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투데이

남들과 다른 길을, 남극 셰프의 순대국 [남극의 순대국]

남들과 다른 길을, 남극 셰프의 순대국 [남극의 순대국]

by 안양교차로 2019.02.21

지구에서 가장 추운 대륙 남극. 보통 사람들은 이곳에 다녀오기 어렵다. 이곳을 두 번이나 다녀온 셰프가 있다. 2011년 새하얀 설원을 뛰어다니는 펭귄과 푸른 빙하를 담은 MBC 다큐멘터리 <남극의 눈물>에 출연, 세종 기지에서 근무하며 한국요리를 외국 대원들에게 대접해 극찬을 받기도 했던 강경갑 셰프다. 그가 최근 안양예술공원의 초입에 순대국집을 열었다. 그를 만나 순대국 식당을 오픈한 이유와 맛의 비결에 대해 들어보았다.
[남극의 순대국]
● 주소 : 안양시 만안구 안양동 1319-10
● 문의 : 031-471-5949(010-4750-0663 강경갑 셰프)

강경갑 셰프의 경력은 화려하다. 2007년엔 한국음식세계박람회 <경기도지사상>을, 2008년에는 세계한식요리경연대회 <대령숙수미각상>을, 2011년과 2012년에는 대한민국국제요리경연대회 금상 등을 받아 실력을 인정받았다. 두 번이나 남극에서 셰프로 근무한 것은 물론, 독일에서도 3년 동안 주방을 맡았다. 글로벌한 경력을 가진 그가 한식에 주목하고 그중에서도 순대국을 아이템으로 선정하게 된 배경이 궁금했다. 그는 먼저 남극에서의 경험을 언급했다.
강경갑 셰프
강경갑 셰프
“매서운 눈 폭풍과 싸우는 남극에서는 식재료 사용의 자유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재료를 육지에서 전달받은 뒤 언제 다시 받을 수 있을지 기약이 없죠. 이처럼 험난한 조건하에서 외국인을 포함한 대원들에게 대접했던 음식 중, 가장 각광을 받았던 것이 한식이었습니다. 그래서 한식에 더욱 자신감을 가지게 됐죠.”
한국에 돌아온 그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음식이 무엇일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고민 끝에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저는 경상도 외진 시골에서 나고 자랐어요. 전기불도 초등학교 6학년 때 겨우 들어올 정도로 외진 곳이었죠. 외식은 연년에 한두 번 잔치 때나 가능했어요. 당시에는 시내에 나가도 짜장면과 순대국집밖에는 없었습니다. 저는 주로 순대국을 택했는데,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날 정도로 잊을 수 없는 맛이었죠.”
그 무엇도 추억과 겨뤄서는 이기기가 힘들다. 시장조사를 위해 찾아갔던 전국의 내로라하는 맛집들은 어린 시절의 감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예전에 본인이 맛봤던 순대국을 그대로 재현해야겠다고 다짐한 강 셰프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순대국을 만들기 시작해 지금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남극의 순대국만의 맛의 비법은 무엇일까. 강 셰프는 순대를 직접 만들고 있다. 맛이 있으려면 먼저 재료가 건강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 다른 가게처럼 순대를 납품 받는 게 아니라 재료 다듬기부터 본인이 직접 한다. 순대 한 줄에 단호박, 연근, 우엉, 당근, 양배추, 양파부터 부추와 찹쌀, 당면, 대파까지 안 들어가는 게 없다. 물론 철에 맞는 재료를 가감해야 하니 내용물은 조금씩 바뀌기도 하지만, 싱싱한 재료를 선정하여 순대를 만든다는 데는 변함이 없다.
모듬순대
모듬순대
순대국
순대국
두 번째 장점은 담백한 국물이다.
“다른 순대국집처럼 소머리뼈나 소도가니 등을 넣어 국물을 우려내 봤지만, 제가 추구하는 추억 속의 순대국과는 거리가 있더군요. 결국 오소리감투와 돼지머리를 넣기로 결정했습니다. 내장이 들어가면 국물이 시원해지긴 하지만, 담백한 맛을 즐기기는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반찬이다. 순대국과 함께 서빙되는 반찬은 해당 식당의 이미지를 결정짓는 숨은 주역이다. 어떤 곳은 아삭한 갓김치를, 또 다른 곳은 부추 겉절이를 승부수로 내놓는다. 남극의 순대국은 귀때기무침을 키포인트로 정했다. 이는 돼지의 귀를 얇게 저며 부추를 넣고 설탕 식초 참기름 깨소금 등을 넣어 새콤달콤하게 만든 반찬으로, 오독오독 ○○○히는 맛에 손님들의 인기가 높다. 처음에는 순대국에 반주를 하던 일부 손님들이 무침을 더 찾는 바람에, 따로 ‘귀때기무침’메뉴를 만들었을 정도다. 이 메뉴가 생긴 다음부터 귀때기무침만 따로 포장해가는 손님도 상당하다고.
마지막 장점은 끊임없이 메뉴 개발을 한다는 점이다. 현재는 잠시 쉬고 있지만, 1월 달 까지는 순대국에 해산물을 넣어 대접했다. 지방에서 올라온 가리비와 전복을 순대국에 함께 넣어드리니, 손님들은 ‘어디서도 보지 못한 새로운 시도’라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덕분일까. 남극의 순대국에는 단골이 많다. 그중에서도 ‘5살짜리 손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강 셰프는 예를 들었다. 음식을 가리거나 과자 등을 편식하기 쉬운 어린아이가 ‘순대국을 사 달라’고 엄마에게 요구한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 한두 번 찾고 마는 게 아니라 주말마다 줄기차게 찾아오는 게 기특하게 느껴졌다. 어린 팬을 위해서 더욱 건강하고 싱싱한 재료를 쓴 것은 물론, 더 나은 맛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순대를 끓이는 모습
순대를 끓이는 모습
순대속 만드는 모습
순대속 만드는 모습
“23살 때부터 요리를 시작해서 하루에 20시간 이상 주방에서 일을 했습니다. 30살이 될 때까지 쉰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어요. 새벽에 일어나서 장을 보고 당일 12시까지 일했으니 개인적인 삶이 없었죠.”
오랫동안 이 업계에서 희로애락을 겪은 만큼, 식당을 낼지 고민하는 사람들의 괴로움 역시 뼈저리게 알고 있는 강 셰프. 그는 순대국 비결을 다른 이들에게 전수하는 데도 열심이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3명이 이곳에서 기술을 전수받았다. ‘엄마 같은 손맛으로 고향의 그리움을 전해주는 음식을 만들겠다’며 오늘도 땀을 흘리는 강 셰프의 앞날이 기대된다.

취재 이현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