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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와 싸우는 사람들

생계와 싸우는 사람들

by 이규섭 시인 2020.07.03

피카소가 천하의 바람둥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결혼했거나 동거한 여인만 일곱 명이다. 그 가운데 두 여자는 피카소를 잊지 못해 자살했고, 두 여자는 지나친 질투와 강박관념으로 정신이상이 됐다. 피카소가 46세 때 유혹한 마리 테레즈 발테르는 열일곱 살 미성년자다. 명작 ‘꿈’의 주인공이 마리 테레즈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뒤다. 시인 엘뤼아르의 부인 뉘슈 엘뤼아르 등 연인들까지 합치면 여성편력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피카소의 정력 비결은 뭔지 헤밍웨이도 궁금했던가 보다. 그에 얽힌 우스개를 스페인 여행 때 가이드로부터 들었다. 헤밍웨이는 18년 연배인 피카소를 만나 돌직구를 날렸다. “여성 편력이 화려한 당신의 정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투우의 고장에서 태어나 투우의 거시기를 많이 먹은 탓이오” 피카소는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헤밍웨이는 투우 거시기를 판다는 식당에 예약을 한 뒤 잔뜩 기대하고 들렀다. 한참 후 웨이터가 쟁반에 받쳐 가져온 거시기가 형편없이 작았다. “이보게 웨이터, 투우 거시기가 왜 이렇게 작은가?” “오늘은 투우가 죽지 않고 투우사가 죽었습니다” 웨이터는 천연덕스럽게 응답했다. 투우 경기장에서 장렬하게 죽은 투우는 곧바로 가공 처리되며 사전에 예약을 해야 할 정도로 식도락가들이 즐겨 찾는다고 한다.
헤밍웨이도 두 번 이혼하고 세 번 결혼했다. 에스파냐 내전 때 특파원으로 취재하면서 스페인 론다의 풍광에 반했다. 그곳에 머물며 투우를 다룬 소설 ‘오후의 죽음’(1932년)을 집필했다. 투우를 즐긴 피카소도 투우의 발상지 론다를 자주 찾았기에 우스개의 개연성은 짙다.
스페인 남부에 위치한 작은 도시 론다는 근대 투우의 발상지다. 창설자 프란시스코 로메로가 이곳에서 태어났다. 본래 스페인 투우사들은 말을 타고 소와 대결을 벌였다. 론다 투우장은 1785년에 지은 스페인 최초의 투우장이었으나 지금은 투우 박물관으로 활용한다. 광장엔 검은 투우 동상이 달려들듯이 앞발을 들고 서있다. 회랑에는 투우사들이 입었던 의상과 투우 포스터와 사진을 전시해 놓았다.
스페인의 오랜 전통과 관광산업인 투우가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야만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관습이며 동물 학대가 반대 이유다.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가 1991년 처음으로 투우를 금지한데 이어 북부 까딸루냐 주는 2011년 투우 금지 법안을 통과시켜 투우 경기가 해마다 줄고 있다. 바르셀로나 도심의 투우 경기장은 쇼핑몰로 바뀐 지 오래다.
스페인 투우가 코로나 장기화로 치명타를 입었다는 보도가 최근 나왔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몇 달간 투우 행사가 전면 중단된 탓에 투우사들은 생활고를 겪고, 농부들은 투우용 소를 헐값에 도축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지원 대상에도 빠져 투우 업계 종사자와 지지자들은 생계와 싸우며 시위에 나섰다. 생계와 싸우는 건 먼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나라도 코로나 직격탄에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국민들은 늘어나는데 정부는 경제 기조를 바꿀 기미조차 없으니 딱한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