가 서울의 창공을 무더기로 날아올랐다. 평화를 염원하며 임진각에서 북녘땅으로 날려 보내기도 했다. 인간의 사랑을 받으며 개체 수를 늘렸던 비둘기는 2009년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되어 된서리를 맞았다.
비둘기는 강산성의 배설물로 문화재 등 건축물을 부식시키고 비둘기의 깃털에서 나오는 각종 세균은 알레르기와 아토피성 피부염 등을 일으킨다. 마구 흩날리는 깃털로 생활에 불편을 끼쳐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어 버렸다. 비둘기 포획단을 운영하는 지자체가 있는가 하면 공원 내 먹이 주기 금지와 와이어 설치 등 비둘기의 증식과 접근을 막으면서 비둘기들은 먹이를 찾아 주택가로 스며들었다. 먹이를 차지하려 동족마저 처참하게 죽이는 비둘기의 잔혹성은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적자생존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아 처연하도록 슬프다.
참혹의 현장은 옥상이다. 얼마 전 된장 담글 때 쓰려고 메주콩을 띄워 옥상 철 그물망에 널어놓았더니 냄새를 맡은 비둘기가 날아들었다. 그 위에 또 다른 철 그물망을 덮어놓았는데도 틈새로 주둥이를 넣어 쪼아 먹는다. 틈새를 나무토막으로 막다가 콩이 바닥에 흩어졌다. 떨어진 콩을 주워 담기가 뭣해 버려두었더니 용케 알고 날아와 서로 차지하려고 처절한 싸움을 벌인 것 같다.
비둘기는 영역동물이라 다른 비둘기 무리가 장악한 지역에는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흰 비둘기가 잿빛 비둘기들 영역인 옥상에 홀로 찾아왔다가 당한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추정은 같은 무리인데 혼자 몰래 날아와 흩어진 콩알을 쪼아 먹다가 배신자로 낙인 찍혀 집단 린친 당했을 수도 있다. 워낙 잔혹하게 비둘기가 죽어 고양이에게 당했을 수 있을 것이라 짐작했으나 옥상까지 고양이가 올라올 수 없는 구조다.
비둘기는 그동안 ‘평화의 사도’로 사랑을 많이 받았다. 비둘기는 성경 노아의 방주에도 등장한다. 귀소본능을 지닌 비둘기가 올리브 가지를 물고 귀환하여 육지에 평화가 왔음을 알려 평화의 상징이 됐다.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노래 가사처럼 금슬이 좋으면 ‘비둘기 부부’ 같다고 했다. 60년대 후반 한 문예지에서 읽은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가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쫓기는 새가 되었다…’(마지막 연 일부)는 도시화와 산업화로 소외되는 인간을 비둘기에 비유해 노래했다. 이미 50년 전에 평화의 상징 비둘기가 유해의 상징으로 전락할 것임을 통찰한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비둘기는 전국 체전 등 국가적 행사 때마다 박수갈채와 환호성을 들으며 하늘을 날았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는 3,000마리가 서울의 창공을 무더기로 날아올랐다. 평화를 염원하며 임진각에서 북녘땅으로 날려 보내기도 했다. 인간의 사랑을 받으며 개체 수를 늘렸던 비둘기는 2009년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되어 된서리를 맞았다.
비둘기는 강산성의 배설물로 문화재 등 건축물을 부식시키고 비둘기의 깃털에서 나오는 각종 세균은 알레르기와 아토피성 피부염 등을 일으킨다. 마구 흩날리는 깃털로 생활에 불편을 끼쳐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어 버렸다. 비둘기 포획단을 운영하는 지자체가 있는가 하면 공원 내 먹이 주기 금지와 와이어 설치 등 비둘기의 증식과 접근을 막으면서 비둘기들은 먹이를 찾아 주택가로 스며들었다. 먹이를 차지하려 동족마저 처참하게 죽이는 비둘기의 잔혹성은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적자생존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아 처연하도록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