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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영원한 보루, 그리고 안식처

삶의 영원한 보루, 그리고 안식처

by 정운 스님 2016.02.16

미국 카네기 멜론 대학 교수였던 랜디 포시(1960~2008)는 췌장암으로 생을 마감했다. 멜론 대학 종신교수로 재직하던 중 47세 나이에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고 타계한 것이다. 랜디 포시의 연구 분야는 인간과 컴퓨터 상호작용, 가상현실 분야에 대한 것이다. 그는 2007년 암 선고를 받고 삶을 마감하기 전까지 강연을 하고, 방송활동을 하며, 저서를 통해 세계인들에게 삶의 진지함과 꿈을 안겨준 인물이다. <마지막 강의>는 그의 분신인 세 자녀에게 아버지의 모습을 남겨주고자 멜론대 피츠버그 캠퍼스에서 고별 강의한 내용이고, 이것이 책자로 발간되었다.
수년 전 <마지막 강의>를 읽으면서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새삼 깨달았다. 이 책에는 가족에 대한 소중함과 그의 성공도 있지만 젊은이가 지녀야 할 열정이나 꿈, 대학생활에서의 인간관계 등 학생들에게 필요한 내용이 많다. 2008년도부터 몇 년간 교양과목 수업을 하면 신입생들에게 이 책을 권했고, 자신과 결부시켜 독후감을 쓰게 하였다.
<마지막 강의>에 담긴 내용 중에 수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부분이 있다. <마지막 강의>에서 랜디 포시가 삶을 얼마 남겨두지 않는 어느 날의 기록이다.
재이(부인)가 포시에게 식품점으로 심부름을 보냈다. 포시는 목록에 적힌 것을 다 담고 나자 셀프계산대를 이용하면 더 빨리 일을 마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포시는 신용카드를 넣고 지시를 따르며 스스로 물건을 스캔했다. 기계가 한참 후에 16불 55센트라고 말한 뒤에 영수증이 발급되어야 하는데, 영수증이 나오지 않았다. 포시는 잘못한 줄 알고 신용카드 결제를 한번 더했다. 결국, 2번의 결제를 했으니, 16불을 손해 본 것이다. 그는 지배인을 불러 서류를 작성하고 난 뒤, 영수증 한 개를 취소하는 동안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10분을 기다려도 일이 해결되지 않았다. 포시는 ‘내가 살날도 얼마 남지 않은 데다 이 귀한 시간을 가족과 보내야 한다.’라고 생각하고,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이 책을 읽은 지 수년이 흘렀는데도 앞에서 이야기한 부분이 오랫동안 가슴에 각인되어 있다. 필자는 오늘 학교 도서관에 있으면서 필요치 않는 인터넷 내용을 읽거나 관심 없는 책을 뒤적거렸다. TV도 뉴스만 보고 일어나야 하는데, 뉴스 끝나고도 다른 채널을 이리저리 돌릴 때가 있다. 랜디 포시가 삶의 마지막에 10분, 아니 5분, 1분이 아까워서 애달아 했건만, 나는 그 귀한 시간을 그냥 허비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랜디 포시가 16불을 되돌려 받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 대신 가족과 함께하고자 한 애틋함이다. 생의 끝에서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보여준다.
명절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혹 명절 때, 그리고 평소에 가족과 어떤 관계를 유지하는가?! 이 글을 읽는 님께서는 가족이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해보라. 아무리 의학이 발달해도 인간은 백 년도 못산다. 게다가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며 가족이라는 공감을 나누는 시간이 얼마나 되겠는가. 학생 때는 공부로, 취업해서는 다른 지방으로 가거나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부족하다. 한번 흘러간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무상한 세월, 그리고 험난한 세상살이에 가족은 삶의 안식처요, 영원한 보루다.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