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봄, 너는 누구냐

봄, 너는 누구냐

by 김재은 대표 2016.03.02

바람이 세차게 분다. 잔설이 녹고 봄꽃 꽃망울에 생기가 돋을 무렵의 봄바람은 늘 그랬다. 떠나기 싫은 겨울의 심술이나 훼방 같다고 할지 모르지만, 겨울은 당신처럼 소인배가 아니다. 다만 떠나는 자의 흔적일 뿐이다. 배가 파도를 남기고 떠나듯이. 입춘, 우수가 지나가고 경칩이 저만치 보인다. 그냥 겨울만 계속될 것 같았는데 어김없이 다가오는 봄이 그저 신기하다.
나의 봄의 전령은 뭐니뭐니해도 매화이다. 언제부터인가 그 전령, 매화아가씨를 설 무렵 통도사에서 만난다. 설에 처가인 양산에 가면 언제나 통도사에 들르게 되고 거기서 햇볕에 고개를 살며시 내민 붉은 매화, 흰 매화와 반갑게 조우한다. 수줍은 듯하면서도 어쩜 그리 당당한지.
겨울이 한창일 때 봄이 오면 묻고 싶었다.혹한의 겨울에 너는 어디서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아니 살아 숨쉬고는 있는지. 그러다가 이내 내 나름의 작은 결론에 이른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언뜻 보면 그냥 거기에 그대로 있는 것 같지만 아주 작은 높낮이만 있어도 끝내 흘러간다. 아마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것도 그러지 않을까. 계절에도 흐름의 높낮이가 있어 끝내 그렇게 오고 가는 것이라고.
봄이 오면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나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 자신을 지키려 자신의 몸을 똘똘 말아 동그란 모양을 하고 있던 벌레가 안도하며 몸을 펴듯이 말이다.
그런데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그냥 그대로 있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는 게 보인다. 멋진 자신이 뭐가 못마땅한지 불안한 모습을 하고 누가 볼까 봐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한마디로 잘 보이려 하고, 잘 못 보이기를 피하려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시선에 따라 감정이 춤을 춘다. 당당함은 저만치 물러난 지 오래다.
왜 그럴까. 왜 그리도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것일까.
뚜렷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늘 불편하고 조마조마하고 개운하지가 않다. 자유로운 나 대신 속박의 줄에 매달린 내가 덩그러니 놓여있는 것이다.
지천명이 시작된 지 오래인데 이제야 내 모습의 실상을 바라본다. 늦었지만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고은 선생의 시처럼 내려갈 때라도 보았으니.
그동안 눈치 보며, 예의를 차리고 형식에 얽매이며 사느라 소중한 나를 놓치고 살았구나 생각하니 나 자신도 내 삶도 참으로 애달프다. 무엇에 견줄 필요 없이 그냥 그대로 자유로운 주인이었음을 깨닫는 이 순간이 참 편안하다. 무엇을 두려워하랴. 무엇을 망설이랴.
난 물이 흘러가듯이 자연스럽게 피어난 꽃이다. 봄꽃이다. 매화이고 산수유이며 개나리이고 진달래, 철쭉이다. 당당히 피어나고 때가 되면 진다. 그러니 내가 봄이고 봄이 나다. 겨울을 견뎌낸 우리들이다. 바람에 흔들릴지언정 끝내 자유를 찾아 나선 봄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