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봄을 기다리는 이유

봄을 기다리는 이유

by 권영상 작가 2016.02.25

산비탈 길옆에 어린 잣나무 하나가 태어났다. 잣씨에서 갓 움터나온 갓난아기 나무다. 사람들이 오르내리기 불편하다며 베어낸 오리나무 그루터기 밑이 그의 터전이다.
지난해 가을, 산을 오르다가 문득 그 어린 잣나무를 만났다. 그때 나는 무릎을 꿇고 그 푸른 빛 앞에 앉았다. 어리지만 소중한 청록빛. 두 손으로 그 빛을 감쌌다. 조락하는 계절이라 잣잎 빛깔이 내 손안을 밝히고, 이 스산한 산을 환히 밝히는 듯 했다. 나는 가만히 어린 빛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겨울을 잘 이겨내고 내년 봄에 보자.”
그러고는 낙엽들을 그러모아 다독다독 덮어주고 일어섰다.
오리나무와 팥배나무로 뒤덮인 이 산에 잣나무라니! 암만 생각해도 모를 일이지만 또 생각해 보면 크게 모를 일도 아니다. 산자락 아래에 잣나무 숲이 있다. 그 숲에 잣송이 잣을 따러오는 청설모가 여기에다 잣을 숨겨놓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만 찾아먹는 일을 깜박한 덕분에 태어난 게 이 잣나무가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면 이 어린 잣나무가 여기 태어난 건 순전히 그의 뜻이 아니다. 누군가의 우연한 망각에서 시작됐다. 그때 청설모의 다행스런 망각이 없었다면 태어날 수 없는 것이 이 잣나무다. 그런데 하필이면 사람의 손에 잘려나간 오리나무 곁이 그의 자리일까. 내가 어린 잣나무에게 내년 봄에 다시 보자고 인사를 했던 건 그런 태생 때문이었다.
이 넓은 산을 두고 어린 잣나무는 그런 위험한 터전에서 태어났다. 아직은 어려서 모르겠지만 그도 나이를 먹어 제가 태어난 자리를 안다면 고민이 클 것이다. 옮겨 심어 볼까 했지만 살려내지 못한다면 잣나무에겐 위험한 일이다. 그날 이후로 산에 가는 이유가 그렇게 또 생겼다. 그 어린 잣나무를 보러 가는 일이다. 갈 적마다 보면 다독다독 덮어준 낙엽들이 바람에 날려 쌀 몸뚱이로 옹크리고 있다. 쌀 몸뚱이로 냉혹한 세상과 대적하기엔 잣나무는 너무 어리다.
이 어린 잣나무가 사람의 간섭을 받고도 끄떡없이 견뎌내려면 7, 8년, 아니 10여 년은 자라야 한다. 그때를 생각해 본다. 그는 어쩌면 내 걱정과는 달리 여기 이 비탈에 서서 힘들게 산을 오르는 이들의 손을 잡아주거나 그들의 그늘이 되어주는 든든한 나무가 되어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모두 어린 잣나무처럼 우연히 이 세상에 나왔다. 그렇지만 모두 저의 몫을 할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여기 이 자리에서 목숨을 살아낸다. 그 어린 잣나무를 위해서라도 어서 봄이 와 주기를 기다린다.
아침에 신문을 보니 내달 14일이면 제주에 개나리꽃이 피어 하루 37킬로미터씩 바람에 실려 북상한다고 한다. 봄은 와야 한다. 봄을 기다리며 추위에 떠는 새들이 있다. 언 땅에 묻힌 풀씨들이 있다. 산골짜기 어두운 바위틈에서 겨울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산짐승들이 있고, 실낱같은 희망에 의지하여 봄을 기다리는 힘없는 사람들이 있다. 무엇보다 산비탈 길섶에서 삶을 새로 시작하는 어린 잣나무가 있다. 그를 위해서라도 어서 봄은 어서 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