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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아픈가?

누가 아픈가?

by 정운 스님 2019.04.16

고려 말기에 나옹혜근 스님과 매우 가까운 사대부 유생이 있었다. 이 사대부가 병이 나자, 나옹스님이 사대부에게 ‘병문안에 부치는 글’이라는 내용의 이런 편지를 보낸다.

“그대의 병이 중하다고 들었다.
그것은 무슨 병인가? 몸의 병인가, 마음의 병인가?
몸의 병이라면 몸은 지ㆍ수ㆍ화ㆍ풍의 네 가지 요소가 잠시 모여 이루어진 것,
그 네 가지는 저마다 주인이 있는데, 그 어느 것이 그 병자인가?
만약 마음의 병이라면 마음은 꼭두각시와 같은 것,
비록 거짓 이름은 있으나 그 실체는 실로 공空한 것이니
병이 어디에서 일어났는가?
그 일어난 곳을 추궁해 본다면 난 곳이 없을 것이다.
그럼 지금의 그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또 고통을 아는 그것은 무엇인가?
이와 같이 살피고 살펴보면 문득 크게 깨칠 것이다.
이것이 내 병문안이다.”

아마 불교신자가 아닌 분들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간단히 풀어보면 이러하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육신이 물질적인 지수화풍地水火風 4대로 구성되어 있다고 본다. 병이 나면, 지수화풍 4대가 조화롭지 못해서 생겨난 것이다.
그렇다면 지대地大가 병이 난 것인가? 수대水大가 병을 일으킨 것인가? 화대火大가 병이 난 것인가? 풍대風大가 병을 일으킨 것인가? 어느 무엇이 병을 만들었고, 어느 것이 병든 것이라는 답이 없다. 지수화풍, 네 가지가 함께 모여 인간의 육신을 이룬 것처럼, 4대 가운데 그 어떤 것도 병을 만든 주범이 따로 없는 것이다.
다음은 마음의 문제이다. 병이 나면, 당연히 마음이 괴롭다. 마음이 괴롭다고 하는데, 그 괴로움이 일어나는 근원지가 관건이다. 어디라는 장소의 근원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아함경전에는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라’는 말이 있다. 곧 병 때문에 육신이 괴로운데, 마음까지 괴로움에 끄달려 가지 말라는 것이다. 또 마음에 괴로움이 생겼는데, 그 괴로운 마음을 계속 연장시켜서 또 다른 괴로움을 일으키지 말라는 뜻도 담겨 있다.
그럼 내용을 정리해보자. 병이 난 것에는 육신의 4대 하나하나가 실체가 없는 것이요, 병으로 마음이 괴롭다고 하지만 이 괴로움의 실체 또한 없다. 지금까지 말한 내용은 불교 사상의 핵심인 공사상의 한 측면이다. 이 공사상에 입각해 ‘욕심내지 말라’는 무소유 사상이 나온 것이요, 육신의 고통과 삶의 괴로움을 초탈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어쨌든…. 이 세상에 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이 조금이나마 덜 아프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