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종과 까끄라기
망종과 까끄라기
by aykcr 2013.06.07
기차여행의 낭만은 고속열차의 등장과 함께 빠르게 사라진다. 덜컹거리는 기차 안에서 삶은 계란과 사이다를 마시며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시골풍경을 바라보던 추억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된지 오래다. 옆자리에 누가 앉으면 어디까지 가느냐고 묻고 계란을 나눠 먹던 정감 넘치던 풍경도 보기 드물다. 이른 아침 남도행 고속열차에 오르니 대부분 승객은 등받이에 기대에 존다. 격전지에 나가는 전사처럼 결연한 표정으로 서류철을 뒤적이거나 문제집에 언더라인을 긋는 청년도 보인다.
신문을 뒤적이다 차장 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호남평야의 보리밭이 맨땅을 드러냈다. 모내기도 끝났다. “엊그제가 망종(芒種)이었지” 어느새 한 해의 반환점을 도는 6월, 세월 참 빠르다. 까끄라기 망(芒)과 씨 종(種)자로 절기의 이름을 ‘망종’이라 붙인 조상의 지혜가 절묘하다. 이삭에 까끄라기(수염)가 붙은 보리를 수확하고 모내기철을 예고했다. 수확의 기쁨과 벼농사의 시작이 겹치는 시기다. 혹독한 춘궁기(春窮期)를 겪던 시절 보리밥이라도 배불리 먹을 수 있어 즐거웠고, 쌀농사의 기대로 희망이 공존하는 때다. ‘망종엔 발등에 오줌 싼다’고 할 정도로 가장 바쁜 시기다. 벼들의 생장 속도만큼 농부의 손길도 분주해진다.
보리농사는 두 해 농사로 ‘보릿고개’를 넘기기만큼 힘들다. 늦가을 벼를 베고 난 논이나 가을걷이 한 밭에 보리를 심는다. 겨울을 이겨내고 푸릇푸릇 싹이 돋을 때면 눈이 녹으며 성애가 끼여 솟은 뿌리를 밟아준다. 잡초가 보리 보다 더 왕성하게 자라는 봄철엔 김매기를 하느라 허기진 허리가 더욱 휜다. 보리가 익어갈 무렵 비바람이 심술을 부리면 일으켜 세우는 일도 고역이다.
보리가 허리춤만큼 자라고 종달새가 지지배배 춘정을 희롱할 때면 산비둘기만 보리밭에 알을 낳는 게 아니다. 시골 젊은이들의 밀애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훈풍을 얼싸안고 이리저리 휩쓸리는 보리이랑은 서정과 욕정을 불러일으키는 로망스 선율이다. 그 시절 농촌에서 은밀한 사랑을 나눌 장소는 보리밭이나 물레방앗간이었다. 요즘은 공공장소에서도 낯 뜨거운 스킨십을 예사로 하고 국도변에도 모텔이 즐비하니 빛바랜 시대의 풍속도일 뿐이다. 종자개량으로 보리 키도 예전 보다 낮아졌다. 청산도 청보리축제에 들렀다가 “수확량을 늘리려 종자개량을 한 게 아니라 밀애를 막으려 개량했을 것”이라고 우스개를 하며 웃었다.
보리타작도 벼 타작 보다 힘들다. 보릿단을 굵은 새끼로 묶어 어깨너머로 커다란 돌에 내리쳐서 털었다. 1차로 털고 난 뒤 도리깨질을 해야 한다. 까끄라기가 목덜미와 사타구니로 파고드니 얼마나 깔끄러운가. ‘혀는 칼보다 깔끄럽다’는 말조심 경구 ‘설망어검(舌芒於劍)’은 망종 절기와 딱 어울린다. 남의 말에 까칠하게 끼어들거나 까치라기 보다 더 까칠한 언어폭력은 비수가 되어 마음에 상처를 낸다. 구수한 햇보리 밥에 풋나물과 된장을 넣어 비벼 먹던 풋풋한 인정과 정감 넘치는 말이 기차여행의 낭만처럼 그립다.
신문을 뒤적이다 차장 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호남평야의 보리밭이 맨땅을 드러냈다. 모내기도 끝났다. “엊그제가 망종(芒種)이었지” 어느새 한 해의 반환점을 도는 6월, 세월 참 빠르다. 까끄라기 망(芒)과 씨 종(種)자로 절기의 이름을 ‘망종’이라 붙인 조상의 지혜가 절묘하다. 이삭에 까끄라기(수염)가 붙은 보리를 수확하고 모내기철을 예고했다. 수확의 기쁨과 벼농사의 시작이 겹치는 시기다. 혹독한 춘궁기(春窮期)를 겪던 시절 보리밥이라도 배불리 먹을 수 있어 즐거웠고, 쌀농사의 기대로 희망이 공존하는 때다. ‘망종엔 발등에 오줌 싼다’고 할 정도로 가장 바쁜 시기다. 벼들의 생장 속도만큼 농부의 손길도 분주해진다.
보리농사는 두 해 농사로 ‘보릿고개’를 넘기기만큼 힘들다. 늦가을 벼를 베고 난 논이나 가을걷이 한 밭에 보리를 심는다. 겨울을 이겨내고 푸릇푸릇 싹이 돋을 때면 눈이 녹으며 성애가 끼여 솟은 뿌리를 밟아준다. 잡초가 보리 보다 더 왕성하게 자라는 봄철엔 김매기를 하느라 허기진 허리가 더욱 휜다. 보리가 익어갈 무렵 비바람이 심술을 부리면 일으켜 세우는 일도 고역이다.
보리가 허리춤만큼 자라고 종달새가 지지배배 춘정을 희롱할 때면 산비둘기만 보리밭에 알을 낳는 게 아니다. 시골 젊은이들의 밀애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훈풍을 얼싸안고 이리저리 휩쓸리는 보리이랑은 서정과 욕정을 불러일으키는 로망스 선율이다. 그 시절 농촌에서 은밀한 사랑을 나눌 장소는 보리밭이나 물레방앗간이었다. 요즘은 공공장소에서도 낯 뜨거운 스킨십을 예사로 하고 국도변에도 모텔이 즐비하니 빛바랜 시대의 풍속도일 뿐이다. 종자개량으로 보리 키도 예전 보다 낮아졌다. 청산도 청보리축제에 들렀다가 “수확량을 늘리려 종자개량을 한 게 아니라 밀애를 막으려 개량했을 것”이라고 우스개를 하며 웃었다.
보리타작도 벼 타작 보다 힘들다. 보릿단을 굵은 새끼로 묶어 어깨너머로 커다란 돌에 내리쳐서 털었다. 1차로 털고 난 뒤 도리깨질을 해야 한다. 까끄라기가 목덜미와 사타구니로 파고드니 얼마나 깔끄러운가. ‘혀는 칼보다 깔끄럽다’는 말조심 경구 ‘설망어검(舌芒於劍)’은 망종 절기와 딱 어울린다. 남의 말에 까칠하게 끼어들거나 까치라기 보다 더 까칠한 언어폭력은 비수가 되어 마음에 상처를 낸다. 구수한 햇보리 밥에 풋나물과 된장을 넣어 비벼 먹던 풋풋한 인정과 정감 넘치는 말이 기차여행의 낭만처럼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