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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을 누가 어떻게 판결하나

양심을 누가 어떻게 판결하나

by 이규섭 시인 2018.11.09

병영생활을 한지 50년 됐어도 그때의 기억은 녹슬지 않았다. 병영 무용담은 군대 다녀온 남성들의 전유물로 화제가 되던 시절이 있었다. 격하게 공감하며 추임새를 넣다가 은근슬쩍 자신의 무용담을 끼워 넣는다. 군복무를 하며 ‘직선제 내무반장’에 선출된 것은 특이한 경험이다. 혹자는 “군대 내무반이 친목단체도 아니고 투표로 뽑느냐”고 의혹을 제기한다. 그 부대는 한 내무반원이 20명 안팎으로 3개 내무반이 있었다. 하사관이 없어 고참 병장 순으로 내무반장을 맡았다. 선임 내무반장 전역 당시 비슷한 군번의 병장 세 사람은 서로 맡지 않으려고 발뺌했다. 그중 한 사람이 나다.
고참 상병이 “이 기회에 민주적 방법으로 직선제 투표로 뽑는 게 어떻겠느냐”는 긴급 제안이 받아들여졌고 투표 절차가 진행됐다. 압도적 표차로 뽑혔다. 인품이나 통솔력이 빼어나서가 아니다. 말랑하게 보인 성격이라 내무반 생활이 부드러워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리가 표의 향방을 가른 것으로 분석했다. 협동과 배려로 명랑한 내무생활이 이루어지도록 협조해 달라는 요지의 취임사(?)까지 한 것으로 기억된다.
몇몇 전우는 지금도 연락이 되고 경조사에도 오갔다. 병영은 사회의 축소판이다. 출신지역, 학력, 성격도 다른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이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질서가 유지된 것은 군기와 위계질서, 배려와 희생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내무반을 운영하면서 리더십을 발휘한 건 소중한 체험이다. ‘1.21사태’(1968년 김신조 등 북한 특수요원 31명의 청와대 기습 미수사건)로 군 복무를 36개월 했지만 불만보다는 병역의 의무를 무사히 마쳤다는 긍지가 더 컸다.
요즘 공공기관이나 일반 기업 취업 때 자기소개서에 희생과 인재상 부각 등 군 스펙을 쓰는 사례가 늘었다고 한다. 학력 등을 뺀 블라인드 채용 도입 이후 나타난 현상이다. 병사 사이의 오해와 갈등을 풀어 준 리더십, 소총부대 오발탄 사건을 응급처리하면서 긴급 처방 의료기기의 필요성을 제기한 의무병 출신이 좋은 직무평가를 받아 입사했다는 보도다.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한 대법원의 판결은 군필자의 자긍심을 무참히 짓밟는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한 사람은 비양심적 국민처럼 비쳐져 황당하다. 병역은 헌법이 국민에게 부여한 의무인데 양심 주장에 면죄부를 주다니 형평성에도 어긋난다. 체육·예술인 병역특례에도 끼지 못하고 산업기능요원 복무 자격도 없는 군필자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안겼다.
차라리 ‘양심적 병역거부’라 하지 말고 1959년 사회문제로 불거졌을 당시처럼 ‘종교적 병역 거부’라 하면 거부감은 덜 할 것 같다. 집총이 병역거부 이유라면 입대하여 조리사나 통신병, 의무 보조원 등의 보직으로 순환근무를 시킬 수도 있지 않는가. 아직 대체복무제도 확정되지 않았다. 도덕적 가치인 양심을 누가 어떻게 판결할 것인가. 대법원은 양심 판단의 기준으로 ‘양심을 직접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으므로, 양심과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 또는 정황 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판단하여야 한다’고 제시했다. 심사자의 양심 잣대는 객관적으로 공정한지, 어떻게 검증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