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소식

참, 느릅하다

참, 느릅하다

by 강판권 교수 2018.10.15

느릅나뭇과의 갈잎큰키나무 참느릅나무는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상징나무다. 느릅나무는 나무의 줄기 속의 속껍질이 부드러워서 생긴 이름이다. 느릅나무와 참느릅나무는 아주 비슷하지만 큰 차이는 꽃이 피는 시기다. 느릅나무는 3월에 꽃이 피지만 참느릅나무는 9월에 꽃이 핀다. 참느릅나무는 아주 따뜻한 지역에서 잘 살며, 습기가 많고 비옥한 계곡이나 하천변에서 잘 자라면서도 건조한 곳에서도 잘 견딘다. 참느릅나무는 햇빛을 좋아하는 양수(陽樹)면서도 반음지에서도 잘 자랄 뿐 아니라 추위, 바닷바람, 공해에도 강하다. 그래서 참느릅나무는 생명력이 강해서 땅속에 뿌리가 조금만 남아 있어도 새싹이 돋고, 어릴 때는 아주 빨리 자란다. 참느릅나무는 속껍질만 부드러운 것이 아니라 줄기도 유연해서 밟아도 잘 부러지지 않는다.
참느릅나무의 가치는 경상북도 경주시 계림에서 더욱 빛난다. 계림은 신라 김알지의 탄생설화가 서린 문화유적지다. 나뭇가지에 황금 함이 걸려 있는 조선시대 조속(趙涑, 1595-1668)의 《금궤도(金櫃圖)》는 김알지의 탄생설화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황금 함이 걸린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현재 계림의 나무 분포를 고려하면 참느릅나무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계림의 참느릅나무는 이곳의 ‘깃대종(flagship)’이다. 깃대종은 생태계의 여러 종 가운데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종이며, 그 중요성으로 인해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생물종을 말한다. 깃대종은 1993년 국제연합환경계획(UNEP)이 발표한 '생물다양성 국가 연구에 관한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한 개념이다. 따라서 참느릅나무는 계림의 역사와 식물의 가치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나는 참느릅나무의 부드러운 속살을 참 좋아한다. 참느릅나무가 계림의 깃대종이듯이, 21세기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참느릅나무의 속살을 닮은 ‘깃대사유’도 필요하다. 현대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유연한 사유 없이는 생존하기 어렵다. 유연한 사고 없이는 자신과 다른 사고를 가진 사람은 물론 이질적인 분야와 융합할 수도 없다. 참느릅나무의 속살처럼 부드럽게 사유하지 않으면 굳건한 경계를 허물 수 없고, 경계를 허물지 못하면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없다. 무한한 상상력도 부드러운 사유 세계에서만 가능하다.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참느릅나무의 속살처럼 유연한 사고가 부족한 것이다. 특히 사회 각 분야 지도층의 경직된 사고는 한국의 미래를 가장 어둡게 만드는 주범이다. 한국 지도층의 사고는 여전히 거칠고 단단하다. 그래서 그들은 아직도 과거의 방식대로 미래를 예측한다. 그들의 그러한 사고방식은 진정한 소통을 방해한다. 참나무처럼 부드러운 존재라야 세찬 바람이 불어도 부러지지 않고 살아남는다. 부드러운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세계관의 변화가 절실하다. 시대의 변화는 세계관의 전환을 강하게 요구하지만 기성세대는 기존의 세계관으로 세상을 진단한다. 나무가 위대한 것은 끊임없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스스로 변신하기 때문이다.